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박연준의 토요일은 시가 좋아] 〈47〉

  • 동아일보

‘다 공부지요’
라고 말하고 나면
참 좋습니다.
어머님 떠나시는 일
남아 배웅하는 일
‘우리 어매 마지막 큰 공부 하고 계십니다’
말하고 나면 나는
앉은뱅이책상 앞에 무릎 꿇은 착한 소년입니다.

어디선가 크고 두터운 손이 와서
애쓴다고 머리 쓰다듬어주실 것 같습니다.
(중략)

날이 저무는 일
비 오시는 일
바람 부는 일
갈잎 지고 새움 돋듯
누군가 가고 또 누군가 오는 일
때때로 그 곁에 골똘히 지켜섰기도 하는 일

‘다 공부지요’ 말하고 나면 좀 견딜 만해집니다.

―김사인(1956∼)


어떤 시는 나직이 한 번 낭독하는 것만으로 충만해진다. 어떤 말도 필요치 않고 혼자 찰랑찰랑 그득해져, 마음이 환한 상태! 김사인 시인의 시는 읽는 사람을 물기와 온기 속에 세워 둔다. 시 속에서 푸석한 마음을 적시고 삿된 기운을 씻게 만드는 신비한 힘이 있다.

부모의 죽음이나 가까웠던 이의 죽음을 지켜보는 일은 고통스럽다. 시인은 “다 공부지요”라고 말하고 나면 “앉은뱅이책상 앞에 무릎 꿇은 착한 소년”이 된다고 한다. 머리 희끗한 중년이라도 아픈 어머니를 돌보며 “우리 어매 마지막 큰 공부 하고 계십니다” 말하고 나면, 다시 어린 학생처럼 순해지는 것이다. 시인의 눈엔 세상 모든 것이 배우고 섬겨야 할 대상이다. 날이 저물고 비가 오고 계절이 바뀌는 일, 숨 붙은 존재가 만나고 헤어지는 모든 일들이 다 “공부”인 것이다.

오래전 부친상을 당해 빈소에서 그를 맞이한 적이 있다. 눈물을 글썽이던 내게 “오냐 오냐, 아주 큰 공부를 했구나. 애썼다”며 어깨를 한참 토닥여주던 사람. 그 말을 듣고 슬펐던 마음이 잠시 순해졌던 기억이 생생하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는 공부, 더 성심으로 해야겠다.

#김사인#시#어머니#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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