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부상자의 인생유전]前중앙고교사 박해준씨

입력 1997-01-20 20:13수정 2009-09-27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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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徐廷輔 기자」 『4.19상이회의 정식회원이 될 수 있게 된 것이 무엇보다 기쁩니다. 4.19정신을 살리는 소설 「불멸의 불꽃」을 쓸 계획입니다』 지난 60년 4.19 당시 시위도중 붙잡혀 받은 고문으로 후유증에 시달리면서도 군사정권의 유공자혜택을 거부해온 朴海俊(박해준·61)씨. 37년만인 20일 환갑의 나이가 돼서야 법원으로부터 국가유공자로 인정한다는 판결을 받은 박씨의 소감이다. 박씨는 서울대 교육심리학과 4학년에 재학중이던 지난 60년 4.19 당시 시위를 주도하다 19일 밤11시경 서울 미아리고개 부근에서 계엄군에 체포돼 경찰에서 1주일간 모진 고문을 받고 척추를 크게 다쳤다. 박씨는 이후 40여일간 서울대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퇴원했으나 후유증으로 오른쪽 손과 다리를 제대로 쓰지 못하는 등 고통을 겪어왔다. 그러나 박씨는 5.16 군사쿠데타 이후인 지난 62년 당시 원호처가 자신을 4.19부상자로 분류돼 보상을 위한 신체검사를 받으라고 통지했으나 『반독재의 4.19정신을 위배한 군사정권이 주는 보상은 받을 수 없다』며 이를 거부했다. 30여년간 고통을 참아오던 박씨는 지난 93년 문민정부가 들어서자 보훈처에 국가유공자 등록신청을 냈다. 그러나 보훈처는 박씨가 국군수도병원에서 받은 신체검사 결과 『수술할 정도는 아니다』는 판정이 나오자 유공자 등록을 거부했다. 박씨는 결국 95년 11월 법원에 행정소송을 냈고 서울대병원에서의 정밀신체감정결과 『두차례의 수술을 요하는 상태로 상이등급에 해당된다』는 소견을 받아내 결국 이날 승소한 것. 박씨는 대학을 마친 뒤 서울 중앙고에서 26년간 국어교사로 근무하며 여러 편의 소설을 써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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