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국감]한화 로비설-도청 놓고 파행

  • 입력 2002년 9월 25일 18시 50분


한나라당 정형근 의원(왼쪽)이 감사장에 앉아 있다. - 안철민기자
한나라당 정형근 의원(왼쪽)이 감사장에 앉아 있다. - 안철민기자
25일 국회 정무위의 금융감독위원회에 대한 국정감사에서는 한화그룹의 대한생명 인수 과정에 권력 실세가 개입했다는 의혹을 놓고 이틀째 공방이 벌어졌다.

이날 공방은 한나라당 정형근(鄭亨根) 의원이 권력 실세 개입 의혹의 근거로 제시한 소위 ‘도청자료’에 초점이 모아졌다.

정 의원은 회의 첫머리에 “내 발언으로 24일 국정감사가 겉돈 데 대해 사죄한다”면서도 “폭로 내용은 한치의 오차도 없는 사실이다”고 거듭 주장했다. 그는 “내가 도청단을 운영하고 있다는 민주당의 주장은 어불성설”이라며 “제보자는 국가정보원 현직 간부이고, 문건은 국정원 내부에서도 최고위 간부만 볼 수 있는 자료”라고 말했다.그는 이어 “제보자는 ‘무자격자인 한화그룹이 대한생명을 헐값에 인수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국가의 중요 업무가 이렇게 처리돼선 안 된다’는 충정에서 제보를 결심했다고 밝혔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그는 “제보자 보호를 위해 신원을 공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정 의원은 또 기자들과 만나 “국정원의 도감청 내용은 보안유지를 위해 컴퓨터 모니터에만 뜰 뿐, 종이로 출력되지 않는다. 국정원장에게 보고할 때도 다시 작성해 보고한다”면서 입수한 문건이 이런 과정에서 흘러나온 ‘진본(眞本)’임을 강조했다.

그러나 민주당 의원들은 “정 의원이 시중에 떠도는 이야기를 그럴듯하게 포장하기 위해 존재하지도 않은 ‘국정원 도청’을 끌어들였다”고 비판했다.

특히 민주당 의원들은 한화그룹의 반박을 근거로 정 의원의 주장을 공격했다. 한화그룹은 정 의원이 “김승연(金昇淵) 한화그룹 회장이 올 5월 5일 독일 출장 중 계열사 사장으로부터 전화로 로비계획을 보고받았다”고 주장한 데 대해 “김 회장은 올해 독일에 간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민주당 박병석(朴炳錫) 의원은 “국정원이 원장에게 보고하는 중요 보고서에서 그 정도도 틀렸다는 것은 도청 자체가 허구라는 증거”라고 주장했다.

민주당 박주선(朴柱宣) 의원은 4차례의 의사진행 발언을 통해 “통신비밀보호법상 도청자가 처벌받는 것은 물론 도청 내용을 공개하는 것도 형사 처벌 대상”이라며 정 의원을 몰아세웠다.

정 의원은 이에 대해 “김 회장은 당시 미국으로 출국한 사실이 있고, 미국에서 독일로 건너갔는지는 따져볼 일”이라고 말했다.

정 의원은 이날 오후 한화그룹에 대한 도청 내용을 추가로 공개했다. 올 1월 한화그룹 회장 비서실 직원이 박근혜(朴槿惠) 의원 보좌관에게 전화로 “김승연 회장이 곧 방한하는 미국 해스터트 하원의장을 위한 비공식 만찬을 개최하니 박 의원의 참석 여부를 알려달라”고 말했고 “필히 참석하시도록 하겠다”는 답변 내용이 도청됐다는 것이다.

국정원은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국정원은 김 회장을 대상으로 불법적인 도청을 한 사실이 없다”면서 “정 의원의 주장은 사실무근”이라고 해명했다.

김승련기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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