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S-이회창 애증의10년]동해보선 惡緣서 결별전야까지

  • 입력 1997년 10월 23일 08시 57분


김영삼(金泳三)대통령과 끊임없이 부닥치면서 정치적 입지를 넓혀온 신한국당 이회창(李會昌)총재가 또다시 승부수를 던짐으로써 두 사람간의 애증관계가 다시 관심을 끌고 있다. 김대통령과 이총재의 첫 만남은 「악연」으로 시작됐다. 88년7월 중앙선관위원장에 선임된 이총재는 강원 동해(89년4월) 서울 영등포을(89년8월) 등 보궐선거를 치르면서 유례없이 후보자 및 선거사무장 전원을 고발했다. 당시 통일민주당총재였던 김대통령은 이총재가 보낸 부정선거 경고서한으로 이총재와 첫 인연을 맺었다. 그후 93년2월 김대통령은 첫 조각때 대법관이었던 이총재를 감사원장으로 기용하고 10개월 후인 12월 다시 총리로 발탁했다. 그러나 이총재는 94년 4월 통일안보정책조정회의 운영문제를 놓고 김대통령과 대립, 4개월만에 중도하차했다. 「헌법상 규정된 총리의 권한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이 이총재의 요구였다. 이때부터 그는 「대쪽」이라는 별명과 국민적 인기를 얻었다. 이같은 인기는 결국 96년 4.11총선을 앞두고 김대통령이 그를 신한국당 선대위원장으로 영입하는 밑천이 됐다. 그러나 이총재는 김대통령의 대권논의금지령과 노동법 및 안기부법 해법에 대해 이견을 제시함으로써 한때 갈등관계에 빠졌다. 하지만 김대통령이 지난 3월13일 예상을 깨고 이총재를 집권당 대표로 전격 기용함으로써 두 사람의 관계는 다시 복원되는 듯했다. 이후 이총재는 집권당 대표의 프리미엄에 힘입어 7월21일 당내 경선에서 집권당후보로 선출됐고 9월30일에는 총재직까지 물려받았다. 그러나 이번에 이총재가 김대통령에게 탈당을 요구함으로써 두 사람의 관계는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넌 것 같다. 〈정연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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