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신문고시' 운용 속셈…말로만 '자율'

  • 입력 2001년 4월 17일 01시 28분


공정거래위원회가 ‘예상대로’ 신문사 경영에 무소불위의 칼자루를 휘두를 태세다. 이남기(李南基)위원장이 16일 기자간담회에서 밝힌 신문고시 운용방침은 한마디로 ‘신문사 경영을 낱낱이 감시하고 상황에 따라 수시로 언론에 칼날을 들이대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공정위 입맛대로 수시로 간여 시사(示唆)〓이위원장은 신문고시 운용의 2가지 원칙을 제시했다. 자율기구인 신문협회에 맡겨놓지만 여기서 도저히 처리하기 어렵다고 판단될 경우엔 공정위가 처리하겠다는 것. 또 자율규제 기능이 시원찮을 경우 공정위가 시장질서를 바로 잡기 위해 직권조사를 강행한다는 것이다. 공정위가 간여할 것인지 여부는 공정위 판단에 달려 있다.

이런 방침은 당초 규제개혁위원회의 자율규제 우선 원칙과는 거리가 있다. 공정위는 신문협회가 자율규약을 만들 때도 이 규약에 담기는 내용을 사전 점검할 계획이다. 말로는 자율우선 원칙을 강조했으나 사실상 타율을 강요하겠다는 것. 심지어 자율규제 명분으로 신문협회를 공정위 하부집행기관인 ‘출장소’로 부리겠다는 발상인 것으로 분석된다.

▽기업조사 내세워 초점 흐리기〓이날 이위원장은 8개그룹에 대한 조사 방침을 불쑥 밝혔다. 올 1월 5일 “경제가 어려운 만큼 기업할 분위기를 얼어붙지 않도록 하기 위해 상반기중 대기업 조사가 없다”고 선언한 것에서 말을 바꾼 것이다. 이위원장은 “30대그룹중 아직도 불공정거래 조사를 받지 않은 8개그룹을 대상으로 ‘형평성 차원에서’ 5월초부터 조사하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하반기엔 4대 그룹에 대해 부당내부거래와 불공정행위 조사를 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는 신문고시 때문에 언론의 집중적인 질타를 받은 데 대한 ‘국면전환용’이라는 해석이 우세하다. 공정위의 주업무가 아닌 언론사 조사에 대한 공세를 피해나가기 위한 전술 바꾸기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지방신문사로 화제 돌리기〓이위원장은 이날 지방신문사의 폐해에 대해 오랜 시간을 할애했다. 그는 “지방 신문사들이 건설회사와 중소기업을 괴롭히면서 광고영업을 하는 행태가 너무 지나치다”고 말했다. 신문고시에 대한 문제의 초점을 흐려보겠다는 심산이다. 이위원장은 “일부 지방신문들이 사전 동의없이 미리 광고를 내고 나중에 광고대금을 강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직원들에게 월급도 안주고 광고 리베이트를 미끼로 영업을 시키는 신문사도 있다”며 “소규모 지방에 신문사가 6∼7개나 있는 곳도 적지 않으며 ‘넥타이만 매면 기자’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지방신문사들의 폐해가 크다”고 설명했다.

물론 일부 지방 신문사의 폐해를 눈감자는 것은 아니지만 이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고 공정위가 나설 일도 아니라는 비판이 나온다. 동아 조선 중앙일보 등 ‘빅3’ 신문사에 공정위가 초점을 맞춘다는 비판을 피해나가기 위한 ‘물타기’ 작전일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경제부처인 공정위가 점차 정치적 목적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의혹을 받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최영해기자>moneychoi@donga.com

전문가의 신문고시 비판

▽조용중(趙庸中·신문공정경쟁심의위원회 위원장)〓전국 4곳에 신고센터를 만들겠다는 것은 처음부터 정부가 신문시장에 직접 개입하겠다는 말이다. 예상은 했었지만 13일 신문고시 발표 당시에는 자율규제를 원칙으로 한다고 하지 않았나. 공정위는 현재 신문보다 훨씬 경쟁이 심한 분야에도 개입을 않고 있다. 신문에 대해서만 이런 조치를 취한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공정위의 신고센터 운영이 제대로 이뤄질지도 의문이다. 신고센터를 제대로 운영하려면 인력이 엄청나게 많이 필요한데 공정위가 그런 여력이 있을까. 또 신고센터 설치는 ‘신문업계의 싸움을 정부가 나서서 조장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현재 신문협회에 접수되는 신고는 독자신고보다는 신문지국간의 ‘음해성 신고’가 훨씬 많다. 정부가 신고를 받는다고 이런 풍토가 사라질리 없다.

규제를 줄이자는 것이 현정부의 이념이다. 그런데 약속과 달리 처음부터 정부가 개입하는 것은 시장경제와 자유경쟁 원칙에 어긋난다.

▽추광영(秋光永·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자율규제를 우선 보장하겠다”라고 해놓고 신고센터 얘기를 꺼내는 것은 정부 정책에 일관성이 없다는 것 아닌가. 원래 취지대로라면 직접적인 규제 이전에 신문협회에서 해결책을 모색할 시간을 먼저 주었어야 옳다. 공정위의 발표는 너무 성급하다는 생각이다.

규제개혁위원회에 의뢰해 결정된 사안을 공정위가 침해한다는 것은 규개위의 존립기반을 흔드는 행위다. 규개위 발표가 며칠 지나지도 않아 전혀 반대되는 일을 하면 원래 의도가 ‘언론 규제’였다고 하는 것밖에 더 되겠는가.

또 공정위가 받은 신고를 토대로 신문협회에 처벌을 요구한다는 것은 ‘손 안대고 코풀기’ 식의 논리로밖에 볼 수 없다. 처벌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공정위인데 막상 ‘험한 일’은 신문협회에 시키겠다는 말이다.

처음 취지대로 먼저 신문협회가 자율적 규제를 잘 하는지나 지켜보기 바란다.

<최영해·문권모기자>money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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