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수 회견]생포후 틈틈히 남한사회 체험

  • 입력 1996년 10월 29일 20시 26분


「李明宰 기자」 李광수는 18일 생포된 뒤 40여일동안 군 기무사와 안기부 등에서 조사를 받으면서 틈틈이 남한 사회를 직접 체험했다. 그는 남한의 생활상에 대해 『북한에서는 못먹고 가난하다고 교육받았는데 18일 생포 직전 산에서 본 강릉시내 모습에서 「사실과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李는 기본적인 조사를 받고 난 뒤로는 서울의 남산과 남대문 백화점 등을 둘러보면서 「남한인민」들과 직접 대화도 나누며 남한의 「실상」을 체험했다. 그는 『백화점에 쌓인 물건들을 보고 남북한은 비교할 수 조차 없을 만큼 차이가 나는 것을 절감했다』면서 『장애인에게도 정부에서 쌀을 준다는 말을 듣고 골고루 잘사는 사회라는 인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지방의 어느 가정집을 방문한 것이 기억에 남는다』면서 『주인집 아들인 중학생이 「북한 사람들은 굶고 못산다는데 정말 그렇냐」고 물었을 때 곤혹스러웠다』고 말했다. 李는 또 『남한은 미국 식민지라고 들었는데 「오케이」 등 미국말을 남발하는 것을 보고 처음에는 정말 그런 것같다는 생각도 들었다』고 말했다. 李는 『평화롭게 살고 있는 남한 동포들을 놀라게 해 죄송한 마음일 뿐』이라고 털어놓았다. 그러나 『전향할 의사가 있느냐』는 질문에는 북에 두고 온 부모와 처(27) 자식이 걱정되는 듯 『정부에서 시키는 대로 하겠다』고 괴로운 표정으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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