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록도 한센인들 지진 피해 日위해 747만5000원 모아

  • Array
  • 입력 2011년 3월 30일 03시 00분


코멘트

“지옥의 섬으로 강제 이주시킨 日… 용서했죠”

소록도에 거주하는 한센인들이 지진 피해를 본 일본을 돕기 위한 모금함에 성금을 넣고 있다. 소록도는 일제강점기 한센인들이 강제로 끌려 와 노역을 했던 슬픈 역사의 현장. 하지만 소록도 사람들은 이웃나라의 아픔에 선뜻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국립소록도병원 제공
소록도에 거주하는 한센인들이 지진 피해를 본 일본을 돕기 위한 모금함에 성금을 넣고 있다. 소록도는 일제강점기 한센인들이 강제로 끌려 와 노역을 했던 슬픈 역사의 현장. 하지만 소록도 사람들은 이웃나라의 아픔에 선뜻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국립소록도병원 제공
한센병을 앓던 유덕순 씨(96·여)는 일제 치하인 1944년 전남 고흥군 소록도에 들어갔다. 당시 29세. 그 섬은 지옥이었다. 오전 4시에 눈을 떠 오후 10시까지 총탄, 군화 등을 만드는 강제노역장에서 일했다. 병을 고쳐준다는 일본 측의 말도 거짓이었다. 아프다는 소리만 하면 몽둥이세례가 날아왔다. 일본하면 온 몸이 떨릴 만큼 원망스러웠다. 그렇게 한 번 들어간 소록도에서 광복 후에도 빠져나오지 못했다.

이런 유 씨는 열흘 전 병상에서 대지진 피해를 본 일본을 위한 모금운동을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모금함을 들고 찾아 온 교회 식구들에게 말없이 2만 원을 내밀었다. 언제부턴가 ‘이제는 다 용서했다’고 말하곤 하던 그였다.

최고령자 유 씨를 비롯해 소록도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한센인들이 대지진으로 피해를 본 일본인들을 위해 써달라며 747만5000원을 모금했다고 29일 국립소록도병원이 밝혔다. 17일부터 진행된 모금운동에 소록도 한센인 590여 명 중 430여 명이 참여했다. 모금액은 일본적십자사에 전달할 계획이다.

소록도 한센인들이 해외 이재민을 위해 모금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김명호 국립소록도병원 원생대표는 “지금까지의 모금활동 중 최다 인원이 참여해 가장 많은 액수를 모았다”고 말했다.

소록도 한센인들은 1916년부터 조선총독부가 세운 ‘소록도자혜병원’에 강제이주됐다. 일제는 한센인들을 전쟁물자 생산에 동원하고 온갖 가혹행위를 저질렀다.

한일 변호사들로 이뤄진 한센인권변호단은 2003년부터 일제강점기에 강제이주된 소록도인들에 대한 보상운동에 나섰다. 금전 보상은 올해 2월에 마무리돼 1인당 800만 엔씩 지급됐다. 2003년 당시 보상명단에 오른 소록도 거주자 124명 중 절반가량이 숨졌고 현재 생존자는 60여 명이다.

이번 모금운동도 한센인권변호단이 제안했다. 변호단이 ‘보상을 위해 애써준 일본인들에게 보답도 할 겸 어려운 처지에 놓인 이웃나라를 도우면 어떨까’라고 묻자 많은 한센인이 선뜻 모금에 응했다. 이들은 적게는 2000원, 많게는 10만 원씩 성금을 냈다.

김 대표는 “일제강점기의 강제노역과 가혹행위가 벌어진 아픈 역사의 현장이지만 지진 피해를 본 일본인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고자 모금활동을 벌였다”며 “지진으로 희생된 모든 분에게 깊은 애도를 표한다”고 말했다.

한우신 기자 hanwshin@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