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입력 2000년 7월 10일 19시 00분
공유하기
글자크기 설정
정부는 10일 국무회의에서 공공개혁에 관한 업무를 맡아온 기획예산처 산하 행정개혁위원회를 폐지하고 대통령 직속의 정부혁신추진위원회를 설치하는 안건을 의결했다.
이계식 기획예산처 정부개혁실장은 “최고 통치권자가 나서 공공부문 개혁을 본격화하려는 의미”라며 “하반기부터는 가시적인 성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 금융 노동 등 다른 부문에 비해 크게 미진한 공공부문의 개혁을 획기적으로 가속화시키기 위한 조치라는 것이다. 민간단체들은 그동안 정부가 민간에는 강력한 구조조정을 요구하면서 정부 스스로는 매우 소극적이라는 비판을 해왔다.
민간의 구조조정을 독려하기 위해서라도 정부부터 본을 보이겠다는 의도이다. 이 조치는 또 집권 후반기를 맞아 사실상 ‘공룡화’한 공기업과 정부내 비능률적 요소를 척결한다는 의도도 담고 있다. 하지만 출범 이후 2년반이라는 세월을 흘려 버린 정부의 개혁이 자문위원회를 대통령 직속으로 바꾸는 조치만으로 성과를 거둘 수 있겠느냐는 회의론도 만만치 않다.
▽공공부문은 ‘개혁의 지진아’〓개혁이 지지부진한 대표적 사례로 공기업 민영화가 꼽힌다. 정부는 98년초 11개 공기업을 모두 민영화한다는 방침을 세웠지만 모회사가 팔린 곳은 국정교과서와 한국종합기술금융 등 두 곳뿐. 대한송유관공사가 막바지 절충을 벌이는 외에 매각 대상중 ‘핵심’으로 불리는 한국전력 한국중공업은 요지부동이다.
국내 최대 공기업인 한전은 당초 자회사로 분할해 매각될 예정이었지만 관련법이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해 언제 어떤 방식으로 민영화될지 기약을 못하는 실정. 한중도 정부지분 51%를 작년안에 경쟁 입찰을 통해 매각키로 한 원칙이 훼손돼 표류하고 있다.
이 때문에 대기업에는 매섭기만 한 정부의 구조조정 칼날이 공기업만 만나면 맥을 못 춘다는 볼멘소리가 민간업계를 중심으로 터져 나오고 있다. 정부가 재벌그룹 총수의 전횡에 대해서는 ‘원칙’을 강조하면서 정작 자신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공기업만 만나면 한없이 너그러워진다는 비판이다.
정부 조직을 일부 바꾸고 공무원 인력을 감축하긴 했지만 정부부문의 방만한 조직과 인력운용도 여전하다는 지적. 익명을 요구한 국책연구기관의 연구위원 A씨는 “개혁의 주체가 돼야 할 관료와 공기업 경영진중 어느 쪽도 개혁이 달갑지 않은 탓에 나타난 현상”이라며 “정권 출범 직후에는 개혁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이들을 압박하는 수단이 됐지만 집권층의 의지가 이완된 것처럼 비치면서 그나마 시들해졌다”고 말했다.
▽대통령이 나서긴 하는데…〓정부 고위관계자는 “이번 위원회 개편 조치는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된 결과”라며 “개혁이 표류되자 더 이상 두고봐서는 곤란하다는 판단을 내린 것 같다”고 말했다.
이달 중순 출범하는 새 기구는 기획예산처 행정자치부장관과 중앙인사위원장 국무조정실장 대통령정책기획수석비서관 시도지사협의회장이 정부측 위원으로 참석하며 해당 안건과 관련있는 국무위원을 부를 수 있다.
기획예산처 관계자는 “지금까지는 부처간에 의견이 엇갈리면 본래 취지대로 진행시키기가
힘들었는데 앞으로는 개혁의 속도를 빨리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문제는 이런 고강도 수단을 써도 성과가 없을 경우 공공부문 개혁의 포기로 비칠 수 있다는 점. 공공 개혁에 대한 정부의 의지를 가다듬고 정공법으로 다루기보다는 ‘위인설관’의 소지가 있는 대통령 직속 위원회부터 만들고 보자는 발상이야말로 행정편의주의의 표본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A씨는 “오죽했으면 대통령이 나섰을까 하는 비애감마저 든다”면서 “이번이야말로 공공개혁의 마지막 기회”라고 말했다.
<박원재기자>parkw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