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선거운동 위장취업」기승…사표내고 운동원 활약

  • 입력 1998년 5월 22일 19시 39분


공무원들의 ‘선거운동원 위장취업’이 지방선거의 고질적인 병폐가 돼가고 있다. 현직 공무원이 사표를 내고 당선이 유력시되는 단체장의 선거운동을 도운 후 그 단체장이 당선되면 다시 요직에 임용되는 사례가 보편화되고 있는 것이다.

충주 농수산물 도매시장에서 일하는 공무원 K씨는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다시 사표를 냈다. 충주시장후보 L씨의 선거운동을 돕기 위해서다. 그는 95년 6·27선거 때도 사표를 냈었다. 충북도청에서 일했던 K씨는 당시 단체장이었던 L씨의 선거운동을 도왔고 L씨는 당선됐다. K씨는 그 공으로 농수산물 도매시장의 요직에 임용됐다. K씨는 이번에도 L씨가 당선되기를 바라고 있다. 당선만 되면 그는 더 좋은 보직을 받을지도 모른다.

K씨와 같은 공무원들은 전국 어디에서나 눈에 띈다. 경남도지사 후보 김모씨의 선거캠프에도 5명의 전직 공무원들이 선거참모로 참여하고 있다. 이들 역시 3년전 6·27선거 때 지금의 김모후보를 도와 그를 단체장에 당선시켰던 주역들이다. 진주시장후보 P씨의 캠프에도 공무원 2명이 사표를 내고 참모로 활약하고 있다. 남해군수후보인 K씨의 경우도 마찬가지. 충남의 경우 6·27선거에서 단체장후보 S씨의 선거운동을 도왔고 그 공으로 고위별정직에 임용됐던 공무원 4명이 이번에 다시 나란히 사표를 내고 S씨의 캠프에 합류했다.

당사자들은 “선거운동 대가로 공직을 받아도 별정직 또는 단체장 임명직인데다가 원래 선거란 어느 정도 엽관적 요소를 가질 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항변하고 있다. 또한 법적으로도 하자가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들 일부 ‘선거운동 공무원’으로 인해 공무원사회의 사기는 바닥이다. 일부 지역에서는 이미 ‘승진하고 싶으면 선거운동하라’는 자조의 말까지 나오고 있다.

지방행정이 정치바람에 휩쓸리면서 지방행정체계의 한 축이 무너지고 있다는 우려의 소리도 있다. 이들 ‘선거운동 공무원’들이 공무 중에 얻은 각종 정보와 자료를 통째로 들고 나와 지지후보에게 넘기는 일까지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부산 서구청장에 출마한 P후보가 동사무소 직원을 시켜 자신과 고향이 같은 주민들의 명단과 전화번호를 빼낸 혐의로 경찰의 수사를 받고 있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부산은 두 시장후보인 안상영(安相英·한나라) 김기재(金杞載·무소속)후보가 모두 전직 시장 출신이어서 시 공무원들이 저마다의 인연에 따라 두 후보에게 줄을 대고 경쟁적으로 시정(市政)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러다 보니 각 후보의 선거사무실에는 공개되지 않아야 할 도정 또는 시정에 관한 자료철의 복사본이 버젓이 나돌아다니기도 한다.

〈전국종합〓6·4선거 특별취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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