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통화기금(IMF) 사태와 북한의 지하핵시설 건설 가능성 제기 등 최근 전개되고 있는 일련의 상황은 우리의 기존 대북정책을 재고하게 하는 동기를 부여하고 있다. 때마침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새 정부 통일정책의 기조를 협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몇가지 통일문제에 대한 제언을 하고자 한다.
▼ 남북 군사균형 재점검 필요
첫째로 남북한간 힘의 균형을 재검토해야 한다.
우리가 그동안 북한을 개방 개혁 및 남북관계 개선의 방향으로 유도함에 있어 활용했던 수단의 하나가 우세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한 국력이었다. 우리는 경제력이라는 자석을 갖고 북한이라는 쇠붙이를 화해 협력의 길로 끌어들이려고 노력해 왔다고 비유할 수있다. 그러나안타깝게도이번 IMF사태로 인해 그 자력이 약화되는 현실에 직면케 됐다. 현재 우려되는 국가부도 위기상황은 단기적으로 북한에 대한 한국의 위상과 협상력의 저하를 가져올 소지가 없지 않다. 따라서 우리는 남북한 국력추세 비교를 통해 우리의 실제적 우위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를 정확히 파악하고 그 토대 위에서 4자회담 등 당면한 평화체제 구축방안과 교류협력정책 위기관리대책 등을 포괄하는 총체적 대북정책 구도를 다시 짜야 할 것이다. 체제붕괴 위기를 겪고 있는 북한이 자강도 하갑지역에 지하핵시설을 건설중일지도 모른다는 미국 정보국 비밀보고서의 내용이 최근 언론에 보도된 바 있다. 만일 이같은 보도가 사실로 확인될 경우 제네바 합의체제가 파괴되는 등 우리의 대북정책에 대한 근본적 수정이 불가피하게 될지 모른다. 북한이 핵을 보유할 경우 남북한 군사균형이 파괴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정치 외교 경제 등 총체적 힘의 균형에 결정적 변화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정부가 북한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어물어물 넘어가는 미온적 태도를 취하는 일은 없어야 하며 사실확인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둘째는 대북정책에 있어 우리의 주도적 역할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주변 4강은 북한체제 불안으로 인한 한반도 질서변화에 대비, 나름대로 개입과 참여의 정책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미국 일본의 경쟁적 대북접근 양상과 중국 러시아의 대북 협력관계 복원 움직임 및 북한의 한국소외정책이 맞물릴 경우 한국은 한반도 문제의 ‘주체’가 아닌 ‘객체’의 일원으로 전락할 우려마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새 정부는 남북당사자 해결원칙에 입각한 남북기본합의서 이행체제를 대북정책의 중심축으로 삼고 이를 주변 국가들에 이해시키고 협력을 구해야 한다.
이와 관련, IMF체제하의 대북정책 추진에 있어 미국의 역할이 더욱 증대되고 있는 추세를 감안해 새로운 한미공조체제의 구축이 필요하며 우리 정책의 일관성과 현실성이 미국의 이해와 협조를 얻는데 중요하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 한미공조 새체제 갖추자
셋째로 통일문제를 서둘러서는 안된다.
북한은 체제위기 상황에서도 새 정부에 대해 국가보안법철폐 안기부해체 등을 주장하면서 비난의 포문을 열고 있다. 남북한간 힘의 균형에 변화가 예상되는데다 주변 환경도 우리에게 유리한 것만은 아니고 국민의 대북지원 및 통일 열기 역시 높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이와 같은 대전환기적 상황에서는 대북정책을 서두르지 말고 신중에 신중을 기하는 자세로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아울러 우리는 IMF파고 건너편에 통일이라는 더 큰 파고가 접근해 오고 있음을 미리 내다보면서 거기에 적절히 대비해야 할 것이다. 우리의 의지와는 달리 갑작스러운 통일이 가져올지도 모를 엄청난 충격과 후유증을 감내할 수 있는 국가사회적 체질을 사전에 강화한다는 차원에서도 현 경제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해야 할 것이다.
송영대(민족통일중앙협의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