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정원 확대는 필수의료 인력 부족에 대한 해법으로 계속 제기돼 왔다. 의사 수를 늘리면 상황이 개선될 것이라는 논리다. 그러나 이 해법을 둘러싼 찬반 논쟁이 이어지는 동안, 정책 논의는 쟁점의 핵심에서 벗어나 있다. 필수의료의 구조적 작동 방식과 인력 규모의 문제가 구분되지 않기 때문이다.
정책을 건물에 비유해 보자. 층수를 높이려면 먼저 기초가 그 하중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 기초가 그대로인 상태에서 층수만 올리면 건물은 오래 버티기 어렵다. 의대 정원을 늘리는 정책도 마찬가지다. 지역 필수의료를 떠받치는 제도적 구조가 그대로인 채 증원만 반복하면 문제는 해소되지 않는다.
지역 필수의료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몇 가지 기본 구조가 갖춰져야 한다. 첫째, 지역 내 연결 구조다. 건강 증진, 질병 예방, 만성질환 관리와 경증질환 치료는 1차 의료기관(의원)에서, 중증질환 치료는 전문의가 있는 병원에서, 회복은 다시 의원으로 이어지는 흐름이 필요하다. 이 연결이 끊기면 환자는 수도권 대형병원으로 몰리고, 응급실은 상시 과밀 상태에 놓인다. 의사가 늘어나더라도 전달체계가 무너지면 지역 필수의료는 개선되지 않는다.
둘째, 실질적 접근 구조다. 겉으로 의료기관이 존재하는 것과 지역 주민이 실제로 이용할 수 있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필수의료를 기피하거나 의료의 질이 낮으면 병원은 있어도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특히 응급·분만·소아·외상 분야에서는 존재 여부보다 언제든 이용할 수 있는가가 더 중요하다.
셋째, 책임 구조다. 지역에서 필수의료 공백이 발생했을 때 누가 책임지는지가 분명해야 제도가 작동한다. 현재는 중앙정부, 지방자치단체, 국민건강보험공단, 의료단체 사이에서 책임의 종착점이 분명하지 않다. 책임이 분산되면 대책은 발표되지만 현장은 쉽게 달라지지 않는다.
넷째, 의료인의 선택을 이끌어낼 수 있는 구조다. 필수의료는 미용성형 등 비필수의료에 비해 노동 강도는 높고 법적 위험은 크며 보상은 낮다는 인식이 굳어져 있다. 이런 제도적 환경이 바뀌지 않는 한 의사 수가 늘어나더라도 인력의 선택은 달라지기 어렵다. 이는 개인의 태도 문제가 아니라 제도 설계의 결과다.
마지막은 안정적 구조다. 정책이 바뀔 때마다 의료 인력이 특정 분야나 수도권으로 쏠리는 체계는 지속가능하지 않다. 각 지역의 필수의료는 단기 성과가 아니라 장기적 안정성을 기준으로 기획되고 관리돼야 한다.
최근 정부가 발표한 의대 증원과 지역의사제를 연계하는 방안은 이전에 비해 진일보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기본 구조가 갖춰지지 않으면 기대효과가 충분히 나타나지 않을 수 있다. 따라서 이 방안이 기본 구조를 갖추기 위한 개혁과 정합성을 갖도록 세부 설계가 병행돼야 한다. 증원 규모 역시 각 지역의 의료 필요와 빠르게 진행되는 보건의료 환경 변화를 점검하며 단계적으로 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필수의료의 위기는 의대 정원을 몇 명 더 늘릴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다. 무엇을 먼저 바로 세워야 하는가의 문제다. 이제 정책의 초점은 증원 규모를 둘러싼 소모적 논쟁을 넘어, 지역 필수의료를 떠받치는 기본 구조를 어떻게 재설계할 것인가로 옮겨가야 한다. 기본 구조를 바꾸지 않는 증원은 지역 필수의료 문제의 해법이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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