[盧대통령 대선자금 공개 제안]“한나라는 깨끗한가” 역공

  • 입력 2003년 7월 15일 18시 4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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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대선자금 전면공개 및 검증 제안은 형식은 전격적이었지만, 실제로는 오래전부터 노 대통령의 머릿속에 준비돼 있던 것이라는 설명이다.

노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가 열리기 전인 오전 8시20분경 문희상(文喜相) 비서실장과 유인태(柳寅泰) 정무수석, 문재인(文在寅) 민정수석을 청와대 본관 집무실로 불러 대선자금 문제에 대한 자신의 ‘정면돌파’ 구상을 자세히 밝히고, 이를 기자회견을 통해 발표토록 지시했다. 이 과정에서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었다는 후문이다.

문 수석은 “노 대통령이 평소 여러 차례 참모들에게 밝혀온 소신이고, 나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건의했던 내용이다”며 “오늘 마지막으로 참모들의 의견을 듣고 최종결심을 한 것뿐이다”고 전했다. 기자회견에서 나온 기업의 면책문제나 ‘특별법’ 문제도 이미 몇 차례의 토론이 있었다고 한다.

노 대통령의 구상은 이미 지난해 대선 다음날인 12월 20일 기자간담회에서 “언젠가는 정치자금에 관해 정면돌파가 필요하다”고 말했던 것과 궤를 같이한다. 다만 민주당 정대철(鄭大哲) 대표의 ‘대선자금’ 발언이 기폭제가 되면서 그 시기가 앞당겨졌다는 게 청와대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한 핵심 관계자는 “노 대통령이 9월쯤 자신의 정치개혁 구상을 밝히고, 이를 이슈화한다는 복안을 갖고 있었다”면서 “이번 제안은 일회성이 아니며, 앞으로도 노 대통령의 정치개혁 드라이브는 계속될 것이다”고 말했다.

물론 노 대통령의 전격제안은 정치권 전체에 대한 개혁프로그램 제시를 통해 정 대표의 거액수수 사건으로 위축된 신당 추진 세력의 입지를 회복시켜주고, 내년 총선을 겨냥한 ‘승부카드’로서의 의미도 적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특히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치개혁’을 앞세워 민주당 주류와 당 바깥의 개혁세력을 결집시킴으로써 신당을 측면 지원하겠다는 의도가 담겨 있는 것도 분명하다.

이렇게 보면 이날 제안은 ‘대선자금 문제 정면돌파→정치관계법 개정 등 정치개혁 추진→정치권 내의 개혁세력 결집→내년 총선 승리→집권 중·후반기 안정 운영’이라는 임기 5년 전반의 집권 구상 속에서 나온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청와대는 또 이날의 제안이 단순히 야당 압박용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미 ‘여야 동시 공개’ 제안을 한나라당이 쉽사리 수용하지 않을 것이란 계산 아래 경우에 따라서는 민주당이 먼저 대선자금을 공개하는 방안도 깊이 고려하고 있다는 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여기에는 대선자금에 관한 한 거리낄 게 없다는 노 대통령의 자신감도 작용한 듯하다.

김정훈기자 jnghn@donga.com

▼한나라 “의혹 덮으려는 꼼수”▼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여야 대선자금 동시 공개’ 제안에 대해 여야의 반응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한나라당은 “전형적인 물귀신 작전으로, 용납할 수 없다”고 반발했다. 굿모닝게이트가 민주당의 지난해 대선자금 문제로 불똥이 튀자 이를 덮으려는 ‘꼼수’라는 것이다.

홍사덕(洪思德) 총무는 “현실적으로 정치자금법을 수정 보완할 필요가 있고 우리 당의 정치개혁특위에서도 이를 검토한 적은 있다”며 “그러나 여권이 이미 불거진 대선자금 의혹을먼저 밝힌 뒤 야당에 제의해야 국민이 수긍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윤여준(尹汝雋) 의원은 “자신들의 대선자금이 문제가 됐는데도 이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이 야당을 물고 늘어지는 것은 치사한 행동”이라고 비난했다.

박진(朴振) 대변인은 “우리 당은 지난 대선자금의 내용을 투명하고 정확하게 선관위에 신고했다”며 “민주당은 우선 대선자금의 규모와 내용을 밝혀야 하며 검찰수사를 통한 진상규명이 미흡할 경우 국정조사나 특검을 통해서라도 이를 철저히 밝혀내야 한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즉각 환영의 뜻을 밝혔다. 그러나 민주당이 먼저 대선자금을 공개하는 데 대해서는 유보적인 입장을 보였다.

이상수(李相洙) 사무총장은 “대선자금의 실상을 국민에게 밝혀 무엇이 문제인지 알리고, 제도 개선을 이룰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총장은 “여당이 먼저 공개할 용의가 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우리만 (공개)하는 방안에 대해선 별로 생각해보지 않았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내비쳤다.

문석호(文錫鎬) 대변인은 논평에서 “우리 당은 지난해 대선에서 역대 어느 선거보다도 돈 안 드는 깨끗한 선거를 치렀다고 자부한다”며 “한나라당도 새 정치를 바라는 국민 여망에 부응하기 위해 노 대통령의 제안을 전향적으로 수용하기 바란다”고 촉구했다.

정연욱기자 jyw11@donga.com

부형권기자 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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