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입력 1998년 9월 4일 19시 15분
공유하기
글자크기 설정
첩보영화의 한 대목이 아니다. 건설업체의 로비를 받았다는 혐의로 검찰의 소환을 받은 백남치(白南治) 한나라당 의원을 구인하기 위해 백의원의 부인을 미행하던 수사팀이다. 정치권에 대한 사정이 강도높게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검찰의 출두명령을 받고 일단 수사망을 피하고 보자는 정치인들의 ‘삼십육계’스타일이 여러 갈래다.》
검찰의 소환을 받은 백의원은 임시국회개원을 하루 앞둔 3일 하루 종일 검찰과 쫓고 쫓기는 숨바꼭질을 벌였다.
검찰은 2일 오후6시부터 한나라당 당사, 백의원의 삼성동집, 노원구 월계동 지구당사무소 등에 수사관을 배치하고 잠복근무를 했지만 백의원의 소재는 오리무중(五里霧中).
급기야 수사관들은 집에 들어오지 않은 백의원이 외부에서 부인을 만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해 백의원의 부인을 미행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미행을 눈치챈 백의원의 부인이 “세상에 이런 법이 어디 있느냐”며 반발하자 신병확보에 나섰다가 지친 수사관들은 “당신 남편이 만든 법”이라고 되받아치는 등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백의원은 3일 발신지 추적을 우려해 유선전화를 쓰지 않고 휴대전화를 이용해 검찰에 “국회가 개회중이라도 소환에는 응하겠다”는 뜻을 전해 검찰을 누그러뜨렸다.
지난 몇달 동안 한나라당과 국회에 ‘은신’하거나 잠적해온 신한국당의 이신행(李信行)의원. 1일 오후 이미 출두의사를 밝혔던 이의원은 3일 이날 하루 종일 자택에서 서울지검 수사관들과 더불어 ‘적과의 동침’을 했다. 오전6시반부터 검찰 수사관들이 구인장을 들고와 이의원의 외부출입을 견제했기 때문. 당사로 들어갈 경우 종전처럼 소환이 어려워지기 때문이었다.
국회가 열리면 ‘불체포특권’을 가지는 의원의 신분을 이용토록 하기 위해 한나라당이 임시국회를 6차례나 소집해 ‘이신행국회’라는 신조어를 만들기도 한 이의원은 6월에는 소환 당일 검찰청에는 안나가고 골프장에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도 했다.
2일 검찰의 소환방침을 전해 듣고 ‘홀연히’ 집을 나섰던 오세응(吳世應·한나라당)의원도 4일 임시국회가 열려 검찰의 임의적인 소환이 불가능해지자 비로소 동료의원들의 비호를 받을 수 있는 ‘안방’이라고 할 한나라당 의원총회에 모습을 드러냈다.
3일 전격 구속된 정대철(鄭大哲)국민회의 부총재는 꽤나 의연했던 편. 정부총재는 1일 검찰이 자신을 소환할 계획이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하루전 ‘스스로’ 서울지검을 찾아왔다. 하지만 이는 정부총재가 나름대로의 정보채널을 총동원해 탐문한 결과 “잠깐 조사만 받으면 된다”는 말을 믿고 방심했기 때문이라는 후문이다.
〈하태원기자〉scooo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