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권에서 파생된 윤석열-이재명
계엄선포-탄핵남발… 헌법 요건 무시 닮은꼴
양 진영 리더 동시 교체되면 대전환 길 열릴 것
이기홍 대기자
‘영혼의 근수(斤數) 측정.’
40년 전 읽은 단편소설 장면이 생각난다.
외모 학식 재산 등 모든 걸 벗고 한 인간으로서의 무게, 즉 인격 양심 감성 등을 종합한 영혼의 무게를 재는 장면이었다. 나도 갑작스레 그 저울에 올라가게 된다면…?
‘윤석열 계엄사태’ 이후 대한민국도 저울에 올라섰다. 그런데 저울 바늘이 형편없이 낮은 숫자에서 춤춘다. 번듯한 외관과는 달리 국가 시스템의 실제 근수는 빈약하기 그지없는 것이다.
만천하에 생중계된 ‘윤석열 계엄 소극(笑劇)’을 헌법과 법률에 따라 심판하는 것은 그리 복잡한 문제가 아니다. 공정하고 엄격하게 법적 절차만 준수하면 크고 작은 난관을 뚫고 갈 수 있다.
그런데 내란죄 수사권을 가진 경찰을 제치고 왜 굳이 공수처가 나서서 윤 대통령에게 저항할 빌미를 줬을까. 공수처는 왜 관할 법원을 제치고 서부지법에 영장을 신청해서 ‘판사 쇼핑’ 논란을 자초했을까. 영장 담당 판사는 왜 영장에 월권적 내용을 넣어서 논란을 자초했을까.
행정담당자인 헌법재판소 사무처장은 왜 계엄 위헌성에 대해 개인 의견을 내놓을까. 헌법재판관 8명 가운데 소장 권한대행을 포함해 3명이 우리법 또는 국제인권법연구회 출신이라는 점에서 강경 우파들이 헌재의 흠결을 찾아내려고 눈에 불을 켜는 상황인데 왜 불신의 단초를 제공할 경거망동을 할까.
이런 사법기관들의 행태는 대한민국 시스템의 무게와 깊이의 경박함을 드러내준다.
우리 사회에는 세상이 한 방향으로 몰려가면 어떤 무리수를 둬서라도 그 행렬에 합류하고 눈도장을 찍으려 발버둥 치는 천박함이 팽배하다. 집단적으로 흥분해서 가장 거대한 상자로 포장해 때려잡는다. 경중은 따지지 않는다.
천박한 달려듦에는 국가 기관들도 빠지지 않는다. 헌법이나 법률에 의해 수권 받은 국가 기관의 권한 행사는 최대한의 절제와 신중함을 견지하며 이뤄져야 하는데 오히려 국민보다 더 흥분한 기색을 드러낸다. 외형상 법적 절차만 밟으면 된다는 듯 꼼수를 동원하는 데서 화려한 과자 포장지 속의 초라한 내용물처럼 시스템의 얄팍함이 드러난다.
우리 사회에서 숙의민주주의, 상식과 절제가 사라지고, 법치주의가 법절차만 등에 업으면 되는 요식행위로 전락한 것은 문재인 정권, 특히 2020년 봄 코로나 사태로 민주당이 압도적 의석을 차지한 뒤부터다. 교조주의적인 좌파 성향 대통령, 그리고 민주주의 훈련을 전혀 받지 못한 586 출신들이 주축이 된 슈퍼 의석이 결합해 무소불위의 힘자랑이 시작됐고, 지난해 하반기 공직자 탄핵 남발, 예산 농단에서 정점을 찍었다.
이런 행태를 내놓고 할 수 있는 것은 특정 지역, 이념진영의 ‘묻지 마 지지’가 갈수록 더 공고화되기 때문이다. 아무리 비상식적인 행동을 해도 미래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 특정 지역, 지지층의 이익에 영합하는 방향이기만 하면 금배지가 보장되기 때문이다.
국회 만의 현상이 아니다. 경찰 국정원 등 정치바람이 세게 부는 상당수 조직들에선 지역·이념적 연줄에 얽힌 충성 경쟁과 미래권력 향방을 쫓는 이익 계산 바람이 불고 있다.
87년 체제의 한계라고들 얘기하지만 결국은 사람이 빚은 문제다. 문재인이라는 시대착오적 이념편향 정치인이 박근혜 탄핵 덕분에 횡재하듯 정권을 잡아 나라를 갈라치고, 그 여파로 윤석열 이재명이라는 권위주의적 인물들이 양쪽 진영의 지휘봉을 쥔 게 시스템의 붕괴를 가속화시켰다.
윤석열 이재명은 여러 면에서 닮았다. 헌법상 권한을 빙자한 권력남용도 닮은꼴이다.
윤 대통령이 헌법 요건에 맞지 않음을 알면서도 계엄 선포를 강행한 것이나, 이 대표가 취임 이틀밖에 되지 않은 방통위원장을 비롯해 검사 판사 감사원장 등의 탄핵이 헌법 요건을 충족하지 못함을 알면서도 다연발 탄핵을 강행한 것은 닮은꼴이다.
윤이 직권남용이면 이도 직권남용이고, 계엄선포 자체가 헌법농단이면 공직자 탄핵 남발도 헌법농단이다. 라이터 불장난을 주유소에서 했느냐, 골목 쓰레기통 앞에서 했느냐처럼 경중의 차이는 있지만 죄목은 같다.
물론 계엄선포 과정의 법 절차 이행 미비, 그리고 내란 혐의는 별개의 문제다. 윤 대통령이 국회 병력투입, 체포시도 등으로 국회의 판단 과정을 방해하는 행위를 계획했다면 이는 질적으로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가 된다. 윤 대통령의 내란 혐의는 계엄선포 자체가 아니라 이 대목에서부터 본격화한다.
일극체제 구축에 집착해 전통 깊은 정당을 망가뜨린 점도 닮은꼴이다. 윤 대통령의 여당 사당화는 실패했지만 이 대표는 일단 성공했다. 하지만 이재명이라는 존재가 민주당 재집권의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민주당의 집권은 국회 슈퍼의석과 제왕적 대통령 권한을 동시에 갖는 일극체제의 완성을 뜻하는데, 그 체제의 절대 권력자가 될 사람이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전투적 공격적 성향의 이미지를 갖고 있다면 많은 국민이 주저할 것이다.
‘170석 의회만 갖고도 저렇게 힘자랑을 해대는데 대통령까지 차지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 대한민국은 이재명이 원하는대로 다 할 수 있는 나라가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은 이 대표가 넘어야할 큰 장애물이 될 것이다. 2030 세대 수백만명이 해외주식에 투자하는 시대에 한미일 동맹 강화를 탄핵사유로 여기는 시대착오적 발상의 이미지도 장애물이 될 수 있다.
대한민국이라는 얼굴의 양쪽에는 각각 커다란 혹이 달려 있다.
양측 진영논리에 매몰된 사람들은 그게 자신의 살덩이라며 떼어내면 안 되는 것처럼 지키려 한다. 그러나 혹은 혹일 뿐이다. 달리기 선수의 다리에 달린 모래주머니처럼 먼저 떼어내는 쪽이 이긴다.
윤 대통령 체포로 우파는 혹을 떼어내는 수술대에 강제로 눕혀졌다. 반대편의 혹마저 떨어져 보수 진보 양 진영의 리더들이 동시에 교체되면 대한민국 정치는 대전환의 새로운 지평이 열릴 수 있다.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국민 절반은 나머지 절반의 지도자를 거부하는, 지난 수년간의 반목이 더 심한 형태로 이어질 것이다. 대전환이냐, 과거보다 더 어두운 과거로의 회귀냐, 대한민국은 기로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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