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특검 중단, 국민은 잊지 않을 것이다

  • 입력 2003년 6월 23일 18시 3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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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이 기어이 대북 송금 사건 특별검사의 수사기간 연장 요청을 거부함으로써 좋지 않은 선례를 또 하나 남겼다. 동시에 정국 파탄을 불러 국정 전반에 길고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게 했다. 야당은 즉각 ‘총체적 투쟁’을 예고했고 여론도 정치적 입장에 따라 급속히 양분되는 양상을 보여 심대한 후유증이 우려된다.

근본 책임은 노 대통령에게 있다. 여당의 반발을 무릅쓰고 특검법을 수용하면서 “야당을 믿을 수밖에 없다”고 ‘신뢰의 정치’를 강조했던 그가 야당의 요구를 묵살하고 특검 연장을 거부한 것은 스스로를 부정한 처사였다. 그래서 결국 국론 분열의 불씨를 정치권과 시민사회에 되던진 것은 무책임하다는 비난을 면키 어렵다.

노 대통령이 특검 연장을 통해 자연스럽게 불씨를 진화할 수 있었던 기회를 박찬 것은 순리(順理)를 거스른 것이다. 법무부 장관까지 특검 연장을 건의했는데도 거부 이유로 굳이 법리를 내세운 것 역시 정치적 고려를 가리고 덮기 위한 옹색한 분식(粉飾)이라는 생각이 든다. 노 대통령이 수사 중인 특검을 만난 것부터가 법리와 상식을 벗어난 일이었다.

특검 중단 이후의 수사 주체에 대한 청와대의 태도 또한 불투명하다. 국회의 결정에 미루면서 재특검도 수용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힌 것은 기회주의적이라는 인상을 준다. 이번 특검법 재협상도 여야가 줄다리기만 하다 끝내 성사되지 않았는데 재특검 협상이 현실성 있는 일인가. 더욱이 청와대의 주장처럼 150억원 뇌물수수 의혹만으로 수사 대상을 한정한다면 협상 타결은 애당초 불가능할 것이다.

검찰이든 재특검이든 재수사 착수까지는 상당한 시일을 요할 것 같다. 그사이 우리 사회는 또 얼마나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할지 걱정이다. 따라서 유례없는 특검 중단은 노 대통령의 리더십 위기로 국민에게 각인될 가능성이 크다. 노 대통령은 특검 중단으로 얻게 될 당장의 정치적 이익보다 훨씬 더 큰 지도력의 손실을 두고두고 감수해야 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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