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부영의원, `보수' 논쟁 정면제기

  • 입력 2000년 11월 17일 16시 50분


김용갑(金容甲) 의원 발언 파문과 관련해 한나라당 이부영(李富榮) 부총재가 진정한 보수주의의 의미 및 보수주의 정당으로서의 한나라당 정체성 문제를 정면으로 제기하고 나섰다.

이부영부총재는 17일 김용갑의원의 조선노동당 2중대 발언과 관련, "대립과 갈등의 냉전구도를 그대로 유지하고, 필요하다면 전쟁도 불사해야한다는 것인지 분명히 입장을 밝혀달라"고 요구했다.

이부총재는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한나라당은 변화를 유연하게 수용하고 주도할 수 있는 건강한 보수주의의 기조 아래 이념적 스펙트럼을 포용하는 국민통합 정당이 돼야 한다"며 그러나 "최근의 발언 등은 당의 보수적 정체성을 강화하기 보다는 극우적 편향을 강화해 당의 입지와 지지기반을 위축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나라당내 진보진영 그룹을 사실상 대표하고 있는 이 부총재는 17일 `건강한보수주의의 생산적 논의를 위한 소론'이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통해 당내에서 이념적으로 다른 한쪽에 서있는 김용갑 의원류의 시각을 `보수'가 아니라 `과거에 대한 무조건적 집착'에 기초를 두고 있는 `수구'로 규정하고, 이념문제에 대한 당의 분명한 입장정립을 촉구했다.

이 부총재는 이 글에서 "우리사회의 보수주의자임을 자처하는 분들이 지키고자하는 가치와 사회의 틀이 무엇인지 논의할 필요가 있다"면서 "대립과 갈등의 냉전구도를 그대로 유지하고, 필요하다면 전쟁도 불사해야한다는 것인지 분명히 해달라"고요구했다.

이어 이 부총재는 "진정한 보수는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하고 수용하며, 때로는 주도해야 하는 것"이라면서 "한반도 주변정세가 객관적으로 급변하고 있는 상황에서대립적 선악개념에 사로잡힌 과거의 발상을 고집하는 것이 이런 진정한 보수주의의 본령에 충실한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며 김 의원의 시각을 꼬집었다.

자신의 입장표명 배경에 대해 그는"김 의원 발언파문을 소모적인 정쟁의 계기가 아니라 우리사회의 사상적 건강성을 다지는 생산적 논쟁의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라는 생각에서 나서게됐다"고 밝혔다.

한편 김용갑 의원은 이에 대해 "여당과 경쟁하고 있는 야당의 입장에서 서로 시각면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더라도 서로 단결하는 것이 중요함에도 불구, 부총재의 입장에서 굳이 다시 문제를 제기하고 나온 의도를 잘 모르겠다"면서 "일단은 우리당을 지지하는 국민들의 입장도 있고, 당의 단합에 대한 요구도 있기 때문에 이 문제에 대해 더이상 얘기하고 싶지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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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한나라당 이부영 부총재의 보도자료 전문이다.

건강한 보수주의의 생산적 논의를 위한 소론

김용갑 의원 발언 파문이 소모적인 정쟁의 계기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사상적·이념적 건강성을 튼튼히 다지는 생산적 논쟁의 계기가 되를 바라는 뜻에서 이 짧은 글을 썼다.

김용갑 의원의 발언에 대해서 일종의 역(逆)매카시즘적 비난으로 일관한다면 아무런 생산적 성과를 거두지 못할 것이다. 이번 발언을 계기로 우리 사회에 있어서 보수의 의미가 무엇인지, 그 개념은 어떻게 정립돼야 하고, 세력으로서의 실체는 어떠해야 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토론하고, 모색하는 작업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 우리 사회의 보수주의자임을 자처하는 분들이 지키고자 하는 가치와 사회의 틀이 무엇인지 논의할 필요가 있다. 대립과 갈등의 냉전 구도를 그대로 유지하고 지켜야 한다는 것인지, 필요하다면 전쟁도 불사해야 한다는 가치를 지키고자 하는 것인지 분명히 해야 한다. 설령 그런한 가치들이 과거 우리 사회를 장기적으로 지탱해 왔던 기조였다고 하더라도, 그 역사적 정당성과 시대적 효율성에 대한 판단을 뒤로 한 채, 무조건적으로 유지하고 보존하려 한다면 진정한 보수주의의 본령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영국 보수당의 이론적 기초를 닦은 보수주의 정치사상의 태두인 에드먼드 버크(Edmund Burke, 1729~1797)는 "적절한 개혁의 수단을 갖지 않는 보수주의는 자기보존의 수단도 없다"는 유명한 보수주의의 기본 원리를 설파한 바 있다. 즉 진정한 보수는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어야 하며, 그것을 수용할 뿐만 아니라, 때로는 주도해야 한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우리가 원하든 원치 않든, 한반도를 둘러싼 대내외적 정세는 객관적으로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격랑 속에서 대립적 선악 개념에 사로잡힌 과거의 발상을 고집하는 것이 과연 유연하게 변화를 수용하고 이끌어나가야 하는 진정한 보수주의의 본령에 충실한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결국 '과거에 대한 무조건적 집착'은 흔히 사용하는 표현으로 '보수'가 아니라 '수구'에 불과할 뿐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수구적 발상에 입각한 발언과 행동들이 과연 한나라당에 도움이 될 것인가? 한나라당의 정체성의 변화를 유연하게 수용하고 주도할 수 있는 건강한 보수주의의 기조 아래 다양한 이념적 스펙트럼을 포용하는 국민통합 정당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최근의 발언과 그에 동조하는 듯한 일부의 태도는 당의 건강한 보수적 정체성을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극우적 편향을 강화함으로써 오히려 당의 입지와 지지기반을 위축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보수와 진보의 구분은 어느 쪽이 정의이고 양심적인가 하는 선악 개념, 적대적 세력 관계의 문제가 아니라, 어느 쪽이 보다 합리적이고, 효율적인가를 판단하는 정책적 수단에 대한 선택의 문제이자 상호보완적 개념의 문제이다.

이러한 점에서 현 정권의 대북 정책의 합리성, 효율성에 대한 비판은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남북관계에서 가시적 성과를 거둬야 한다는 조급증으로 인해, 절차의 합리성과 효율성, 국민적 합의를 생략한 채 정책을 추진한 것이 결과적으로 이번 발언과 그에 대한 심정적 동조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했다는 점은 현정권의 반성이 필요한 대목이다. 그러나 합리적 수준의 비판이 아니라, 상호간의 관계를 적대적으로 몰고 가는 것은 보수주의의 입지까지 축소시키게 될 것이다.

또한 현재와 같이 다원화된 사회는 보수와 진보의 쟁점 형성이 다양한 수준에서 중층적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으며, 각 정치 세력은 그것을 적절하게 수용해야 할 필요가 있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는 노동·복지·환경·여성·낙태 사형제 폐지 등 다양한 수준에서 보수와 진보적 견해가 교차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따라서 현재와 같이 다양한 쟁점이 공존하고 있는 사회를 과거 냉전 이데올로기 하나만을 기준으로 보수와 진보로 구획하는 것은 우리 사회이 다양한 현상을 설명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다원화된 사회의 틀을 깨는 것에 다름아니다.

지금 시기는 개혁이라는 수단을 통해 우리 사회가 진정으로 보수할 필요가 있는 가치와 틀을 만들어 가고 축적하는 시기이다. 그러한 가치들로서 우리가 공유할 수 있는 것들은 한반도의 평화정착, 법치주의, 의회민주주의, 검찰과 사법권의 독립, 인권존중, 경제정의, 국민통합 등일 것이다. 그러한 전통과 가치가 우리 사회의 기저에 축적돼 흔들림 없는 기반으로 자리잡을 때, 비로소 보수와 진보는 배타적·적대적 진영 개념이 아니라 순기능적 상호보완 관계로 정립될 수 있을 것이다.

안병률 동아닷컴기자 mokd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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