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홍걸씨, 숨어서 들어온 이유 뭔가

  • 입력 2002년 5월 15일 18시 29분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3남 홍걸(弘傑)씨가 검찰조사를 받기 위해 귀국했으나 그 모양새는 참으로 옹색하고 졸렬했다. 여러 국가기관이 동원돼 마치 비밀작전을 하듯 대통령 아들을 빼돌리고 비호하는 모습에서 국민은 또 한번 분노를 느꼈다.

이미 귀국 비행기를 탔는데도 소재를 모른다고 잡아떼고, 중간에서 비행기를 갈아타게 하고, 거짓말로 취재진을 따돌리고, 신변노출을 피하기 위해 입국장까지 바꿨다고 하니 그 치밀한 전략이 놀랍기만 하다. 대통령 아들을 챙기려는 관련 기관의 충성경쟁이 마치 우리가 지금 왕조시대를 살고 있지 않나 하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다. 청와대와 검찰의 손발이 착착 맞았던 것도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대통령 아들에 대한 그 같은 권력의 비호와 과잉보호가 결국 홍걸씨의 비리의혹을 그만큼 더 키웠다. 그동안 대통령 아들의 각종 비리가 감춰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짐작할 만하다. 특히 아들문제에 대한 여러 차례의 사과에도 불구하고 김 대통령은 아직도 문제의 심각성과 국민적 공분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비리의혹을 조사받기 위해 귀국하는 만큼 홍걸씨는 한없이 몸을 낮추고 겸손해야 했다. 귀국과정은 홍걸씨에게 하나의 기회였다. 이를 통해 ‘국민께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이고 용서를 비는 모습을 보였다면 국민의 시선이 조금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면 집권측의 이번 홍걸씨 비밀귀국작전은 대통령 아들들의 비리의혹에 대한 들끓는 민심을 있는 그대로 읽지 못한 실패작이었다. 오히려 분노를 더 키웠다.

곧 검찰에 출두하는 홍걸씨는 귀국 때의 옹졸한 모습을 다시 보여주어서는 안될 것이다. 보통사람과 똑같이 출두해 사진도 찍히고 취재진의 질문공세도 받아야 한다. 검찰도 비리의혹의 내용과 처리시한을 정해 놓고 거기에 맞춰 수사를 서둘러서는 안된다. 그런 식의 수사라면 비리의혹은 더 커질 뿐이다. 모든 것은 검찰의 수사의지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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