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한기흥/청와대의 거짓말

  • 입력 2002년 4월 24일 18시 42분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3남 홍걸(弘傑)씨가 미국 퍼모나대학 태평양연구소에 더 이상 근무하지 않고 있다는 본보 보도(24일자)가 나간 뒤 청와대 측이 보인 대응자세는 ‘문제가 생기면 일단 부인하고 보자’는 태도가 고질화돼 있음을 거듭 확인해 준 사례였다.

본보의 가판이 나온 직후 청와대 측은 “홍걸씨의 변호인 등을 통해 확인한 결과 홍걸씨는 여전히 연구원 신분으로 있다”며 보도 내용을 전면 부인했다.

청와대 관계자들은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기자에게까지 직접 전화를 걸어 그들이 파악했다는 ‘상황’을 설명하면서 기사의 방향을 틀어 보려고 했다. 심지어 일부 관계자들은 “프랭크 기브니 소장이 실무행정을 모른다”는 얘기까지 서슴없이 했다.

하지만 청와대 측의 해명은 하루도 지나지 않아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전날에 이어 24일 기자와 두 번째 만난 태평양연구소의 기브니 소장은 ‘홍걸씨가 더 이상 연구소에서 일하지 않는다’는 명백한 사실을 부인하는 청와대 측의 태도에 어이없다는 표정이었다.

유력 시사주간지 타임의 도쿄지국장 출신인 기브니 소장은 홍걸씨 문제가 지닌 정치적 민감성을 충분히 알 만큼 한국 사정에도 밝은 인물. 따라서 기자의 인터뷰 요청에 처음에는 곤혹스러워했지만 기자가 “사실과 진실만을 충실히 보도할 테니 확인해 달라”고 거듭 요청하자 홍걸씨가 더 이상 연구원 신분이 아니라는 사실을 털어놓았다.

문제는 청와대 측이 여전히 진상을 얼버무리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청와대 측은 24일에도 자료를 내고 홍걸씨의 비자 기한이 2002년 10월까지 연장돼 있다는 점을 앞세워 지금도 연구원 자격이 있는 것처럼 설명했다.

남의 나라 연구소 책임자의 말까지 부인하며 어거지를 쓰는 청와대 측의 대응을 보면서 한국에 있는 연구소였더라면 아예 진실 규명이 불가능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로스앤젤레스에서>

한기흥 워싱턴특파원 eligi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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