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공산당 허용’이 덕담일 수 있나

  • 입력 2003년 6월 11일 18시 2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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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이 일본 방문시 “한국에서도 공산당 활동이 허용될 때 비로소 완전한 민주주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한 것은 그동안의 실언이나 비어 사용과는 차원이 다른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이념 기본권 법체계의 문제가 혼재된 국가보안법 개폐 논란과도 성격이 다르다. 헌법의 근본 이념 및 기본 질서와 관계된 것이기 때문이다.

헌법이 복수정당제도를 채택하고 정당활동자유를 보장하고 있는 이상 공산당이라는 명칭을 가진 정당의 설립이 불가능하지는 않다. 그러나 강령이나 정책이 사유재산권과 시장경제를 부정하고 계급투쟁을 표방하는 등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반하는 정당의 설립까지 용인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헌법에 따로 위헌정당해산제도라는 방어적 장치를 마련해 놓은 이유이기도 하다.

청와대는 “서구나 일본처럼 합법적 테두리 안에서 활동하는 공산당에 대해 언급한 것으로 덕담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고 해명했지만, 이는 한국적 특수 현실을 외면한 채 파문을 미봉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서구나 일본은 분단이나 동족상잔의 아픔이 없고 헌법에 통일을 지향한다는 조항도 없다. 반면 우리 헌법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통일을 추진한다고 명기하고 있다.

이는 북한 공산당과의 대치 상황을 전제로 한 것으로, 북한 공산당은 결코 서구나 일본의 공산당과 동렬에 놓을 수 없다. 또한 남북교류협력과 공산당 허용은 전혀 별개의 사안이며, 공산당이 없다고 민주주의가 불완전한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어떻게 대통령이 그런 얘기를 할 수 있는지 의심스럽다. 6·25전쟁의 상처가 채 아물지 않은 수많은 국민은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 궁금하다.

헌법 수호 의무가 있는 대통령이 해석에 따라서는 헌법 침해 논란 및 국민의 이념적 혼란을 부를 수 있는 발언을 한 것만으로도 위험하다. 소위 덕담으로 둘러댈 수 있는 한계를 한참 일탈했다. 노 대통령은 더 이상의 국론분열을 막기 위해서라도 직접 발언의 진의를 밝히고 잘못된 것이 있으면 국민의 양해를 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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