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장택동]“내가 피해자”라는 대통령 발언의 무거움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9월 19일 23시 15분


장택동 논설위원
장택동 논설위원
“대한민국에서 제일 힘센 사람이 됐다”(12일)고 스스로 밝혔듯이 이재명 대통령은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의 권력자다. 국회 과반 의석으로 정부를 뒷받침하는 여당, 존재감이 미미한 제1야당 등 정치 지형을 보면 민주화 이후 대통령 중에서도 이렇게 강력한 대통령이 있었나 싶다. 이런 이 대통령이 11일 기자회견에서 검찰개혁과 관련해 “내가 가장 큰 피해자”라고 했으니 눈길을 끌지 않을 수 없다. 이 대통령은 “나한테 불리한 건 사실이 아닌 것도 엄청나게 언론이 쓰더니 요새는 ‘그게 아니다’라는 명백한 팩트가 나와도 언론에 안 나오더라”고도 했다.

이 대통령이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이는 쌍방울 대북 송금 의혹 사건과 관련해 새로운 정황들이 드러나고 있는 점을 가리킨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는 김성태 전 쌍방울그룹 회장과 공모해 경기도지사였던 이 대통령의 방북 비용을 대납하게 한 혐의 등으로 유죄가 확정됐다. 이 대통령도 공범으로 기소됐고 재판은 취임 이후 중단된 상태다.

與 “대북송금 사건 조작… 공소 취소해야”

이 대통령이 본인 얘기를 먼저 꺼낸 것은 뒤에 이어진 “(검찰개혁은) 감정을 완전히 배제하고 치밀하게 검토하자”는 말의 설득력을 높이기 위한 화법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최근 대북송금 사건과 관련된 일련의 흐름을 보면 ‘피해자’ 발언을 흘려듣기는 어렵다. 이 사건의 공범인 KH그룹 회장 배상윤 씨는 6월 말 언론 인터뷰에서 “이 대통령 및 경기도와 전혀 무관한 일”이라고 했고, 이달 5일엔 KH그룹 전 부회장 조경식 씨가 국회 청문회에서 검찰로부터 “‘두 사람(이 대통령과 이 전 부지사)을 끼워 맞춰야 너희들이 살 수 있다’는 압박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국가정보원도 이달 2일 ‘과거 국정원이 이 대통령 측에 유리한 자료는 검찰에 제출하지 않았다’는 취지로 국회에 보고했다.

배 씨 인터뷰 직후 더불어민주당은 태스크포스(이후 특별위원회로 개편)를 만들어 본격 대응에 나섰고, 조 씨 증언 사흘 뒤엔 “조작 기소 실상이 드러났다”며 재수사를 촉구했다. 여권에서는 검찰이 이 대통령에 대한 공소 취소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 대통령은 야당 대표 시절에도 이 사건을 “희대의 조작 사건”이라며 거세게 비판했지만, 대통령의 발언은 무게가 확연히 다르다. 이 대통령의 의도와 무관하게 검찰에 적잖은 부담이 될 것이다.

판결로 李 결백 입증돼야 뒷말 없을 것

윤석열 정부에서 검찰이 이 대통령을 12개 혐의로 기소했을 만큼 집요하게 수사한 건 사실이다. 이 대통령으로서는 억울한 점이 있을 수 있고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시정돼야 마땅한데, 관건은 어떤 방식으로 바로잡을 것이냐다. 여권의 요구대로 공소 취소로 마무리된다면 검찰이 인사권자인 대통령의 눈치를 본 것 아니냐는 뒷말이 나올 가능성이 매우 높다. 반면 이 대통령 퇴임 이후에라도 모든 증거와 주장을 법정에 꺼내 놓고 판결을 통해 억울함을 증명한다면 누구도 정당성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게 된다.

또 이 전 부지사가 주장했던 검찰의 이른바 ‘술자리 회유 의혹’에 대해 법무부가 신빙성이 있다고 보고 본격적인 감찰에 나선 마당이다. 의혹이 사실로 확정된다면 재심 사유로 인정될 가능성이 있어 여권 일각과 이 전 부지사 측에서 벌써부터 재심 청구 얘기가 나오고 있다. 이 전 부지사 판결이 무죄로 뒤집힌다면 이 대통령도 함께 결백이 입증된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법원의 판단을 거쳐야 불필요한 논란의 싹이 남지 않을 것이다. “누구도 자기 사건의 재판관이 될 수 없다”는 말도 있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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