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경협의 현주소]교역 4억달러 넘었지만 '속빈 강정'

  • 입력 2000년 12월 27일 18시 46분


《현대의 금강산 사업이 2년 만에 더 이상 버티기 힘든 적자를 나타내자 민간업계에서는 “정부와 기업 모두 남북경협을 차분히 점검할 때가 됐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높다. 현대건설 현대자동차 등 현대계열사가 출자해서 만든 현대아산은 98년 11월 금강산관광사업을 시작한 이후 6억1200만달러를 지출했지만 수입은 2억3300만달러에 그쳤다. 무려 3억7900만달러의 적자를 본 것. ‘햇볕정책’의 상징사업이자 잃어버린 반쪽, 북한 땅을 밟을 수 있다는 정서적인 이유 등으로 2년 간 화려한 조명을 받았지만 대차대조표상으로는 골병이 들어있는 것.》

업계는 올 남북경협에 대해 “남북정상회담 이후 개성공단, 경의선연결공사 착공 등 굵직굵직한 뉴스는 많았지만 구체적으로 진전된 것은 별로 없다”고 잘라 말한다. “정부가 민간의 남북경협사업을 대북정책의 지렛대나 성과물로 사용하려는 유혹을 버리고 민간기업이 대북사업을 통해 돈을 벌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는 것이 업계의 한결같은 목소리.

돈을 좇는 기업의 특성상 투자의 안전과 수익성이 보장되는 환경이 조성되면 정부가 등을 떠밀지 않아도 기업들이 경쟁적으로 대북사업을 활발하게 전개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남북경협 성과의 이중성〓금년은 민간보다는 정부차원의 남북경협이 중대한 진전을 이룩한 해로 기록된다.

현대경제연구원 김정균 박사는 “89년 남북간에 단순교역이 시작돼 92년 임가공 무역으로 발전된 이후 올해는 개성공단 사업, 경의선 연결공사가 착공되고 남북당국자간에 투자보장협정을 맺기로 합의하는 등 교역을 넘어서 남한의 대북 투자가 활발히 모색된 것이 큰 변화”라고 말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북한팀장 조동호 박사는 “정부차원의 남북경협은 정치적인 의미에서 중대한 진전이지만 경제적인 관점에서는 미흡한 점이 많다”고 말했다.

정부간 남북경협은 본질적으로 남한 국민의 세금이나 공공자금이 재원이기 때문에 정치적인 의사결정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하지만 기업의 대북 투자는 더 구체적이고 획기적인 투자환경이 조성돼야 활발해질 것이라는 지적.

무역업계의 한 관계자는 “이달 초 북측이 합리적인 이유 없이 경협물자 운송을 막는 등 북한이 아직도 남북경협에 대한 일관된 원칙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고 금강산사업이 적자로 위기에 빠지는 민간의 남북경협은 오히려 후퇴한 감이 있다”고 말했다.

또 일부 재벌그룹은 대북사업을 선도해온 현대그룹이 자금난에 빠지면서 정부가 대북 투자에 나설 것을 은근히 유도하고 있지만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정부가 등을 떠밀면 어쩔 수 없이 준조세적인 차원에서 시늉은 내겠지만 수익성이 보장되지 않는 대규모 대북사업은 하지 않겠다는 것이 이들 그룹의 입장.

▽남북 교역 및 대북 투자의 꾸준한 증가〓금년 남북간의 교역은 사상 처음으로 4억달러를 넘어서는 등 일정부분 성과가 있었다. 특히 농수산물 반입, 의류 등 단순 임가공이 지속되면서 경협대상이 전기전자, 자동차 등 고부가가치 및 핵심 기간산업으로 옮아갈 조짐이다.

제일모직 LG상사 SK글로벌 등이 북한에서 진행중인 의류 임가공업은 이제 어느 정도 정상적인 궤도에 들어섰다.

LG와 삼성의 20인치 TV와 라디오카세트 생산공장도 자리를 잡았다. 삼성전자는 북한의 소프트웨어인력을 이용한 사업도 시작했다. 수익성에 대한 논란은 있지만 통일그룹의 남포 자동차공장 건설도 계획대로 진행중이다.

태창도 7월부터 금강산 샘물을 들여와 국내에서 판매하고 있고 녹십자는 북에서 생산한 약재를 곧 국내에 들여올 예정이다.

그러나 아직도 대북사업을 통해 돈을 번 사업은 많지 않다. 대북 투자 기업인이 대부분 북한출신이고 “현재보다는 미래를 내다보고 투자를 한다”는 이들의 말이 이런 현실을 대변한다.

▽정부는 정부 역할에만 충실하라〓삼성경제연구소 신지호 박사는 “정부는 이제 정부와 민간차원의 남북경협사업을 엄격히 분리, 민간차원의 경협에는 개입하지 말고 기업들이 안심하고 북한에 투자할 수 있는 제도적 환경을 만들어 가면서 민간기업이 투자하기 힘든 철도 도로 통신 등 사회기반시설 확충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한다.

정부차원의 남북경협사업은 지원의 성격이 짙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지원의 규모 시기 방법 등에 관해서 국민의 동의를 얻어서 집행하고 수익성이 생명인 기업의 대북사업에 정치논리가 적용돼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병기기자>eye@donga.com

▼ 무엇이 문제인가 ▼

금강산 관광사업에 따른 적자누적으로 현대측이 어려움을 겪는 등 민간차원의 대북(對北)경협사업이 위기를 맞고 있다. ‘정경분리’ 원칙을 고수하고 있는 정부의 관리기능 부족과 남북경협의 원활한 추진을 위한 법적 제도적 장치 미비 탓이다.

남북은 12월 평양에서 열린 4차 장관급회담에서 투자보장협정 이중과세방지협정 등 4대 경협합의서에 서명했지만 국내법적 절차가 남아있어, 아무리 빨라도 내년 6월이 지나야 대북경협에 대한 법적 보장을 기대할 수 있다.

그나마 합의서에 명시된 사항이 남북간의 경협에서 일어날 수 있는 분쟁의 ‘최소한’을 일반적인 기준에 의거해 규정하고 있어, 실제 경협과정에서 일어나는 각종 분쟁을 효과적으로 해결해 줄지는 의문이다.

삼성경제연구소의 동용승(董龍昇)북한연구팀장은 “전반적인 원칙에 합의했다는 점에서 전혀 의의가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구체적인 사례가 발생할 때 이 합의서가 얼마만큼 효력을 발휘할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민간의 대북사업에 대해 승인권은 갖지만 사업수익성이나 손실보전 등에 대해서는 일절 개입하지 않겠다는 정부의 원칙도 폐쇄적인 북한사회의 특수성을 고려할 때 무책임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충분한 대북정보를 갖고 있지 못한 민간기업의 대북 경협사업을 돕기 위해서 북한사회와 시장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정부의 책무라는 것.

오히려 정부가 남북 화해 협력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북한의 시장가치를 부풀리거나 정확한 가이드라인 제공 의무를 게을리한다는 불평도 나오고 있다.

한때 ‘햇볕정책의 첫 결실’로 주목받았던 현대의 금강산 관광사업의 경우 애초부터 수익성이 없다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무리하게 추진했다가 낭패를 본 대표적인 케이스로, 남북 양측 모두 향후 대북사업의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동국대 고유환(高有煥)교수는 “남측이 배운 교훈 못지않게 북측도 경협을 통해 무엇인가를 얻기 바란다면 남측의 자본이 들어와도 이윤을 얻어낼 수 있다는 확신이 들도록 체제정비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태원기자>scooo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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