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국방백서 발간 안했나 못했나

  • 입력 2002년 5월 24일 18시 16분


국방부가 5월 말로 예정된 2002년판 국방백서 발간을 연기하기로 한 것은 정치권과 민간단체, 그리고 북한에 대한 군 당국의 눈치보기 사례로 삼을 만하다. 국방부의 이번 결정은 국방백서에 주적(主敵) 개념을 유지할 것인지 여부를 놓고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벌어진 논쟁을 회피하기 위한 교묘한 선택이다. 국방부로서는 주적 개념을 유지하자니 정부의 대북 포용정책과 이율배반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고, 삭제하자니 사회 일각의 반발에 직면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국방부가 국방백서 발간을 연기한 것은 잘못이다. 국가안보를 책임진 집단으로서 군은 보수적인 입장을 견지할 수밖에 없고, 또 그렇게 엄격한 기준을 강조하기 때문에 국민이 군을 신뢰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군 당국은 정부의 대북 포용정책과 무관하게, 또 주적론을 둘러싼 사회적 논쟁과도 일정 거리를 둔 채 당당하게 주적 개념을 넣은 국방백서를 발간했어야 했다.

더욱이 국방부는 지난해 말 주적 개념 논쟁을 피하기 위한 것이라는 의심을 받아가면서 국방백서 발간을 격년제로 바꾸었고 이번에 발간을 연기함으로써 그 약속마저 어겼다. 이는 적어도 이번 정권 하에서는 국방백서를 더 이상 발간하지 않겠다는 말이다. 이처럼 어정쩡한 자세를 취하는 군을 국민이 얼마나 신뢰할 수 있을까.

원론적으로 보면 ‘주적’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국가는 전 세계에서 우리가 유일하다는 주적론 폐지론자들의 주장이 근거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최소한의 군사적 신뢰구축 조치부터 마련하자는 우리 측의 요구를 북측이 계속 무시하는 한 이 문제로 우리가 갑론을박하는 것은 부질없는 짓일 뿐이다. 더욱이 국방부까지 이 같은 논쟁 사이에 끼여 눈치를 보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국방부가 이런 결정을 함으로써 국민은 또다시 정신적 혼란을 겪게 됐다. 국방부가 지금이라도 중심을 바로잡아 백서 발간 연기를 재검토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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