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민주화 이끈 리덩후이 前총통 별세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7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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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당 독재 끝내고 직선제 도입, ‘미스터 민주주의’ 별명 얻어
임기말 독립 주장해 본토와 마찰

‘대만의 미스터 민주주의’로 불리는 리덩후이 전 총통이 30일 향년 97세로 별세했다. 사진은 리 전 총통이 퇴임 후인 2005년 3월 대만 남부 가오슝에서 열린 반(反)중국 집회에 참여한 모습. 가오슝=AP 뉴시스
‘대만의 미스터 민주주의’로 불리는 리덩후이 전 총통이 30일 향년 97세로 별세했다. 사진은 리 전 총통이 퇴임 후인 2005년 3월 대만 남부 가오슝에서 열린 반(反)중국 집회에 참여한 모습. 가오슝=AP 뉴시스
대만의 국민당 일당 독재를 끝내고 총통 직선제 도입 등 민주주의 체제로의 전환을 이끌어 ‘대만의 미스터 민주주의’로 불렸던 리덩후이(李登輝) 전 총통이 30일 별세했다. 향년 97세.

대만 중앙통신사 등에 따르면 타이베이 롱민쭝(榮民總)병원은 리 전 총통이 이날 오후 7시 24분(현지 시간) 숨졌다고 밝혔다. 그는 2월 폐렴 증세를 보여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았고, 최근 병세가 악화된 것으로 알려졌다.

리 전 총통은 장제스(蔣介石·1887∼1975)의 아들인 장징궈(蔣經國·1910∼1988)에 이어 1988년부터 2000년까지 대만 총통을 지냈다.

1923년 대만에서 태어난 그는 1949년 국립대만대 농업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아이오와주립대와 코넬대에서 각각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1968년 대만에 돌아와 농업경제 전문가로 일하던 그를 정계로 이끈 것은 장징궈 전 총통이었다. 리 전 총통은 장 전 총통의 신임 아래 타이베이 시장, 타이완성 주석, 부통령을 지내며 국민당의 핵심 인물로 성장했다. 1988년 1월 장 전 총통이 사망하자 부통령이던 리덩후이는 제7대 대만 총통에 올랐다.

그는 총통 재임 시절 국민당 독재를 끝내고 다당제와 총통 직선제를 도입했다. 1996년에는 직선제 방식으로 처음 치러진 총통 선거에서 승리해 대만 국민이 직접 뽑은 첫 총통이 됐다. 대만 민주주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 그는 1989년 중국에서 톈안먼(天安門) 사태가 벌어졌을 때 긴급 성명을 내고 “중국공산당이 택한 비인간적인 행동은 장차 반드시 역사의 재판을 받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냈다.

중국 본토가 아닌 대만 태생인 그는 중국 본토에 뿌리를 둔 국민당 출신 총통이었으면서도 임기 말년에는 중국과 대만이 각각 별개의 나라라는 양국론(兩國論)을 주장했다. 이 때문에 대만 독립을 추구하는 이들로부터 ‘대만의 아버지’라 불렸으나 중국 본토는 그를 ‘대만 독립 세력의 수괴’라면서 맹렬히 비난했다.

리 전 총통은 중국과는 크게 갈등을 겪으면서도 일본에 대해서는 ‘친일’에 가깝다는 지적을 받을 정도로 호의적인 성향을 보였다. 퇴임 후 2007년 6월에는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인 야스쿠니(靖國)신사를 참배해 대만 내에서조차 비난을 받았다. 야스쿠니신사에는 일본군 장교로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 전사한 친형의 위패가 있다. 당시 리 전 총통은 “헤어진 형을 만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고 개인적인 일”이라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리 전 총통의 유족으로는 부인 쩡원후이(曾文惠) 여사와 두 딸 등이 있다.

베이징=김기용 특파원 kky@donga.com
#대만#민주화#리덩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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