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드레스 솔라노 콜롬비아 출신·소설가20세기를 대표하는 발명품은 전화, 비행기, 핵폭탄, 인터넷만이 아니다. 대중음악도 그 못지않은 영향력을 지닌 산물이다. 클래식이나 민속음악과 달리 팝음악의 역사는 태생부터 자본주의의 역동성과 긴밀히 연결돼 있어서일까. 보통 코카콜라처럼 ‘쉽게 소비되는 상품’ 정도로 여겨진다. 그러나 때때로 이러한 공식을 뒤흔드는 가수나 밴드가 등장한다. 가장 최근 그 범주에 이름을 올린 인물을 꼽자면 바로 33세의 글로벌 팝스타 로살리아다.
로살리아는 스페인 바로셀로나에서 차로 30분 정도 떨어진 작은 마을 출신이다. 그가 이달 초 네 번째 정규 앨범 ‘LUX’를 발표했는데, 이 음반은 음악적 배경도 취향도 다른 평론가들마저 입을 모아 “세대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걸작”이라는 평가를 내린다.
팝의 여왕 마돈나는 로살리아를 두고 “진정 시대를 앞서간다”고 극찬했다. ‘오페라의 유령’, ‘캐츠’ 등 유명 뮤지컬 노래를 만든 세계적 작곡가 앤드루 로이드 웨버도 “지난 10년간 발표된 작품 중 최고의 앨범”이라고 말했다. 뉴욕타임스(NYT)의 클래식음악 평론가 조슈아 배런은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이번 앨범 작업에 참여한 사실에 주목하며 로살리아의 음악적 야심이 오페라나 심포니에 버금간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그는 앨범 리뷰를 이렇게 맺었다. “클래식이 로살리아의 집은 아닐지라도, 이번 앨범은 클래식을 놀이터로 삼았다.”
로살리아는 이전부터 위험을 기꺼이 감수하는 아티스트로 유명했다. 새 앨범 ‘LUX’에서도 그는 스페인 전통 장르인 플라멩코의 정신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변주하고, 레게톤 등 카리브해 인근의 대중음악을 과감히 끌어오며 하이퍼팝과 클래식을 한 곡 안에서 결합하는 실험을 했다.
로살리아는 스페인의 고전음악원에서 전통음악을 전공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가장 충성스러운 팬마저 놀랄 만큼, 일반적인 대중음악가라면 선뜻 시도하기 어려운 위험한 도전을 했다. 먼저 로살리아는 이번 앨범을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의 흐름으로 감상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싱글 하나가 바이럴을 타는 ‘여름 히트송’형 소비를 거부한 것이다. 1시간 가까운 시간을 온전히 앨범 감상에 할애해 달라는 요구는 오늘날의 음악 시장에선 꽤 도발적인 선언이다. 실제로 ‘LUX’는 교향곡에서나 볼 법한 4악장 구조로 짜여 있다.
두 번째 도전은 언어의 확장이다. 스페인 출신인 로살리아는 지금까지는 스페인어로 가사를 쓰고 노래했다. 가끔 영어를 섞었지만, 전곡 영어 앨범을 낸 적은 없다. 그런데도 미국과 유럽, 중남미 등지에서 톱스타로 사랑받았다. 이번 앨범에서는 스페인어와 영어뿐 아니라 포르투갈어, 우크라이나어, 아랍어, 히브리어, 일본어, 중국어 등 총 13개 언어로 노래한다.
셋째, 이번 앨범의 모든 곡은 성녀, 수도자, 수녀 등 영적 존재에서 영감을 얻었다. 그러나 이 성스러움은 통속적 현실과 유머, 죽음 등의 키워드와 자연스럽게 공존한다는 점에서 로살리아의 통찰이 더욱 빛난다.
마지막으로 이번 앨범의 수록곡들은 팝음악의 일반적인 공식을 따르지 않는다. 이른바 ‘톱라인’이라 불리는, 듣는 순간 귀에 착 달라붙어 하루 종일 흥얼거리게 만드는 멜로디도 없다. 한 인터뷰에서 기자가 “이런 방식이 대중에게 너무 어렵고 복잡한 것은 아닌지, 팬들이 떠날까 두렵지 않으냐”라고 묻자, 로살리아는 주저 없이 답했다. “물론 어려워요. 하지만 저는 음악을 듣는 사람들이 ‘팝은 이래야만 해’라는 선입견에서 벗어났으면 좋겠어요.”
사랑은 때로 요구하는 것이다. 로살리아는 우리가 세상의 즐거움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인식의 범위를 확장하길 요구한다. 이것이 바로 ‘LUX’의 메시지가 아닐까. 대중가수라는 정체성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오롯이 팝스타가 되기를 꿈꾸지만, 진부한 공식을 답습하거나 같은 노래를 수천 번 반복하지도, 호기심과 새로움에 대한 열망을 저버리지도, 그리고 소속사나 음반사 임원들이 대중성을 빌미로 요구하는 것들에 자신을 끼워 맞추지도 않는다.
‘LUX’를 통해 로살리아는 훨씬 더 흥미롭고 고차원적이지만 여전히 즐거운 팝음악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특히 한국에서는 최근 K팝의 ‘다음 단계’에 관해 많은 논의가 있는 만큼 그 의미가 더욱 크다. 대중음악계 또 하나의 새로운 레퍼런스, 아니 어쩌면 다가올 미래를 마주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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