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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1997년 5월 9일 19시 4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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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안기부측이 보고한 황씨의 진술내용.
▼전쟁준비 동향〓金正日(김정일)은 권력핵심부에서 활동하기 시작한 74년부터 「모든 부서가 전쟁준비에 주력하라」고 지시했으며 특히 91년12월 최고사령관이 된 이후 전쟁분위기가 압도하고 있다. 金日成(김일성) 사망 이후 김정일은 「조국 통일의 주력은 군대다. 믿을 것은 군대뿐이다. 모든 힘을 다해 군대를 지원하라」는 등의 지시를 수시로 하달하고 있다.
김정일은 100% 승리를 확신하고 있고 일반주민들도 승리를 의심하지 않는다. 또 김정일은 「한번 죽지 두번 죽겠는가」라고 말하는 등 전쟁을 통한 적화통일 의지가 확고하다.
▼군사전략 및 전술〓전쟁 전략은 「전격전」 개념에 입각해 십수만명의 특수대원을 사전에 침투시켜 미사일기지 비행장 등 주요 전략시설을 타격한 후 기동전을 통해 단기간내에 남한 전역을 장악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개입을 저지하기 위한 방책으로 김일성이 「미군이 철수만 한다면 제주도를 떼어 주어도 좋다」고 언급하는 등 미군 철수를 유도하기 위한 여건 조성에 주력하고 있다.
▼전쟁 준비실상〓60년대 이후부터 전후방을 완전히 요새화한 가운데 김정일이 사용하는 「작전대(전시상황실)」의 경우 평양 지하철보다 훨씬 아래에 있고 평남 평성 자모산에 있는 비상집무실 인민무력부 청사 등과도 연결돼 있어 김정일은 「핵전쟁에도 끄떡없다」고 자랑하고 있다.
▼대량 살상무기 개발〓북한은 오래전부터 장거리 미사일을 개발해 왔으며 96년10월 당창건 기념행사의 일환으로 함북도 소재 대포동 미사일 시험장에서 장거리 미사일 시험발사를 계획한 바 있었으나 당시 미국과의 관계 및 잠수함 사건 등을 고려해 중단했다.
▼전쟁도발시기〓김정일은 「전쟁만이 출로」라고 인식하고 있다. 사병들의 군복무기간을 종전 7년에서 13년으로 연장하고 「김정일을 결사옹위하는 총폭탄(銃爆彈)정신」「자폭정신」 교육을 강화하고 있다. 도발의 호기는 한국의 정정이 불안해지는 경우이며 한국내 지하조직을 이용하여 혼란을 조성할 것으로 전망된다.
▼정책결정 체계 및 측근 실세〓북한의 주요 정책은 김정일 1인의 의사에 의해 최종 결정되는 등 독단성이 심화하고 있으며 간부들은 「꼭두각시」에 불과하다.
또 당의 조정 통제기능이 약화돼 정책집행의 효율성이 저하됨은 물론 비합리적이고 돌출적인 정책결정 가능성이 증대되고 있다.
김정일의 밀실통치에 참여하고 있는 분야별 실세로는 그의 매제이며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 張成澤(장성택)과 당비서 金基南(김기남) 金國泰(김국태) 金容淳(김용순) 桂應泰(계응태), 군총정치국장 趙明祿(조명록), 총참모장 金英春(김영춘), 총리대리 洪成南(홍성남) 등 당 군 정에 10여명이 포진하고 있다.
〈정용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