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가족 상봉 D-11]유명인사들의 이산 아픔

  • 입력 2000년 8월 3일 19시 05분


6·25전쟁 때 납북된 위당 정인보(爲堂 鄭寅普)선생의 셋째딸인 국문학자 정양완(鄭良婉·72)씨와 막내아들인 정양모(鄭良謨·66)씨 남매. 이들은 이산가족 생존자 명단이 신문에 나던 날, 돌아가신 아버지와 월북한 둘째언니이자 누나인 경완(庚婉)씨가 생각나 밤새 울었다.

북한에서 부수상을 지낸 벽초 홍명희(碧初 洪命憙)의 둘째 며느리인 경완씨. 최근까지 살아있다는 소식을 들었으니, 지금 나이 여든일 것이다. 양완씨는 그러나 이번에 상봉신청을 하지 않았다.

“언니가 유명 인사의 며느리여서 조심스럽습니다. 만나려면 중국에서 만날 수도 있었지만 혹시 언니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지 않을까 해서 참아 왔어요.”

양완 양모씨 남매는 이번 기회에 아버님의 묘소 위치만이라도 확인했으면 하는 바람도 간절하다.

▼김기창(한국화가)▼

동양화단의 원로 운보 김기창(雲甫 金基昶·88)화백은 51년 동반 월북한 여동생 기옥(74), 막내동생 기만(70대 초반)과의 해후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운보는 90년대초 북한에 다녀온 인사들을 통해 여동생이 여의사가 됐고 기만은 공훈화가가 됐다는 소식을 전해들었다. 이후 인편을 통해 동생의 편지와 사진, 작품도 접했다.

주위에서 동생들과 제3국에서의 만남을 주선하기도 했으나 운보는 단호히 거절했다. 공연히 아는 내색을 했다가 동생들에게 누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남북정상회담을 지켜보면서 운보의 심경에도 변화가 일었다. “살아생전에 꼭 두 동생을 만나고 싶다”는 것이다.

서울 종로구 사간동 갤러리현대 등에서 미수전을 갖고 있는 운보는 동생 기만의 작품 1점도 함께 전시하고 있다.

▼이문열(소설가)▼

이문열(李文烈·52)씨는 요즘 부친 이야기만 나오면 손사래부터 친다. 이산가족 상봉을 앞두고 각종 매스컴에서 인터뷰를 청했지만 극구 “할 말 없다”며 고사해왔다. 지난해 8월 부친 이원철(李元喆)씨를 만나러 중국 옌지(延吉)로 갔다가 작고했다는 비보만 듣고 돌아온 뒤부터다.

“부친이 돌아가신 것 같지만 아직도 몇몇 브로커들은 부친이 생존해있다는 말을 전해옵니다. 심지어 5만달러만 주면 부친과 잔치를 벌여주겠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솔직히 긴가민가합니다.”

그는 ‘한 시대가 끝났다’는 말로 이산(離散)의 강박관념에서 벗어나려고 했지만 49년간 이어온 인연을 끊기란 말처럼 쉽지 않은 듯했다.

그럼에도 이씨는 이산가족 상봉을 신청하지 않았다. 이제 북한 당국이 정확한 사실을 공식적으로 확인해주는 일만 남아 있다고 생각한다. “제사상이라도 올리려면 기일이라도 알아야 할 것 아니냐”는 말에는 물기가 묻어 있었다.

▼김세원(방송인)▼

KBS1 라디오에서 ‘당신의 밤과 음악’을 진행하고 있는 방송인 김세원(金世媛·55)씨는 연일 쏟아지는 남북 이산가족 상봉 뉴스를 들으며 48년 월북한 아버지 생각에 또 한번 안타까움에 젖는다. ‘한국 최초의 현대 음악가이자 민족음악가’였던 아버지(김순남·金順男·1983년 작고 추정)가 조금만 더 살아주셨더라면….

‘산유화’ ‘인민해방가’ 등을 작곡해 해방 공간 음악계에서 이름을 떨쳤던 김순남. 남쪽에서는 좌익으로 몰려 작품이 금지됐고, 북쪽에선 ‘부르주아 음악을 한다’는 이유로 숙청됐던 비운의 음악가.

일점혈육인 김씨의 바람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날짜와 묻힌 곳에 대한 소식이라도 듣는 것. 김씨는 1990년 러시아 모스크바의 평양식당에서 만난 북측 관리로부터 “북에 김순남선생의 묘지가 있다”는 말을 듣고 술 한 병을 사서 건네며 “내 대신 아버지 무덤가에 뿌려달라”고 간곡히 부탁했으나 거절당해 ‘간접 성묘’조차 하지 못한 채 눈물을 쏟아야 했다.

:백기완(재야운동가):

통일운동을 벌이고 있는 백기완(白基玩·68)씨는 서울에서 남북장관급회담이 열린 1일 금강산으로 떠나는 배들이 정박하는 강원 동해시를 찾았다.

“그동안 방북 신청도 여러 번 해봤고 이번에도 상봉을 신청했지만 안됐어요. 북쪽으로 떠나는 배라도 보고 싶어서 동해를 찾았어요.”

평생을 민주화와 통일운동에 바쳐온 그의 목소리에는 아쉬움이 잔뜩 배어 있다. 북에 있는 어머니와 큰누이에 대한 그리움이 다시 밀려오기 때문일 것이다.

“어머니는 올해 102세가 되십니다. 큰누이는 72세고. 살아 계실 겁니다. 돌아가셨을지 모른다는 상상은 아직 한번도 해본 적이 없습니다.”

황해도 은율이 고향인 그는 “1946년 13세 때 축구선수가 되겠다며 아버지 손을 잡고 남쪽으로 내려온 게 영영 이별이 됐다”면서 “당당하던 어머니는 아직도 기완이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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