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김영동/어지러운 음악 교만한 정치

  • 입력 1999년 6월 4일 19시 17분


밀레니엄이라는 말이 올해 들어 많은 분야에서 사용되고 있다. 다가오는 21세기는 문화의 시대라고 누구나 주저없이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화적 실체나 현상은 아직도 손에 잡히질 않고 세계의 문화 정보는 질식할 정도로 쏟아져 들어오고 있다.

대체 문화란 무엇인가. 우리 삶의 축적을 담아내고 또 그것을 드러내는 것이 문화가 아닌 가 싶다. 밀레니엄을 준비하는 여러 단체들이 행여 깊이 없이 반짝이는 아이디어 중심의 문화적 준비에만 그친다면, 그것은 우리가 진정으로 바라는 새 세기의 문화적 모양은 아닐 것이다.

아직도 우리 문화의 인식틀은 정립되지 않았다. 문화의 인식틀에 대한 깊이있는 고민이나 문제 제기도 돼있지 않다. 그저 발표하기 위한 발표회, 연주하기 위한 연주회가 있을 뿐이다. 여기에 덧붙여 ‘세계화’라는 실체없는 말에 얽매여 문화적 주체성마저 상실되는 것 같아 몹시 마음 상할 때가 많다.

매스컴에서는 지면이나 프로그램을 채우기 위한 나열에 그칠 뿐 새 천년을 맞아 끈기있고 지속적인 새로운 문화적 담론을 추구하거나 그에 걸맞은 예술 행위에 대해 집요한 관심을 보여주지 않은 지 오래인 듯 싶다.

원래 문화란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형성되는 것이라고 한다면 더욱 더 지난 세기의 문화를 반성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한가지 불안한 점은 아직도 정부는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고 문화산업이라는 틀 속에 모든 문화예술을 담으려고 하는 점이 매우 불쾌하다.

옛 중국의 악서(樂書)인 악기(樂記)와 조선왕조가 펴낸 악학궤범(樂學軌範)에 우리를 깨우칠만한 글이 들어 있다.

“궁음(宮音)이 어지러울 때는 그 소리가 거칠고 사나운데 군(君)이 교만하고 사특하기 때문이다. 상(商)음이 어지러울 때는 그 소리가 기울어지고 바르지 못한데 이는 신(臣)의 관도(官道)가 해이하여 무너지기 때문이다. 이렇듯 다섯가지 궁상각치우(宮商角徵羽) 즉 군신민사물(君臣民事物)이 어지러울 때는 서로 다투며 학대하니 이를 만(慢)이라 한다. 이같이 되는 때는 며칠 안가 나라가 망할 것이다.” (악기)

비록 옛날이지만 요즘의 현실과 별로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또 악학궤범 서문을 보면 여러가지 음악의 느낌과 정치적 기술에 대해 피력하고 있다.

“음악이란 하늘에서 나와 사람에게 붙인 것이오, 허(虛)에서 발하여 자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니, 사람의 마음으로 하여금 느끼게 하여 혈맥을 뛰게 하고 정신을 유통케 하는 것이다. 느끼는 바가 같지 않으면 발하는 소리도 같지 않아 기쁨을 느끼면 소리가 날려 흩어지고, 노한 마음을 느끼면 그 소리가 거세지고, 슬픈 마음을 느끼면 그 소리가 애처롭고, 즐거운 마음을 느끼면 그 소리가 느긋하게 되니 그 소리의 같지 않음을 합해 하나로 만드는 것은 임금이 어떻게 인도하느냐에 달려 있다. 이것은 악(樂)의 도(道)가 백성을 다스리는 데 크게 관계되는 까닭이다.”

어떤 이는 무슨 옛날 이야기로 너스레를 떠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새로운 세기를 맞이하는 시기에 한번쯤 짚고 넘어가야 할 정치문화적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 옮겨본 것이다. 모든 것의 중심을 경제적 가치에 두었을 때 균형을 잃은 문화 현상을 어떻게 치유할 것인지 심히 고민이 앞선다.

김영동(작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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