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예산안,겉은 『긴축』 내용은 『팽창예산』

  • 입력 1997년 9월 18일 20시 31분


정부가 증가율을 5.8%로 낮춰 발표한 내년도 예산안은 「긴축예산」을 공언해 온 정부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 내용을 들여다 보면 다소 혼란스럽다. 지난달말 신한국당과 합의했을 때와 예산 지출내용에서 달라진 것이 없는데도 예산증가율은 6.5%에서 5.8%로 뚝 떨어졌기 때문이다. 당초 내년 예산에서 부실채권 정리기금에 지원키로 했던 5천억원이 「요술」의 열쇠. 정부는 이 5천억원을 내년 예산에서 뺐다. 대신 올해안에 정부보유 채권과 주식 5천억원을 산업은행에 현물출자하고 산업은행은 늘어난 출자분 5천억원을 부실채권 정리기금에 융자해주기로 한 것. 재정경제원 예산실은 이같은 조치로 인해 내년도 예산증가율을 0.7%포인트 줄일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정부보유 채권과 주식 5천억원은 국민재산이므로 산은 현물출자를 하지 않는다면 그만큼 부족한 세수를 보충하기 위한 재원으로 쓸 수 있었던 돈이다. 결국 산은 현물출자는 국민 호주머니돈을 쓰면서도 공식 회계장부인 예산안에서는 사라지게 한 셈이다. 5%대 긴축을 줄기차게 주장해 온 강경식(姜慶植)부총리의 체면을 살려주고 7%대 선거용 예산을 강조해온 신한국당의 입장도 고려한 절묘한 아이디어다. 그러나 세금을 내는 국민의 눈에는 예산실이 선거예산(팽창예산)과 긴축예산이라는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숫자 놀음」을 한 것으로 비쳐진다. 게다가 5.8% 증가율도 내년도 예상 세수 증가율 3%와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 수입은 3% 늘어나는데 지출을 5.8% 늘리겠다면 적자재정을 감수하지 않는 한 국민들의 호주머니를 쳐다볼 수밖에 없다. 실제로 초과 지출부분은 교통세와 교육세의 탄력세율을 대폭 올리는 것으로 해결하기로 했다. 이미 경유 교통세와 등유 특소세 및 교육세를 대폭 올리기로 한데다 추가적 세율인상 가능성도 높아 국민부담이 더욱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그간 재정의 효율성을 강조해온 정부가 투자효율이 낮은 분야에 막대한 예산을 지출키로 하고 세금인상까지 하면서 팽창예산을 편성한 것은 「선거」라는 변수에 밀렸다는 지적이다. 〈임규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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