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大결집은 사회 전반 좌편향 흐름을
수십 년 인내해 온 보수층의 비상한 각성
자폭 尹을 이재명·공수처·헌재가 살려내
尹, 계엄령 지지로 착각 말고 자신 버려야
이기홍 대기자
보수 진영 결집의 속도와 강도가 예사롭지 않다. ‘박근혜 탄핵’(2016년12월~2017년 3월10일) 때는 탄핵안 국회 통과부터 탄핵 인용 때까지 8대 2 정도의 비율로 탄핵 찬성이 반대를 압도하는 현상이 지속됐었다. 이번엔 계엄 직후 8대2 가량이었던 탄핵 찬반 여론이 한달여 만에 6대4 이내로 격차가 줄었다.
여당 지지율도 박근혜 탄핵 때는 2016년 10월말 29%→18%(최순실 구속)→12%(탄핵소추안 통과)를 거쳐 8%까지 추락했으나 이번에 국민의힘 지지율은 32%→24%로 떨어진 뒤 반등해 계엄 이전 수준을 넘어섰다.
이를 놓고 윤석열 대통령 측은 자신에 대한 지지로 여기고, 국민의힘은 탈윤석열 행보에 제동이 걸린 채 어정쩡한 행보다. 더불어민주당과 좌파 진영은 가짜뉴스와 극우 세력의 발호로 해석한다.
다 어이없는 착각이다. 파도가 몰려오면 거품이 아니라 물속 흐름을 봐야 한다. 거대한 흐름의 중심은 보수의 비상한 각성이다. 한국 우파의 주축인 온건·중도 보수 시민들은 오랫동안 참고 침묵해왔다. 87년 이후 사회 각 부문의 좌향좌를 불편한 심정으로 지켜보면서도 과거의 우편향에서 균형점으로의 이동이라고 여기며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현실은 균형점을 지나쳐 좌편향으로 치달았다.
한국사회는 유신, 전두환 시절까지 균형추가 우측으로 심하게 쏠린 상태였다. 6·25전쟁의 영향으로 좌파 세력은 미미했고, 그 덕에 경제발전과 안보라는 한 방향으로 에너지를 모으는 게 가능했다. 그러다 민주화 이후 추(錘)가 좌측으로 이동하기 시작하더니 문재인 정권에 이르러 정점을 찍었다. 보수층의 인내심은 총선 이후 민주당의 극단을 치닫는 입법독재 행태를 보며 한계점에 달했고, 계엄 이후 한덕수 탄핵, 공수처와 헌법재판소의 균형 잃은 행보에서 결국 폭발했다.
좌편향에 대한 반발기류는 미국 유럽 등 전세계적으로 과도한 PC(정치적 올바름)주의에 대한 반발, 소수자 보호에 치중한 결과 빚어지는 역차별과 제도·전통·문화의 왜곡에 대한 반발이 한창인 것과 맥을 같이한다.
지나치면 항상 역작용을 부르게 마련이다. 지난해 4월 총선 때 윤 대통령의 김건희 여사 비호 행태에 화가 나 조국에게 표를 준 사람들이 많듯이, 이번 보수의 결집도 이재명 민주당에 대한 반감에서 비롯된 ‘보복적 지지’ 심리가 영향을 미쳤다. 자폭한 윤석열을 이 대표와 헌재, 공수처가 좀비처럼 되살려준 셈이다.
계엄 이후 국민은 판사쇼핑을 하는 공수처의 얄팍함, 서부지원 판사의 월권, 헌재의 균형 잃은 행보를 목도했다.
사실 이런 행태의 뿌리는 문재인 정권으로 거슬러간다. 자유민주주의에 대해 기본 존중이 있는 정상적 정치인이라면 아무리 자기편이 임명권을 가져도 절제를 한다. 좌우 이념 스펙트럼을 1~10으로 놓고 볼 때 최고 법원 판사는 4~6의 인물들을 지명해야 마땅하지만 문재인 정권은 그런 절제의 양식이 실종된 시기였다. 오로지 주류세력 교체 욕심으로 전체 판사의 5% 이내인 우리법·국제법연구회 출신들로 진보 몫을 대부분 채웠다. 이번에 이 대표는 한술 더떠 헌법재판관 후보 2명을 모두 서부지원(정계선, 마은혁)에서 골랐다.
판사에 대한 사상 검증은 위험하다. 하지만 일반 판사가 아닌 헌법재판관은 헌법의 최후 보루이며 최종 해석자다. 6·25전쟁을 ‘노동자 농민의 승리가 결정적이던 순간에 미 제국주의가 개입해 수백만 명을 살해한 전쟁’으로,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해 ‘미국이 2000여 광주시민(공식 집계 희생자는 사망 154명, 행방불명 70명) 학살을 지원했다’는 주장을 하는 단체와 관련된 전력이 있다면 이는 차원이 다르다.
그후 어떤 사상적 이념적 변천을 겪어왔는지는 남들이 재단할 수 없지만, 만약 국힘이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해 과거 “빨갱이들이 주도한 좌익폭동”이라고 망언한 전력이 있는 변호사를 재판관에 추천했다면 민주당은 “당신네 추천 몫이니 상관없다”며 문제 삼지 않을 것인지 역지사지해 보라. 이 대표가 더 확실한 우리 편을 욕심내다 무리수를 둔 거다. 민주당은 윤 대통령의 허물로 자기들 허물이 가려질 것이라 착각했지만 국민은 어리석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윤 대통령이 보수의 결집을 자신에 대한 지지로 여긴다면 큰 착각이다. 아파트 1층 주민이 현관 앞 복도에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지르겠다고 소리쳤다고 가정하자. 주민들에게 포박된 그의 하소연인즉 2층 남자의 횡포에 참다 못해 경고용으로 이런 행동을 했다고 한다. 층간소음은 물론이고 화단으로 담배꽁초를 마구 던지고. 항의하면 식칼로 위협하고, 관리사무소에 얘기하면 무슨 특수한 관계인지 은근히 2층 남자 편을 든다는 거다. 2층 남자의 평소 무뢰배 행태를 익히 알고 있던 주민들은 “오죽했으면…”이라며 동정심을 갖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아파트 전체를 위험에 빠뜨릴 방화 위협을 용서하는 건 결코 아니다.
윤 대통령은 보수 진영 내에서 그나마 최대한 우호적으로 봐주는 사람들의 인식 속에서도 ‘동정심이 가는 악당’(심퍼테틱 빌런·sympathetic villain) 정도의 위치에 있다고 판단하는 게 올바른 자기 위치 파악이다.
보수가 뿔이 난 것은 맞지만 그것은 윤석열 개인에 대한 지지가 아니며 계엄을 정당화시켜 주려는 것도 아니다. 나라의 앞을 보고, 나라가 바르게 가야 한다는 간절함에서 분노한 것이다. 보수의 모처럼의 각성 분노 결집이 열매를 맺는 데 가장 큰 장애물은 윤석열이라는 존재다. 당장은 반(反)이재명 깃발에 결집했지만 결국 윤석열을 놓고 분열될 가능성이 크다.
윤 대통령은 집권 2년 반 동안 부인만을 감싸며 왕이라도 된 듯 격노하고 고집을 부려 찍어준 사람들을 부끄럽게 했다. 황당한 계엄령으로 더 부끄럽게 만들었다. 속죄할 길을 고민해야 마땅하다. 그는 지난달 체포되기 직전 “임기 2년 반 더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고 했다. 빈말이 아니었다면 하루빨리 국힘당을 자유롭게 해주고 보수의 짐, 즉 스스로를 치워줘야 한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