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녘 모친 지난 8월 떠나보낸 前국립오페라 단장 박수길 교수

입력 2005-11-12 03:01수정 2009-09-30 2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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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악가인 한양대 박수길 교수가 외삼촌이 북한에서 가져온 자신의 어릴 적 가족사진과 부모님의 결혼식 사진을 보여 주고 있다. 왼쪽의 산수 시험지는 북의 어머니가 아들을 그리워하며 40년 넘게 보관했던 것이다. 안철민 기자
전 국립오페라단장인 바리톤 박수길(朴秀吉·64) 한양대 교수는 지난달 초 미국에 사는 외삼촌에게서 한 통의 편지를 받았다. 북한에 살고 있는 동생의 편지였다.

‘어머니는 지난 8월 편안히 눈을 감으셨습니다. 우리 어머님은 자식들을 위해 한생을 촛불처럼 깡그리 태우셨습니다.…한 달이 지나면 추석이니 그때에 정성을 다하여 제 손으로 상돌도 설치하고 어머님이 즐겨하시던 들국화로 묘소 풍치를 돋우렵니다.’

행여나 어머니에게 해가 갈까봐 북한에 어머니가 살고 있다는 말도 못한 채 만날 날을 고대하고 있던 박 교수는 이 편지를 받고 밤새 울었다. 그리고 최근 서울 중구 장충동 경동교회에서 어머니를 추도하는 예배를 드렸다. 박 교수는 “추모 예배에서 50년 동안 맺힌 설움을 한꺼번에 쏟아놓고 실컷 울었다”고 말했다.

박 교수가 꿈에도 그리던 어머니와 동생들의 소식을 들은 것은 1989년. 미국에 살고 있는 외삼촌이 우연히 방북했던 교포가 가져온 사진에 누이(박 교수의 어머니)가 하객으로 참석했던 모습을 발견한 것이다. 외삼촌은 이듬해 방북해 박 교수의 가족을 만났다. 어머니는 외삼촌 편에 편지를 보내 왔다. 박 교수는 그때 어머니가 편지 속에 함께 보내 준 자신의 소학교 시절 산수 시험지를 보여 주었다. ‘제三학년 6학급 번호 66번 이름 박수길’이란 글씨가 또렷한 이 시험지는 어머니가 아들을 그리워하며 40년 넘게 보관해 온 것이었다. 시험지 아랫부분에는 박 교수의 동생이 파란색 볼펜으로 쓴 ‘추억의 한 갈피 떼여 보내니 어서 찾아오시라. 마흔 해 하루 같이 밤낮 활짝 열려 있는 고향집 정다운 문으로! 어머니 품으로…’라는 글씨도 있었다.

박 교수는 그 후 10여 년 동안 수차례 이산가족 상봉 신청을 해 왔지만 상대적으로 젊은 나이 때문에 순서가 돌아오질 않았다. 박 교수는 “편지로 안부도 물어봤으니 내 평생 꼭 한번이라도 뵙고 싶었는데…”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인터뷰 말미에 “어릴 적 어머니께서 나를 앉혀 놓고 가르쳐 주셨던 찬송가”라며 ‘추수감사절의 노래’를 나지막이 불렀다. 50여 년 만에 부르는 사모곡(思母曲)이었다.

“넓은 들에 익은 곡식 황금물결 되치며∼ 어디든지 태양빛에 향기 진동하도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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