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상봉/50년만의 만남이 남긴것]'북한 쇼크'

  • 입력 2000년 8월 18일 18시 2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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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북한 여성들에게 보낼 생리대용 포목을 조달하느라 애를 먹었습니다. 제가 보고 들은 북한의 실상을 이야기해도 별 반응이 없어요. 최근 평양을 중심으로 한 북한의 번듯한 모습과 성공해 가족을 만나러 온 월북자들을 본 이들의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북한돕기운동을 펼쳐온 원불교 강남교당 박청수교무(63)는 18일 북한돕기 성금과 물품이 잘 걷히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새로운 사회과제 등장▼

반세기만의 남북이산가족 상봉이 끝나고 남북 방문단은 각자 삶의 터전으로 돌아갔다. 이제 이번 상봉이 남긴 문화적 충격의 파편과 그 신드롬이 우리사회의 새로운 해결과제로 등장했다.

통일의 주역이 될 20, 30대 젊은이들은 그동안 받은 대북 관련 교육의 허구성에 유감을 표시하고 있다. 북한 사람들은 ‘모두 헐벗고 속도전에 휘말려 있으며 별보고 출근해 별보고 퇴근한다는데 TV에 비친 북한의 모습과 남한에 온 인사들의 모습은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인터넷 채팅방에서 만난 한 대학생은 “남에도 생활수준이 하늘과 땅처럼 차이가 나지만 북한 사람들이 모두 그렇게 굶주리지 않았으며 인간적인 면도 풍부한 것 같다고 얘기하는 친구들이 많다”고 말했다. 그는 “물론 이번에 서울에 왔던 북한사람들은 극소수 특권층이고 수혜층이란 사실을 잘 알고 있다”면서 “이같은 반응을 ‘요즘 젊은이들이 뭘 모르고 날뛴다’는 식으로 엉뚱하게 해석하면 곤란하다”고 강조했다.

결국 이번 반응의 특징은 ‘북한 흠모’식의 순진한 발상이 아니라 ‘북한의 문제와는 별도로 그동안의 교육 등에 배신감을 느끼고 있다’는 점이다.

▼"남북관계 정략이용 말아야"▼

가수 박진영씨(29)는 “예를 들어 월북자들이 대부분 숙청당했다고 배웠는데 이번에 보니 사실과 다른 것 같았다”면서 “남북한의 진정한 화해와 번영을 위해서는 우리가 북한 체제나 반공을 정략적으로 이용한 것도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하이텔 등 4대 PC통신 게시판에는 북한지도층과 인민들의 나라사랑과 전통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더라는 반응이 올라와 있다. 이와 관련, 영화평론가 조희문씨(45·상명대교수)는 “오히려 우리 정부와 언론의 태도가 문제였다”면서 “이산가족 상봉의 눈물나는 장면만을 비추다 보니 냉정한 분석기사나 프로그램을 찾아보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신문과 방송을 통해 상봉을 지켜본 시민들 사이에는 북측인사들이 대화할 때 수시로 사용한 ‘위대한 지도자 김정일 장군님의 은덕’이란 표현을 놓고도 갖가지 분석들이 나오고 있다. 주부 박모씨(40)는 “그동안 이에 대한 여러 해석이 있었지만, 한 탈북자가 방송에 나와 그건 남한사람들이 ‘주님의 은총’ 또는 ‘부처님의 자비’라고 말하는 것과 똑같은 현상이라고 설명한 것이 가장 설득력이 있었다”고 말했다.

▼"부정적인 면도 드러내야"▼

앞으로는 남북의 이질적 요소를 적극적으로 부각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바람직하다는 견해도 나오고 있다. 최근 며칠간 남한사람들은 북한과 북한사람의 긍정적인 면을 보려했고 실제로 정부는 긍정적인 면만 부각하려고 노력해 왔지만 곧 한계가 드러날 것이란 분석이다.

동국대 북한학과 박순성교수는 “지금은 너무 조심스러워 정부나 언론이 부정적인 면과 후유증에 대해 입을 닫는 경향이 있는데 긍정 일변도로 볼 경우 양측의 관계를 좁히는 데 기여하겠지만 본질이 왜곡된 채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박교수는 “부정적인 면을 확인해야 이질감을 극복하고 통일 준비에도 도움이 될 것이므로 장기적으로는 이질감과 부정적인 측면을 드러낼수록 좋다”는 견해를 밝혔다.

익명을 요구한 정부 중앙부처 국장은 “북한이야 김정일위원장을 중심으로 의견 통일이 이루어지겠지만 우리 내부적으로 대북정책 기조에 대한 의견통일이 이루어지지 않고 논란이 일어나 남북문제보다는 우리 내부의 ‘남남문제’가 더 심각해지지 않을까 걱정도 된다”고 토로했다.

<허엽·김희경기자>h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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