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말로만 '자주국방' 외치지 말고

  • 입력 2003년 5월 7일 18시 26분


노무현 대통령은 어제 열린 전군 주요지휘관회의에서 “주한미군 문제는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변화하게 돼 있고, 거기에 우리 국군이 새롭게 맡아야 할 일이 있다”고 말했다. 며칠 전 TV 토론에서 밝힌 ‘자주국방론’을 다시 강조한 것이다. 엊그제 국방부가 노 대통령에게 보고한 내용도 ‘자주국방 비전’이었다.

우리의 현실에서 자주국방은 아무리 강조되어도 지나침이 없다. 그러나 그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국방예산의 현실에 비추어볼 때 이번 국방부의 발표는 실천 가능성이 어느 정도인지 궁금하다. 또한 주한미군 재배치 문제가 예민한 현안이 되고 있는 지금 시점에서 자주국방을 강조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지도 의문이다.

최근 미국은 주한미군 재배치 및 감축을 북핵 해결 이후로 미루자는 우리 쪽 주장을 수용할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이럴 때 정부가 먼저 자주국방을 내세운다면 미국 뜻대로 주한미군 재편을 가속화하는 논리로 활용되지 않을까 걱정된다. 우리에겐 당장 주한미군이 후방으로 빠질 경우 전력 공백을 메울 여력도 마련되어 있지 않은 상태다.

자주국방은 조용히 내실을 기하면서 추진할 일이다. 80년대 중반부터 하향추세를 그려와 99년 이후로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2.8%를 유지하고 있는 국방예산을 끌어올릴 때에나 가능한 일인데 그것이 쉬운 문제는 아니다. 김대중 정부 시절 추진됐던 대형 전력증강 사업 중 차기 전투기(FX) 도입 건을 제외하면 제대로 된 것이 없다는 점도 자주국방의 길이 얼마나 험난한지를 말해준다.

정부는 자주국방 구호를 강조할 때 빚어질 수 있는 역효과를 신중하게 따져 보아야 한다. 전력증강 투자는 특성상 10∼20년 뒤에야 실전 배치가 이뤄지는 사업이다. 지금 투자해도 실제 효과가 나타날 때까지는 주한미군이 일정 역할을 맡아줘야 한다. 그렇다면 현 시점에서 자주국방으로 가기 위한 우선적 정책은 한미동맹 강화를 추진하는 일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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