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회의가 곧 속개됩니다. 의원 여러분께서는 속히 회의장에 입장해 주시기 바랍니다. (딩동댕∼) 다시한번 알려드립니다. 본회의가 곧 속개되오니 의원여러분께서는 속히 회의장에 입장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번 정기국회가 열리는 동안 국회의사당에서 수도 없이 흘러나온 안내방송이다.
의전행사장이라면 몰라도 자신들의 일터인 국회의사당에서조차 국회의원들이 이처럼 「귀하신 몸」이 된 이유는 뭘까.
『오늘도 보시는 바와 같이 10시 개의시간이 15분이나 늦게 개의가 됐습니다. 가까스로 의사정족수(2백99명 중 60명)가 이루어졌습니다. 어제의 경우는 산회무렵에 정말로 부끄럽기 그지없는 텅빈 의석이었습니다. 생산적인 국회, 효율적인 국회를 말하던 우리 15대 국회가 지향하는 그러한 지표에 너무도 부끄러운, 국민들 보기 정말 부끄럽기 그지없는 이러한 자학적인 모습은 우리 모두 깊이 반성해야 하겠습니다』(김수한국회의장, 10월28일 본회의 개의선언 후)
▼ 정족수 급급…아까운 歲費 ▼
그러면 「의원나리」들은 그 시간에 국가와 민족을 위해 어디서 무슨 일을 하고 있었던 걸까.
『지금 의사당이 텅 비었습니다. 신한국당 의원들께서는 집안이 조금 시끄러워 혹시나 좋은 집이 있나 해서 밖에 나가 집을 구하시는 분도 계시고 또 우리 새정치국민회의, 그리고 자민련 의원들께서는 짝짓기를 하러 나가신 것 같습니다. 아마 해가 지면 다 들어오실 것 같습니다』(신한국당 박종우의원, 10월28일 대정부질문에 앞서)
본회의뿐만이 아니다. 이번 국회내내 여야의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대선후보에 줄을 대거나 집안싸움에만 골몰했다. 이때문에 국정감사장은 자당 총재나 대선후보의 나팔수 역할을 자임한 의원들의 충성경쟁의 장으로 변질됐다. 상임위는 또 어떤가. 지난 4일 내년의 나라살림을 다루는 예결위는 10여명만이 참석, 의결정족수(50명 중 26명)를 못채워 유회된 것은 물론이고 국무위원수보다도 의원수가 적은 기현상이 빚어졌다. 오죽했으면14일저녁초미의 관심사인 금융개혁관련법안이 신한국당의의 원정족수 부족으로 통과되지 못했을까.
18일이면 이번 정기국회도 막을 내린다. 그렇다고 해서 국회의원에 대한 평가와 그들의 의무도 동시에 정지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정기국회는 본받지 말아야 할 전범(典範)으로 기록될지도 모른다.
▼ 누리는 만큼 일은 해야 ▼
국회의원이 존경받지 못하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94년 서울대 교육연구소가 교사와 일반인 1천5백여명을 대상으로 26개 직업군별 국가공헌도와 사회 경제적 지위에 관한 인식을 조사한 적이 있었다. 국회의원의 사회적 지위는 1위, 경제적 지위는 3위였다. 그러나 사회적 공헌도는 20위에 불과했다. 누리는 것은 많지만 하는 일은 별로 없는 사람이 곧 국회의원이라는 인식이다. 그런 곱지 않은 시선은 지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두개의 해태상 밑에 묻혀 있는 72병의 백포도주가 햇빛을 보지 못할 수도 있다. 이 포도주는 75년 의사당이 문을 열 때 한 주조회사가 1백년후에 축하주로 사용하라며 기증한 것이다. 그러나 만약 국회의원들이 지금처럼 국민에게 계속 짐만 지우는 존재로 남는다면 그 술을 꺼낼 때쯤해서는 국회의원이 존경받지 못하던 시절에 준비한 술이 축하주로서 적당하지 못하다는 여론이 비등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심규선<정치부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