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포커스]안티 미스코리아 대회 성공리에 끝낸 엄을순씨

  • 입력 2004년 5월 23일 18시 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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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초 제6회 대회를 마지막으로 안티 미스코리아 대회를 마감한 ‘이프’의 엄을순 대표는 “여성뿐 아니라 우리 사회 모든 약자들의 의견을 대변할 수 있는 폭넓은 문화축제를 갖고 다시 찾아오겠다”고 말했다. 엄 대표 뒤편에 ‘우리는 다시 돌아온다’는 문구가 적힌 안티 미스코리아 대회 포스터가 눈에 띈다.-권주훈기자
이달 초 제6회 대회를 마지막으로 안티 미스코리아 대회를 마감한 ‘이프’의 엄을순 대표는 “여성뿐 아니라 우리 사회 모든 약자들의 의견을 대변할 수 있는 폭넓은 문화축제를 갖고 다시 찾아오겠다”고 말했다. 엄 대표 뒤편에 ‘우리는 다시 돌아온다’는 문구가 적힌 안티 미스코리아 대회 포스터가 눈에 띈다.-권주훈기자
“올해 미스코리아가 누군지 아세요?”

여성운동 계간지 ‘이프(if)’의 발행인 겸 대표이사인 엄을순(嚴乙順·48)씨는 만나는 사람마다 이런 질문을 던진다. “모르겠다”는 대답을 많이 들을수록 그의 얼굴에는 흐뭇한 미소가 번진다.

“요즘 미스코리아 주가(株價)가 많이 떨어졌죠. 획일화된 미의 기준이 변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안티 미스코리아’ 행사가 이런 인식 변화에 기여한 것 같아 뿌듯합니다.”

1999년부터 ‘이프’ 주최로 매년 열린 안티 미스코리아 대회는 ‘미스코리아’로 상징되는 우리 사회의 외모지상주의에 반기를 든 대안 문화행사. 이 대회에 출전한 후보들은 아름다운 얼굴과 날씬한 몸매를 겨루는 대신 사회 곳곳에 숨어 있는 여성차별 실태를 춤, 노래, 연극 등으로 표현해 왔다.

엄 대표는 “1999년 대회를 처음 시작했을 때는 ‘못생긴 여자를 뽑는 대회냐’ ‘여자들이 너무 설쳐 댄다’는 등 칭찬보다 비난이 많았다”면서 “여성부조차 ‘안티’라는 이름이 들어간 행사를 후원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후 안티 미스코리아 대회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져 이달 초 열린 2004년 대회에는 6개 기업에서 후원이 ‘쇄도’할 정도였다.

미스코리아 대회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하는 엄 대표도 사실 알고 보니 미인대회 출신. 이화여대 과학교육과에 재학 중이던 1977년 이화여대 메이퀸 선발대회에서 최종후보 3명에까지 올랐다. 그는 “당시 얼떨결에 최종후보에 올랐지만 최우수 상품을 고르듯이 여성을 선발하는 대회 방식에 불만이 많았다”면서 웃었다.

엄 대표는 2002년 공중파 방송이 미스코리아 대회 생중계를 중단한 데 이어 올해부터 미스코리아 대회에서 수영복 공개심사가 폐지되는 것을 안티 미스코리아 운동이 이뤄낸 가장 큰 성과로 꼽았다. 안티 미스코리아 대회에 남성의 참여 비율도 높아져 올해 대회에는 남성 후보가 전체의 3분의 2를 차지했다.

그러나 안티 미스코리아 대회는 올해를 마지막으로 막을 내리게 된다. 엄 대표는 “아쉽지만 내년부터 좀 더 폭넓은 여성주의 문화축제로 변신하기 위한 것”이라며 “안티 미스코리아 대회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내년 행사의 주제를 공모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과거 여성운동이 ‘소수의 마니아’를 키우는 데에 주력했다면 이제는 대상을 넓히는 일에 관심을 쏟아야 한다”면서 “새로 선보이는 여성 문화축제는 주부나 남성도 공감할 수 있는 친숙한 내용을 많이 포함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여성뿐 아니라, 장애인, 동성애자 등 우리 사회의 소수계층에 대한 불평등 철폐로 주제를 넓혀 나간다는 계획이다.

안티 미스코리아 대회가 방향을 전환하게 된 데는 전업주부에서 40대 이후에 여성운동에 입문한 엄 대표의 영향이 컸다. 대학 졸업 후 바로 결혼해 남편 유학길에 따라나섰던 그는 16년간 미국에서 평범한 주부로 살았다. 그는 “남편이 박사 학위를 받고 교수로서 안정된 지위에 오르는 동안 나는 ‘이게 뭔가’라는 생각을 수십 번 했다”면서 “미국에서 사진, 인테리어 디자인, 경영학 등을 공부하기도 했지만 남편과 애들 뒷바라지에 방해가 된다는 ‘착한 여자 콤플렉스’ 때문에 곧바로 포기하곤 했다”고 말했다.

엄 대표는 한국에 돌아온 뒤 ‘자아실현’에 나섰다. 남편과 자식의 성공을 바라보는 즐거움도 크지만 결국 타인의 시각에서 자신의 삶을 재구성하는 것이라는 생각에 이른 것. 40세 늦깎이로 대학에 다시 들어가 사진을 정식으로 공부한 그는 졸업 후 여성문제에 관심을 갖고 잡지사 ‘이프’에 참여했다. 이곳에서 일하면서 여성운동에도 경영 마인드를 접목시켜야 한다는 목표를 갖고 대학원에서 경영학석사(MBA) 학위를 받기도 했다.

엄 대표는 “여성은 남편과 자식을 위해 살아 왔기 때문에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자신이 진정 무엇을 하고 싶은지 혼자 5시간만 고민해 보라”고 말했다. ]

엄을순씨는

정미경기자 mickey@donga.com

△1956년 서울 출생

△1974년 진명여고 졸업

△1978년 이화여대 과학교육학과 졸업

△1979∼1995년 미국 생활

△1998년 신구전문대 사진과 졸업 여성운동 계간지 ‘이프’ 입사

△2000년 개인 사진전 개최

△2003년 아주대 경영대학원 졸업

△2004년 2월 ‘이프’ 발행인 겸 대표 이사 취임

△남편 서윤석 이화여대 경영대학원 장과의 사이에 2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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