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17일 黃長燁(황장엽)노동당비서의 망명허용을 시사한데 대한 정부의 입장은 명확히 정리되지 않았다. 정부는 그러나 적어도 중국과의 망명교섭에는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 대책을 준비중이다.
관계부처의 전문가들은 18일 낙관론과 신중론을 나름대로 펼치며 『북한의 의중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중국과의 협상을 맡은 외무부는 일단 중국에 협상을 서두르자는 제의를 할 수 있는 발판이 만들어졌다고 판단하고 있다.
낙관론자들은 황비서가 납치됐다고 강변하던 북한이 태도를 바꿔 「갈테면 가라」는 반응을 보인 것에 큰 의미를 부여한다. 북한은 「납치」라는 지난 13일 주장 대신 「황장엽이 실종된 사건」 「황장엽 사건」이라는 표현을 쓰면서 「납치됐다면…」 「망명을 추구했다면…」이라고 사건자체를 객관화했다. 황비서에대한 호칭도 「황비서」에서 「황장엽」으로 바꿨다.
이는 황비서를 북한으로 송환하거나 최소한 한국행을 저지하려 했으나 성공가능성이 없다고 판단, 황비서를 변절자로 규정해 포기하려는 것이라고 낙관론자들은 분석한다. 따라서 중국도 홀가분하게 결단을 내릴 수 있게 됐다고 낙관론자들은 기대한다. 중국은 남북한 사이에서 줄다리기외교를 펴왔으나 이제는 북한의 부담을 벗어버릴 명분이 생겼다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의 태도를 황비서의 한국망명 허용으로 해석해서는 안된다는 신중론도 만만치 않다. 안기부의 한 관계자는 『전문가들은 북한의 태도가 △진심의 표현 △내부충격완화용 △남한교란용 △의미없는 헛소리 가운데 하나일 것으로 보고 진의를 분석중』이라면서 『현재까지는 황비서 망명협상에 중대한 돌파구가 만들어졌다고 생각하는 전문가들은 소수』라고 말했다.
외무부 柳光錫(유광석)아태국장도 『내용이 색다르기 때문에 큰 관심을 갖고 검토중』이라면서도 『북한은 양동작전과 심리전에 능하기 때문에 단선적으로 받아들여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유국장은 『협상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기 위해서는 북한이 중국정부에 공식적으로 그런 뜻을 전해야 한다』며 신중한 자세를 보였다.
그럼에도 외무부는 일단 북한이 종래와는 다른 입장을 대외적으로 표명했기 때문에 중국측에 황비서 본인의사를 가급적 빨리 확인토록 제의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됐다고 판단한다. 유국장은 중국이 요청만 하면 황비서를 직접 면담토록 하겠다면서 『응하기만 한다면 자유의사 확인에 북한측도 동참토록 하겠다』고 말했다.
당국자들은 북한의 반대라는 걸림돌이 제거되면 황비서는 제삼국을 거치지 않고 북경(北京)에서 곧바로 서울에 올 수도 있다고 전망한다.
〈방형남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