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생 삐뚠 성지식 바로잡아 주는 ‘남자 보건쌤’

노지원기자 입력 2017-03-31 03:00수정 2017-03-31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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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첫 男보건교사 김찬현씨
서울 최초의 남성 보건교사 김찬현 씨가 29일 콘돔을 들고 성교육을 하고 있다. 이날 수업에 참여한 경복고 2학년 9반 학생은 조는 사람 없이 활발히 질의응답하고 또렷한 눈빛으로 수업에 집중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교실 탁자 위에는 남성 생식기 모양의 성교육 교구와 콘돔 여러 개가 놓여 있었다. 가운을 입은 보건교사가 콘돔을 들고 말했다. “왜냐고? 라텍스 소재라 삭을 수도 있으니까 유통기한을 잘 보라는 거야. 어디가 앞인지, 구멍은 안 났는지는 어떻게 아냐고? 이렇게 입으로 ‘후’ 하고 불어보면 돼.”

29일 서울 종로구 경복고 2학년 9반 교실의 풍경이다. 학생은 스스럼없이 콘돔 사용법을 질문하고 교사는 실물을 들어 시범까지 보여주며 설명했다. 이날 교단에 선 김찬현 교사(29)는 서울지역 보건교사 1299명 중 유일한 남성이다. 3월 남학교인 이곳에 부임했다.

김 교사는 학기 초 학생의 성 지식 수준을 알기 위해 설문조사를 진행하다 깜짝 놀랐다. 일부 학생이 “여성의 월경 주기를 따져 콘돔 없이 성관계를 했다”고 답했기 때문이다. 콘돔에 유통기한이 있는지,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제대로 모르는 학생이 적지 않았다. 미성년자가 자녀를 출산해도 친권 등 법적 책임이 따르며, 청소년이 임신해도 낙태는 불법이라는 걸 알려주니 깜짝 놀라는 학생이 많았다.

그는 29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미 아이들은 인터넷 등을 통해 음란물에 노출돼 있고 실제 성관계를 경험한 학생도 상당수”라고 말했다. 이어 “‘청소년은 성관계를 하면 안 된다’고 훈육만 할 게 아니라 어떤 책임이 따르는지, 무엇을 조심해야 하는지 등 제대로 된 성지식을 알려줘 10대 임신 등 문제 상황에 처하는 걸 막을 필요가 있다”며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질 수 있는 어른으로 성장하도록 이끌어주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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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수업 시간에 경구·응급 피임약과 신체 내 장치, 성병의 종류나 증상, 포경수술의 장단점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는다고 했다. 여성 보건교사에게 묻기 쑥스러운 질문을 거침없이 한다는 얘기다. 김 교사는 “남학생들이 부끄러워서 엄마나 여교사에게 말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옆집 형처럼 친근하게 다가가 남학생들의 민감한 부분을 해결해주고 싶다”고 했다. 정신건강과 흡연, 음주, 보건위생 등 보건교사의 기본 업무도 꼼꼼히 챙긴다. 학생들은 “같은 남자라서 통하는 게 있다” “민감한 부위를 다쳤을 때 편하게 치료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남성 보건교사는 크게 부족하다. 전국 보건교사 7400여 명 중 남교사는 김 교사를 포함해 총 8명뿐이다. 보건교사가 되기 위해 간호대에 가는 남성이 적고, 임용시험을 치러 보건교사가 되는 남성이 극히 드문 까닭이다.

직업적 편견도 존재한다. 김 교사는 남성 간호사를 꿈꾸며 간호대에 진학했다가 병원 실습에서 ‘남성 간호사는 여성보다 세심하지 못하다’는 선입견에 부닥쳐 좌절한 적이 있다. 하지만 대학 시절 교생 실습을 하면서 남성 보건교사가 꼭 필요하다는 생각에 교사의 길을 택했다.

그는 여전히 ‘남자가 왜 보건교사가 됐느냐’는 질문을 받는다. 김 교사는 “보건교사가 한 학교에 남녀 한 명씩 최소 2명은 있으면 좋겠다”며 “남성 보건교사는 남학생을, 여성 보건교사는 여학생을 더 잘 이해한다. 보건교사는 아이들 성 건강까지도 책임져야 하는데 더 많은 남자 보건교사가 나와서 ‘보건교사=여성’이라는 공식이 사라지기 바란다”고 말했다.
 
노지원 기자 zone@donga.com



#남자보건교사 김찬현#경복고#성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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