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총련 합법화' 논의 급제동

  • 입력 2003년 5월 19일 18시 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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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이 불법시위로 대통령이 참석한 5·18 기념식을 엉망으로 만들어버리면서 한총련 합법화 논의에 브레이크가 걸렸다.

그동안 한총련 합법화에 ‘우호적’이던 각료들조차 19일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고 여론도 한총련에 대해 비판적으로 돌아서기 시작했다. “한총련의 강령과 행동에 변화가 없는데도 정부가 앞질러 합법화 카드를 내세워야 하는가”라는 회의론도 대두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한총련이 강경투쟁 기조를 계속할 경우 합법화 논의는 원점으로 되돌아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다만 합법화에 시동을 걸었던 강금실(康錦實) 법무, 김두관(金斗官) 행정자치부 장관 등이 ‘불법시위에 대한 엄정한 법집행’을 강조하면서도 여전히 이번 사건과 한총련의 합법화 문제를 별개로 보아야 한다는 입장을 나타내 변수가 되고 있다.

불법시위자에 대한 엄벌의지는 19일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을 시작으로 법무, 행자부 장관 그리고 경찰청장에 이르기까지 잇따라 터져 나왔다. 그러나 한총련 합법화 문제에 대해서는 “한총련 합법화 문제와 곧바로 연결하는 것은 다소 무리”(강 법무) “한총련 합법화는…여러 가지 사항이 고려돼야 할 문제”(김 행자)라는 부연설명이 붙었다. 이는 한총련에 대한 참여정부의 기본시각에 큰 변화가 없다는 것을 시사하는 대목으로 해석된다.

한총련측도 이 같은 정부의 ‘속내’를 의식한 듯 19일 오후 미묘한 변화를 나타냈다. 당초 ‘사건관련자 처벌 철회’를 주장하며 ‘무죄’를 주장해 온 한총련이 18일의 불법시위를 우발적인 사태로 규정하고 나선 것. 한총련 지도부는 19일 “(노 대통령의) 대미 굴욕외교와 5·18정신은 양립할 수 없다”며 투쟁의 고삐를 놓지 않았다. 그러나 이 발표 뒤 2시간 만에 정재욱 의장이 나서 “대통령의 기념식 참석을 막고자 한 어떠한 의도도 없었다”며 이번 사건을 ‘우발’로 규정했다. 현재 한총련 내부가 ‘합법화가 먼저냐, 국가보안법 폐지가 먼저냐’를 놓고 세력간 갈등이 상존하긴 하지만 어쨌든 정 의장의 발언은 정부 일각의 ‘합법화 비연계 의사’에 화답하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이날 청와대에서는 합법화 논의에 부정적 기류가 일부 나타났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19일 “이번 사태가 합법화에 영향을 미치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윤태영 대변인이 ‘예단하기 어렵다’고 대답한 이면에 ‘열쇠’가 숨어있다”며 여운을 남겼다. 이번 사태가 합법화 논의 중단으로 번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한총련의 극단적인 불법행동에 대해 정부 안팎의 여론이 비판적으로 흐르는 것도 큰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행자부 고위 관계자는 “합법화는 과거와 달라지는 것을 전제로 논의했던 것이지 불법을 계속하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은 아니다”고 말했고 법무부 관계자도 “그렇지 않아도 반대 여론이 높은데 마당에 아예 기름을 부은 꼴이다. 당분간 합법화를 논의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화여대 김석준(金錫俊) 교수는 “지금까지 정부가 한총련에 대해 너무 유연했던 것이 잘못”이라며 “한총련의 공식적인 정강변화 혹은 태도변화가 선행되어야만 합법화 논의가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한총련 합법화에 대한 논의는 이번 사건의 파문이 설사 조기에 진정된다 하더라도 한총련이 스스로 강경투쟁 노선에 변화를 가시화하지 않는 한 상당기간 공식적인 문제제기 자체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진구기자 sys1201@donga.com

한총련 관련 발언 일지/2003년
노무현 대통령(3월17일)한총련을 언제까지 이적단체로 간주해 수배할 것인지 답답하다. 시대변화에 맞지 않는 만큼 이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검토하라.
강금실 법무부장관(4월 3일)대학생 수백명이 반국가단체 혐의로 수배된 것은 상식에 비춰보면 황당한 것. 한총련 학생들이 자수하면 불구속 수사하는 게 한총련 문제를 푸는 하나의 방법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최기문 경찰청장(4월 16일)수배 중인 한총련 학생들에 대한 검거 활동을 강화하겠다.
문재인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4월 26일)한총련 수배 해제 및 합법화는 청와대나 대통령이 직접 지시하거나 결정하기 어려운 만큼 법무부·검찰과 협의를 통해 해결해 나가겠다.
강금실 법무부 장관(5월 7일)100명이 넘는 20대의 대학생이 수배상태에 있다는 것은 큰 불행이다. 현재 검찰 공안 파트와 이 문제를 놓고 대화 중이다.
김두관 행정자치부 장관(5월 19일)합법화를 바라는 한총련이 법을 무시하는 행동을 하는 것은 이율배반적이며 국민통합에 반한다. 민주적인 절차를 어겼다면 책임을 져야 하며 학생들이라고 결코 예외가 될 수 없다.
강금실 법무부 장관(5월 19일)학생들이 불법적으로 기념식 행사장 입구 도로를 점거하고 대통령의 기념식 참석을 방해한 것은 5·18정신을 훼손하고 법질서를 침해한 것으로 국민 모두로부터 지탄받을 행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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