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통합위원회 고위 관계자는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지난해 12월 중순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윤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선포에 대한 당혹스러움과 실망감, 정국 혼란이 가중되고 사회 갈등이 심화되는 것에 대한 답답함이 묻어 있었다.
국민통합위는 탄핵 이후에도 계속 토론회를 열며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 김한길 위원장은 27일 중소기업과 대기업 양극화 해소를 위한 토론회에서 “광장의 소리가 커지는 만큼 그와 비례해서 국민 통합이 필요하다고 하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며 “국민통합위라는 간판을 내걸고 있는 우리 위원회에서 이럴 때 할 수 있는 일이 뭐겠는가, 요즘에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비상계엄 이후 통합을 위한 역할을 고민하고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탄핵 찬성과 반대로 국민을 갈라 놓고 있는 대통령 앞에선 공허한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윤 대통령은 대선 다음 날인 2022년 3월 10일 당선 인사에서 국민들이 자신을 뽑아준 이유에 대해 “국민을 편 가르지 말고 통합의 정치를 하라는 국민의 간절한 호소”라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자신의 멘토로 불린 김 위원장을 수장으로 한 국민통합위를 대통령직속 1호 위원회로 설치하며 통합 의지가 빈말이 아님을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취임 첫해 광주에서 열린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해 “대한민국 국민 모두는 광주 시민”이라고 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초심을 잃고 통합의 반대 방향으로 내달렸다. 윤 대통령은 2023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공산 전체주의를 맹종하며 조작 선동으로 여론을 왜곡하고 사회를 교란하는 반국가세력들이 여전히 활개치고 있다”며 반국가세력을 처음 언급했다. 이듬해 광복절 경축식은 독립기념관장 인선에 반발한 광복회가 정부 행사에 불참하면서 사상 처음으로 따로따로 기념식이 열렸다.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벌어진 국민 분열상은 모두가 아는 바와 같다. 갈등은 극에 달했고 윤 대통령의 언행은 갈수록 ‘편 가르기’ 행태를 보이고 있다. 윤 대통령은 8일 구속 취소 당일에도 국민을 향한 메시지 없이 탄핵 반대를 외친 자신의 지지층을 향한 감사 표시만 했다. 25일에는 헌법재판소 앞에서 28일째 단식하던 지지자에게 전화를 걸어 “건강하셔야 나라를 바로 세우는 일에 함께할 수 있다”며 단식을 중단시켰다. 하지만 단식하다 병원에 실려간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는 물론이고 광장에 모여 윤 대통령 파면을 촉구하는 국민들을 향해선 아무런 메시지가 없다.
윤 대통령의 메시지는 양 진영의 결집과 대립을 부추기고 있다. 여당 의원은 헌재가 탄핵을 인용할 경우 “헌재를 불태워야 한다”고 외쳤고 야당 의원은 ‘윤석열 참수’ 칼 모형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으며 군중심리에 올라탔다. 정치 선동은 난무하고 서울서부지법 폭력 난입 사태 등 물리적 폭력 사태로 번지고 있다.
광장에 나온 시민들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게 하고 갈라진 민심을 보듬고 통합시키는 게 지도자로서 ‘나라를 바로 세우는 일’ 아닐까. 윤 대통령이 지금이라도 당선 인사에서 외쳤던 ‘통합의 정치’를 회복해 주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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