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野 정책협의회 거부]결국 '數의 정치'로 가나?

  • 입력 2000년 5월 24일 19시 37분


《총선 직후부터 구두선처럼 대화와 타협을 외쳐오던 민주당이 이한동(李漢東)국무총리의 임명을 계기로 실질 과반수 국회의석 확보를 통한 ‘강한 여당’을 주창하는 등 태도를 돌변하면서 정국이 급랭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여권이 상생(相生)의 정치를 파기하고 있다고 비난하며 24일로 예정됐던 여야 정책협의회에 불참하는 등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여당 "덩치가 힘!" 의석과반 겨냥 돌변▼

정국운영에 관한 여권의 태도가 ‘표변’이라고 할 만큼 달라졌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지난달 17일 대국민담화 이후 기회 있을 때마다 “여야가 대화와 협력의 큰 정치를 열어가야 하며 총선 민의에 따라 소임을 다해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 인위적 정계개편은 없다고도 했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들은 이를 두고 “이제는 ‘수(數)의 정치’가 아니라 대화와 타협을 통한 ‘질(質)의 정치’를 해야 한다는 의지 표현”이라고 설명했다. 당시 박상천(朴相千)총무도 “어느 당도 과반을 얻지 못한 만큼 대화와 타협이 중요하다”고 누차 강조했다.

그러나 이한동(李漢東)총리지명 즉, 자민련과의 공조복원 이후 여권에선 ‘숫자의 힘’을 확보해야 한다는 소리가 드세지면서 ‘대화와 타협’은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

23일 민주당 의원총회에서 박상천의원은 “민족적 과제인 경제와 남북문제에 관한 정책을 국회에서 통과시키기 위해 실질적 과반 확보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 핵심 당직자는 “차기 대권 문제가 있기 때문에 어차피 한나라당과는 협조하기 힘든 것 아니냐”고 부연까지 했다.

더욱이 여권은 정국구도를 바꾸기 위해 ‘뒷거래’를 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여권 관계자들은 공조복원의 대가로 자민련에 ‘교섭단체 구성’을 약속했다는 점을 부인하지 않는다.

박태준(朴泰俊)전국무총리의 돌연한 낙마가 여권의 정국재편 시도를 앞당겼다는 분석이 나온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자민련 및 무소속과의 연대는 진작부터 예상돼 온 일”이라며 “다만 그 시기가 앞당겨진 것 뿐”이라고 말했다.

여권의 속내가 이럴진대 향후 여야관계는 결코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윤승모기자>ysmo@donga.com

▼한나라당,여야정책협의회 거부▼

“더 이상 여당의 들러리가 되지는 않겠다.”

한나라당 정창화(鄭昌和)정책위의장은 24일 오전 중 개최가 예정됐던 여야 정책협의회를 거부키로 결정한 주요 당직자회의 결과를 발표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자민련 이한동(李漢東)총재의 총리임명을 계기로 민주당이 수의 정치, 힘의 정치를 하겠다고 하는 상황에서 여야의 정책협의는 무의미하다”며 “여당의 자세변화가 있기 전에는 정책협의회에 참석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여야 정책협의회는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간 영수회담 합의사항 중 가장 구체성을 띠고 있는 사안. 때문에 이날 여야 정책협의회 개최 무산은 앞으로 여야관계가 순탄치 않을 것이라는 신호탄으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다.

실제로 22일 이한동총리서리 임명 이후 가시화되고 있는 민주당과 자민련의 공조 분위기에 대한 한나라당의 반발 분위기는 시간이 갈수록 비등점(沸騰點)을 향해 치닫고 있다.

대변인실은 이날 오전에만 민주당과 이총리지명자를 비난하는 논평을 4건이나 냈다.

비난의 수위도 전에 없이 높았다.

논평들은 김대통령의 이총리 지명에 대해선 ‘쿠데타나 다름없는 만행’이라고 했고, 이총리서리에 대해서는 ‘소인배의 표본’ ‘거짓말쟁이 총리’ ‘놀라운 변신이 가관이다’는 등 원색적인 용어를 그대로 써가며 비난했다.

여야 정책협의회 참가여부를 논의한 주요 당직자회의에서도 “여당의 태도와는 상관없이 민생문제는 계속 논의해야 한다”는 의견도 일부 제기됐지만 “여당이 영수회담 정신을 뒤집으려는 상황에서 우리는 배알도 없느냐”는 강경한 목소리가 회의장을 압도했다는 후문이다.

<공종식기자>k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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