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계혈족은 촌수 안따져’ 교과서 수정 이끈 최현영씨

  • 입력 2002년 11월 8일 17시 56분


“너랑 증조할아버지랑 몇 촌 사이지?”라는 질문에 대부분의 사람은 “3촌”이라고 대답한다. 초등학교 때부터 부모 자식간은 ‘1촌’이고 한 세대 올라갈수록 1촌씩 더한다고 교과서를 통해 배워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남 창원에 사는 최현영(崔顯永·41·사진)씨는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리고 7개월간의 노력 끝에 초·중학교의 촌수관련 교과서 내용을 바꿨다.

“교과서대로라면 32대조 조상과는 32촌이 됩니다. 민법에서는 친족의 범위를 8촌 이내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조상이 남입니까. 촌수 계산에서 직계는 무조건 1촌으로 보아야 합니다.”

최씨는 촌수가 방계혈족간의 멀고 가까움을 나타내기 위한 것일 뿐 직계혈족에 관해서는 촌수를 부르지 않는 것이 관습이라고 했다.

최씨가 촌수 계산에 관심을 가진 것은 올해 2월 한 신문에 난 촌수 계산법을 보고 나서다. 할아버지와 손자를 ‘2촌’으로 규정했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인터넷부터 교과서, 서적까지 다 뒤졌지만 촌수계산을 바르게 설명한 곳은 없었다. 최씨는 교육부, 성균관,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은 물론 교과서 집필자들에게까지 교과서 오류 수정을 요구하는 편지를 보내기 시작했다.

최씨의 끈질긴 노력으로 올 9월 발간된 초등학교 교사용 지도서에는 ‘가까운 사이에서 촌수를 따지는 것은 오히려 실례가 될 수 있다’는 내용이 첨가됐다.

3명의 교과서 저자로부터 “2003학년도부터 수정하겠다”는 약속도 받아냈다. 교육부와 성균관도 결국 잘못을 인정했다. 정신문화연구원은 최씨에게 감사의 편지를 보내 “한국의 아름다운 전통문화는 선생님과 같은 분의 노력에 의해 올바르게 계승된다고 믿습니다”고 밝혔다.

“물론 굳이 따지자면 할아버지와 큰아버지는 1촌 사이고, 나에게 할아버지는 2대조가 되기 때문에 큰아버지가 3촌이 되는 겁니다. 하지만 조상과 자손 사이에는 촌수를 따지지 않는 것이 올바른 도덕교육이자 가정교육입니다.”

최씨는 대학에서 토목공학을 전공하고 현재 건설관련 컴퓨터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다.

김선우기자 sublime@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