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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기홍 대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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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홍 칼럼]이 나라 보수는 ‘김건희 리스크’를 더 이상 안고 갈 수 없다‘분노와 한숨.’좌파든 우파든, 진보든 보수든 사람들이 요즘 정치권에 대해 느끼는 감정을 이렇게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상대편의 행태를 보면 분노가 치밀고, 자기편을 보면 한숨이 저절로 나오는 상황인 것. 그 분노라는 단어를 며칠 전 문재인 전 대통령이 썼다. 12·12쿠데타를 소재로 한 영화를 보고 나서 “불의한 세력에 대한 분노”라고 했다.지금의 더불어민주당을 겨냥해 했으면 딱 맞을 말이다. 44년 전 쿠데타라는 불의가 헌법과 민주주의를 짓밟았듯, 2023년 현재 다수당의 폭주라는 불의가 헌법과 민주주의를 짓밟고 있기 때문이다. 자기네 진영을 수사하는 검사를 탄핵하고, 자기네 진영 나팔수 역할을 해주는 공영방송들을 총선 때까지 계속 자기편으로 두기 위해 방통위원장을 탄핵 도마에 올린다. 5공 시절 집권당도 이렇게까지 노골적으로는 안 했다. 아무리 총칼로 집권했어도 국민 다수의 상식의 눈을 두려워하는 최소한의 센서는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의 민주당엔 그 수준의 자기 절제 센서조차 작동하지 않는다. 다수결이면 뭐든지 해도 된다는 착각에 빠져있다. 정권교체를 이뤄낸 국민들은 그런 다수당을 보며 분노가 치밀지만 고개를 돌려 대통령실과 여당을 보면 참담한 실망감에 한숨이 터져 나온다.“대통령 부인이 명품백을 받는 장면을 담은 영상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김의겸의 청담동 술자리 주장 같은 가짜뉴스거나, AI 딥페이크 영상이겠거니 했다. 도저히 상상하기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현직 퍼스트레이디가 친(親)적국(敵國) 활동 경력이 있는 인사를 만나 보석을 선물 받는데 이게 다 함정 몰카에 찍힌다~.’ 만약 필자가 영화제작자인데 그런 시나리오가 들어오면 너무 작위적이고 현실성 없는 설정이라며 퇴짜를 놓았을 것이다.이번 사건이 보여준 상상 초월의 세계는 세 종류다. 하나는 상상 초월의 저질스러운 공작 행태고, 둘째는 상상 초월의 허접한 사람 관리 및 경호 시스템이고, 셋째는 대통령 부인이 보여준 상상 초월의 행동이다. 이 세 요소는 서로의 상상 초월성을 상쇄하지 않는다. 김 여사가 백을 받았든 안 받았든 몰카 공작의 저열함과 비도덕성은 줄어들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함정 몰카라해서 김 여사 행동의 비도덕성이 감면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공원 벤치 두 개에 각각 100만 원 씩의 현금이 놓여 있다고 하자. 첫 번째 벤치 현금은 누군가 실수로 두고 간 것이고, 두 번째 벤치 현금은 함정 몰카범이 쳐놓은 덫이다. 그 돈을 누가 집어가든, 아무도 집어가지 않든 덫을 놓은 몰카 행위의 부도덕성이 바뀌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누군가 돈을 집어 갔다면 그것이 첫 번째 벤치 돈이든 두 번째 벤치 것이든 그 행동에 대한 비판은 똑같이 적용된다. 현금이 놓인 경위와는 무관한 것이다.함정 몰카 주동자들에 대해선 엄정한 법적용과 사회적 비판이 가해져야 한다. 다시는 미디어의 탈을 쓴 이런 저질 행태가 반복되지 않도록 단죄가 필요하다. 이 사건은 좌파 진영의 공작과 농간이 얼마나 간교하고 저열한 수준으로 치달았는지를 보여준다. 문 정권 시절 대통령 부인의 나홀로 해외방문, 의상 다량 구입 등 사치와 월권이 극에 달했지만 우파 진영 누구도 이런 식의 함정 공작을 꿈꾸지는 않았다. 하지만 좌파의 비도덕성에 대한 개탄과 김 여사의 행동에 대한 비판은 별개의 문제다. 하급직 공무원의 배우자라 해도 그런 선물은 받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할 것이다. 누구나 유혹은 느끼기 마련이지만 최소한의 위험 감지 능력이 생존 본능처럼 작동하기 때문이다.김 여사는 하루빨리 국민 앞에 사과해야 한다. 그리고 관저를 떠나 서초동 자택 등 사가(私家)로 거처를 옮겨 근신해야 한다. 물론 아무리 대통령이라 해도 부부는 사적인 영역이다. 그럼에도 대통령 배우자는 공인이다. 더구나 ‘김건희 리스크’는 총선과 나라의 진로에 지속적으로 상당한 영향을 미칠 사안이다.이번 사건은 특검을 앞세운 야당 공세에 휘발유를 뿌린 격이 될 것이다. 공천 개입설, 인사 개입설 등 믿거나 말거나 의혹을 계속 기름 붓듯 쏟아낼 것이다. 이를 차단하기 위해서도 김 여사는 의혹의 소지를 원천 차단할 수 있는 위치를 자처하고, 윤 대통령은 특별감찰관을 조속히 임명해 확고한 의지를 피력해야 한다. 특검 공세에 대응할 운신의 폭을 넓히기 위해서도 명품백 파문의 고리를 끊어내야 한다. 대선 4개월 반 전 김 여사는 눈물을 흘리며 “아내로서의 역할에만 충실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악의적 편집 가능성을 염두에 두더라도 취임 4개월이 지난 시점인 영상 속 모습은 약속과는 달라 보인다. 물론 김 여사에 대한 좌파 진영의 공격에는 마녀사냥, 여성 비하, 공작적 요소들이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그들이 제기했던 의혹들 중 사실로 최종 확인된 것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이번 건은 다르다. 정치적 유불리를 떠나서도 그렇다. 쉬쉬하고 넘어간다면 앞으로 전국의 공직자 배우자들에게 어떻게 김영란법 준수를 요구할 수 있겠나. 국민권익위는 왜 존재하는 기관인가. 신속히 진상 조사에 착수해 금품을 준 쪽과 김 여사 쪽 모두의 법 위반 여부를 엄정히 조사하는 것이 직분 아닌가. 이번 파문은 정권교체를 열망하며 한 표 한 표 벽돌을 쌓듯이 정권교체를 이뤄낸 국민에게 배신의 상처를 안겼다. 진심 어린 사과와 근신의 자세, 배우자 논란의 소지를 원천차단할 안전장치 마련 없이는 이를 치유할 방법이 없다.이기홍 대기자 sechepa@donga.com}2023-12-07 23:51
[이기홍 칼럼]서울에서 이길 비법개혁은 타이밍인데, 강서 보선 참패 한 달 반이 되도록 국민의힘 혁신은 지지부진하다.도대체 왜 저럴까. 인요한 혁신위에는 이른바 ‘윤심’이 실리지 않은걸까. 필자가 취재해본 결과, 현재 국힘 내부에서 벌어지는 일은 전형적인 당내 기득권 세력의 저항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인요한의 혁신 요구는 윤석열 대통령의 뜻과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수세에 몰린 기존 체제 핵심들은 이런 논리를 퍼뜨리기 시작했다. “대통령이 속고 있다. 김한길(국민통합위원장)이 인요한을 앞세워 김기현을 내쫓고 당을 접수해서 공천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한다….” 그러면서 “소는 누가 키우나” 논리를 퍼뜨렸다. 물론 턱도 없는 논리다. ‘검사 내리꽂기’ 같은 어처구니 없는 일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여당 텃밭들은 새로운 얼굴이 나서도 뺏길 가능성은 크지 않다.결국 “소는 누가” 주장 속에는 “우리를 내쫓으면 누가 대통령을 보호해 주겠느냐‘는 반(半)협박이 은밀히 숨겨져 있다. 집권 중후반기 레임덕을 최소화하려면 오히려 윤핵관을 늘리고 힘을 키워줘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심지어 ‘대통령이 잘못해 지지도가 떨어진 건데 왜 우리한테 뒤집어씌우나’ ‘야당은 김건희 특검을 밀어붙이는데 결속을 다져도 모자랄 판에 내부총질이나 해서 되겠느냐’ 식의 주장까지 은밀히 퍼뜨린다. 간특한 논리다. 개국공신이라고 거들먹대던 자들이 새 왕조의 개혁으로 토사구팽 위기에 처하자 반발하며 모든 걸 권력 암투극으로 색칠하는 진부한 사극장면이 연상된다. 물론 쇄신 대상 중진의 개념정의는 보다 정교해져야하며, 지역구 특성을 가리지 않고 다선이라고 무조건 내모는 식의 개혁은 안된다.하지만 대선 보선 승리로 순풍에 돛을 올렸던 새 정권의 지지도를 순식간에 곤두박질치게 만든 핵심 책임자들이 권력을 더 누리겠다며 반발하는 모습은 추하기 그지없다. 희대의 당 대표 경선 막장드라마를 주도하고 달콤한 과실을 따먹었으면 이제 정권이 처한 위기와 지지층 여망을 저버린 책임을 조금이라도 느껴야 마땅하지 않은가.해법은 간단하다. 대통령이 결자해지(結者解之)해야 한다. 김기현 체제와 윤핵관 세력은 윤 대통령이 만든 건축물이다. 직접 부수고 재건축해야 한다. 인요한에게 힘을 실어줬던 대통령이 좌고우면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혁신이 주춤하는 현 국면이 장기화되어선 안 된다. 물론 실행 방법에서는 고단수의 정치적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내몰 듯 하지 말고, 대통령이 직접 “좀 참고 도와달라. 이번엔 귀하가 희생해달라”고 하면 더 이상 저항하지 않을 것이다. 한 윤핵관 핵심인사는 “대통령이 희생해달라고 하면 나는 백프로 희생한다, 하지만 바람에 밀려 강제로 날아가는 모양새로는 죽어도 못나간다”고 토로했다고 한다. 여권 전체를 재건축한다는 대의에 동참해 자기 방을 비워주는 모양새를 갖춰줘야 한다. 그러고는 전선(戰線)을 국회 개혁으로 집중해야 한다. 이번 총선은 여든 야든 국회 개혁을 진정성 있게 결심하고 실천 의지를 보이는 쪽이 승리한다.최악의 21대 국회를 겪은 국민은 진저리를 치면서 묻고 있다. 지난 3년 7개월간 국회는 뭘 했는가. 헌정 이래 지금까지 범죄 혐의자 한 사람을 방탄하려고 국회가 이렇게 아무것도 못 한 전례가 있었는가. 180석을 몰아줬더니 건국 이래 존중돼온, 심지어 군사독재하에서도 이어져온 민주공화정의 최소한의 상식 전통 관례마저 다 무시되고 짓밟히지 않았는가….그냥 우리를 찍어달라가 아니라 정말로 완전히 다른 국회를 만들 청사진과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 의원수를 대폭 줄이고, 세비를 반으로 줄이고, 180가지에 달하는 의원 특권을 모두 폐지하겠다고 약속해야 한다. 전국을 7개든 8개든 권역으로 나눠 전국 순회 국회개혁 토론회를 열어 분출되는 국민의 소리를 집대성해 공약으로 내걸고 이걸 실천할 수 있게 표를 달라고 해보라. 그리고 누구를 모셔 오느냐에 집중해야 한다. 어떤 인재를 데려와야할지 기준은 아주 간단 명확하다. 서울에서 이기고 싶으면 서울의 특징을 보면 된다. 첫째 젊은층이 많고, 둘째 중도층이 많으며, 셋째 고학력층이 많다.서울의 고학력 젊은 중도층 유권자 앞에 ‘낡은 좌파이념에 찌든 운동권 출신 vs 미래를 얘기하는 프레시한 테크노크라트’를 제시하면 누굴 택하겠는가.‘죽창가 반일 반미를 외치는 우물안 개구리 vs 세계를 무대로 경험을 쌓고 젊은이들의 미래 먹거리인 인공지능(AI) 우주항공 분야에서 성과를 거둬 온 과학기술인’을 제시하면 누굴 택하겠는가. 연예인 등 유명인사 깜짝 영입은 하루치 효과 일뿐이다. 얼굴은 생소해도 이력을 보니 고개를 끄덕일 만한 사람을 찾아야 한다. 이념에 찌든 머리로는 감히 엄두 낼 수 없는 실용적이고 미래 지향적인 인재들로 쫙 깔아야 한다.서울 참패의 길도 선명히 보인다. 민주당이 86세력이나 그 후배 한총련 등 이념운동권 세력에게 공천 특혜를 주면 패배를 자초하는 길이 된다. 마찬가지로 여당이 검사 출신, 대통령실 출신에게 공천 특혜를 준다면 참패행 고속열차 티켓이 될 것이다.MBC YTN 등 문재인 정권 때 발탁된 인사들이 경영권을 쥐고 있는 방송사 간부진과 좌파 인터넷 유사 언론들은 여당이 총선에 이기면 자신들의 운명이 곤두박질친다는 절박감을 갖고 생사를 건 진영방송에 나설 것이다.좌파 진영에선 벌써부터 ‘여사 측 비례대표 리스트’ 등의 루머를 퍼뜨리고 있다. 대통령비서실장 가족 등 정권 핵심 주변을 노린 사냥도 물밑에서 진행되고 있다. 그들은 여당 공천 과정에서 의심스러운 이름이 한두 명이라도 나오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다. ‘여사 공천 개입’ 같은 필승 프레임을 짜 만들기 위해서다.이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서라도 공천의 독립성 공정성을 보장할 제도적 장치 마련이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윤 대통령이 공천 독립성 보장을 분명히 못박아 메시지 오독(誤讀) 소지를 차단해야 한다. 그러면서 대낮에도 등불을 들고 참된 사람을 찾아다닌 디오게네스처럼 인재를 찾아 나서야 한다.이기홍 대기자 sechepa@donga.com}2023-11-23 23:51
[이기홍 칼럼]“인사 하는 거 보니 尹 정말 달라졌다”는 말 나오게 해야강서구 보선 패배 후 한 달, 반성과 민생을 화두로 한 윤석열 대통령의 변신 행보가 이어지면서 지지율도 다소 회복세다. 제3지대와 신당 등 이합집산 움직임도 본격화하고 있다. 이런 추세가 이어지고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모두 측근 내리꽂기 공천 같은 ‘자폭성 대형 사고(事故)’ 없이 무난한 공천을 할 경우 내년 4월 총선 판세는 어떻게 될까. 선거 전문가들은 비례대표를 합쳐 국힘 100~120석, 민주당 130~140석, 제3지대와 신당 등이 30석 안팎을 차지할 가능성을 점친다. 민주당이 원내 1당이지만 과반이 안되고, 제3지대가 반(反) 민주당 성향이 강하므로 독주에 제동이 걸릴 수 있다는 점에서 정부 여당으로선 그나마 선방으로 여겨야할 것이라는 해석이 덧붙여진다.물론 보수진영 유권자들은 이런 전망을 도저히 수긍하기 어려울 것이다.“나라 재정을 거덜 내고 온갖 부도덕과 위선으로 점철된 문재인 5년을 보냈고, 현재의 민주당은 DJ 노무현 시절과 비교도 안되는 최하 수준인데 어떻게 계속 1당이 될 수 있다는 건가….”이런 의문을 갖는 사람들에게 선거 전문가들은 이렇게 설명한다. 첫째, 국민(특히 중도성향 무당파)은 좌파의 부도덕과 부당한 점을 다 알고 분노하지만 그 대안으로 택한 우파 정권 역시 처가 문제, 인사 논란 등으로 실망시키는 바람에 분노의 경감 효과가 발생했다. 객관적으로 따져보면 비교 자체가 안될만큼 ‘죄질’이 다르지만 사람들은 좀 더 나은 수준이 아니라 완전히 다른 수준의, 정의와 공정함의 회복을 기대했는데 그런 기대가 깨지면서 비교우위가 무의미해졌다는 것.둘째, 수도권 등에 거주하는 호남 출신 유권자의 단결력이 타 지역 출신 보다 훨씬 강하다. 셋째, 임기 중반 총선은 중간평가 성격이 강한데 지금처럼 경제가 안 좋을 경우 실제 책임소재가 전임 정권이든 세계상황이든 관계없이 집권당의 무덤이 될 가능성이 크다. 넷째, 민노총 전교조 등 좌파 진영의 조직력과 이권 네트워크가 워낙 방대하고 견고하다. 다섯째, 문 정권 5년간 상당수 국민이 알게 모르게 포퓰리즘에 입맛이 들어버렸다.보수에겐 암울한 진단이지만 이게 우리 수준이고 현실이다. 물론 정치는 생물이다. 지난 총선을 뒤덮은 코로나 같은 대형 산사태가 아니어도 판세를 바꿀 변수는 숱하게 잠재해 있다. 누가 더 절박하게 뛰고, 더 외연을 확장하느냐에 따라 수십 석이 바뀐다.이재명 민주당으로선 대승의 첩경이 선명히 보인다. 비명을 완전히 포용하고, 특권 포기에 앞장서며 실용주의 노선에 집중하는 것이다. 게다가 여당이 텃밭에 검사와 대통령 측근들을 대거 꽂아주면 과반수 차지는 식은 죽 먹기가 될 것이다. 윤 대통령이 불리한 판세를 극복할 첩경도 보인다. 반성·겸손 모드를 더 진정성 있게 이어가는 동시에 인사 스타일을 확 바꾸는 것이다. 저조한 지지율을 벗어나지 못하는 양대 이유는 오만·불통 이미지와 인사 논란이었는데, 이미지는 바꾸려 노력 중이고 인사 스타일도 바꿀 기회가 자연스레 다가오고 있다.총선 출마로 수석 6자리 중 5자리의 개편 요인이 있으며, 내각도 기재부 국토부 보훈부 장관 등의 출마 가능성이 거론된다. ‘윤석열 인사’를 비판할 때 흔히 검찰 출신 중용을 비난하지만, 실제로 가장 큰 문제는 편한 사람 위주의 인선이었다. 그러다 보니 관료 출신이 대거 중용됐다. 그 결과 대통령실에서 쓴소리가 사라지고 정무 기능도 거의 마비됐다.비서실장은 대통령의 정치 경험 부족을 보완해주고, 정권과 나라의 미래에 대한 큰 그림을 그리며 정치적 조언을 해줄 수 있어야 하는데 경제관료 출신 실장에게선 기대하기 어려웠다. 김대기 실장이 대통령의 눈과 귀가 되어 민심을 파악하고 가감 없이 전달했다면 지지율 30%대라는 참담한 결과는 없었을 것이다. 김 실장이 정권 성공과 총선 승리를 위한 그랜드 전략, 실행력을 갖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정무수석이라도 여야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중량급 있는 인물이 맡아 대통령을 대리해 밤에는 야당 중진들과 소주잔을 기울이고, 낮에는 여당 의원들의 하소연을 들으며 교류했어야 하는데 이진복 수석은 사실상 ‘기능정지’ 상태였다는 평가가 많다.내각의 인선 풀도 넓어져야 한다. 1년 반을 돌아보면 누가 성과를 냈는지 보인다. 국토 법무 외교 보훈부 등 그나마 두드러졌던 장관들은 다들 성취에 대한 욕심이 크면서도 정치 감각이 있는 사람들이다.세계는 빛의 속도로 변하고 기업 등 민간 부문 곳곳에 뛰어난 인재들이 포진해 있다. 온건 진보·중도성향의 야권 정치인과 인재들도 적극 발탁해야 한다. 링컨의 포용적 리더십처럼 ‘팀 오브 라이벌(Team of Rivals)’을 꾸리는 것이다.정권 출범 당시의 측근중용은 정당 밖에서 입성한 신흥 권력그룹의 한계 때문인 면도 있었다. 여권 인력 풀에서 믿고 쓸 사람을 쉽게 찾지 못하다보니 충성심과 업무능력을 직접 겪어본 사람들에 의존하다 쏠림 비난을 자초한 것이다. 그러고도 6월 지방선거에서 압승하니 지나친 자신감에 빠졌다.사실 2021년 전당대회에서 이준석의 당선도, 서울시장 보선에서 오세훈의 압승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국힘의 승리도, 개별 정치인의 매력이 낳은 산물이 전혀 아니었다. 연이은 승리들은 좌파정권 종식에 대한 국민의 간절한 열망이 낳은 것이었고 정치인들은 운좋게 그 열망의 파도에 올라탄 서퍼(surfer)에 불과했다. YS DJ처럼 오랜 세월 몸 바쳐 쌓아온 자기만의 정치 자본이 없으면서도 자신이 파도를 몰고 온 주역이라고 착각하면 곧 정치 예금통장이 마이너스가 된다. 다행히 윤 대통령은 올바른 변신 모드로 접어들었는데 그 변신 프로젝트는 인사 혁신 없이는 완성되기 어렵다.이재명 대표는 속으로 아무리 싫어도 비명을 끌어안고 가려 할 것이다. 총선 승리에 생존이 달렸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과 국힘은 그보다 더 절박한 심정으로 임해야 한다. 누가 더 절박하느냐에 승패가, 나라의 미래가 달렸다.이기홍 대기자 sechepa@donga.com}2023-11-09 23:51
[이기홍 칼럼]바꾼다더니 격화소양… 김기현 퇴진이 혁신 출발이다현재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이 처한 곤경의 원인은 명확하다. 증상이 본격 목격되기 시작한 것은 6·1 지방선거 압승 일주일 뒤인 지난해 6월 둘째주부터였다. 6월 7일 윤 대통령은 출근길 도어스테핑에서 검찰출신 중용에 대한 질문에 “과거에는 민변 출신들이 아주 도배하지 않았느냐”며 발끈했다. 다음 날 정진석 의원(당시 국회부의장)은 느닷없이 이준석 대표를 공격하는 글을 SNS에 올렸다. 중도층과 온건보수의 마음을 떠나게 만든 양대 원인인 △윤 대통령의 오만·불통 이미지와 △여당의 사당화(私黨化)논란 신호탄들이 하루간격으로 발사된 것이다.윤 대통령 지지율은 직전까지만 해도 상승세로 6월 7~9일 조사 때 53%(한국갤럽)로 고점을 찍었다. 그러나 14~16일 조사에서 49%로 하강세에 들어선 지지율은 “전 정권 장관 중 훌륭한 사람 봤느냐”는 식의 태도가 이어지고, 이준석 축출 과정의 이전투구를 거쳐 경선 룰을 편의대로 바꿔버리고 나경원 안철수를 짓누르는 전무후무한 전당대회 추태를 연출하면서 30%대로 고착됐다.증상과 원인이 명확하니 처방도 명확하다. 처방은 두 축이다. 하나는 대통령이 리더십 스타일을 경청 공감 소통으로 바꾸는 것이고, 또 하나는 대통령과 당 관계의 정상화다. 첫째 처방은 실행에 들어갔다. “국민은 무조건 옳다” “민생 속으로 들어가자”는 대통령의 잇따른 발언 배경을 들어보니 대통령이 민의를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진단들이 전해졌다. 두 번째 처방도 혁신위 출범으로 나름 실행 준비에 들어간 듯 보인다.그런데 국민도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필자는 칼럼을 준비하면서 지인들의 의견을 자주 청해 듣는다. 우리 사회 이념 스펙트럼을 극좌1~극우10으로 놓고 펼쳐볼 때 5~8 사이로 분류되는 인사들이다. 최근 며칠간 통화해 보니 놀랍게도 모두 고개를 흔들었다.한마디로 격화소양(隔靴搔癢)이라는 것이다. 구두 위로 긁는 시늉만 내는데 어느 국민이 감동하겠느냐는 것이다. 이들은 모두 독립을 염원하는 식민 치하 백성들처럼 정권교체를 열망하며 윤 후보에 투표했고 지금도 윤 정부의 성공을 간절히 바라는 사람들이다.그들이 지적한 핵심은 김기현 체제가 유지되는 한 그걸 누가 진정한 변화 의지로 받아들이겠느냐는 것이다. 김기현이라는 개인에 대한 호감 비호감 차원의 문제가 아니었다. 김 대표가 즉각 물러나야 할 이유는 차고 넘친다. 첫째, 책임을 져야 한다. 대통령중심제에선 모든 게 궁극적으로 대통령 책임이지만 대통령은 수시로 진퇴를 하는 자리가 아니다. 내각의 잘못은 총리가, 당의 문제는 대표가 책임져야 한다. 구청장 선거라는 일개 보선 패배에 책임을 지라는 게 아니라 거기서 재확인된 땅에 떨어진 여당의 위상과 중도층 이반 상황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이다. 둘째, 개혁의 장애물이 되어선 안 된다. 대통령 직할이라는 이미지가 고착된 김 대표가 있는 한 아무리 혁신위가 개혁안을 내놓아도 당정 관계가 정상화됐다고 여길 국민은 많지 않다. 인요한 혁신위원장 카드는 일단 관심 끄는 데는 효과적이지만 누가 위원장인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에게 얼마만큼의 권한이 위임됐는지를 모두가 알게 공개되어야 그 사람에게 힘이 실린다는 걸 국민도 다 안다.셋째, 대통령의 운신 폭을 위한 김 대표의 선제적 자기 희생이 필요하다. 윤 대통령으로선 직접 창출한 것이나 다름없는 대표를 내치는 것은 자기부정이 되며, 인간적으로도 강제로 내치기 어려운 처지다. 설령 실제론 당과 대통령실의 관계가 외부에 비쳐지는 것과 다르다 해도 국민의 눈에는 이미 시작부터 그런 이미지가 고착화됐다. 김 대표가 아무리 유능해도 그 태생적 한계를 돌이킬 수 없다. 여권에겐 험난한 길이 예고돼 있다. 세계정세와 국내외 경제상황을 볼 때 내년 총선까지 경제가 좋아질 전망은 거의 없다. 문재인 정권이 남기고 간 오물은 그 누가 와도 치우기 어려운 지경이다.핵심 지지층은 “이재명 하나 못 잡아넣고 문재인은 손도 못 댄다”고 실망하고, 야당은 구속영장 기각이라는 본질과 무관한 절차적 결정 하나를 등에 업고 활개를 친다. 이재명 대표 측의 노골적인 재판 지연 행각은 어떤 죄든 선거만 이기면 다 뒤엎을 수 있다는, 공화정과 법치주의의 근본조차 무시하는 발상을 보여 준다. 비정상도 보통 비정상이 아닌데도 이를 모두가 당연한 듯 덤덤하게 받아들이게 되는 도치(倒置)의 일상화다.돌파할 방법은 간단하다. 후보교체론까지 일었던 대선 직전 겨울을 생각하면 된다. 2022년 벽두 윤 후보는 엎드려 절하고 포옹하며 현장으로 갔다. 그때의 초심을 갖고 다시 민생현장으로 가야 한다. 전국 곳곳을 다니면서 1년 반 동안 자신이 잘했는지 못했는지 귀로 들어야 한다. 윤 대통령의 외교 성과는 높이 평가받아 마땅하지만 외교는 어음이고 국내 정치는 현찰이다. 임기 동안 무엇을 우선순위에 둘 것인지를 냉철히 판단해 에너지를 집중해야 한다. ‘황소와 싸울 때는 뿔을 잡아 제압하라(take the bull by the horn)’는 말처럼 내정의 난제들을 정면 돌파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김기현 체제 지속에 대한 여당 의원들의 침묵은 공천에 목매 공멸의 길로 갈수도 있는 여당의 구조적 한계를 보여준다. 배가 침몰하는 걸 뻔히 알면서도 우리끼리 뭉쳐 있으면 그래도 나는 살겠지라는 태도다. 만약 총선에서 패배하면 윤 대통령은 바로 레임덕에 들어간다. 좌파 진영은 총선 승리 시 바로 탄핵운동에 들어가 2027년 대선까지 몰아친다는 전략을 세워 놓고 있다. 윤 정부 5년은 아무 일도 제대로 못해 본 채 진공 기간이 될 수 있다.김 대표 스스로 용퇴의 결단을 내리는 게 옳지만 더 시간을 질질 끈다면 인요한 혁신위의 첫 번째 혁신 요구안이 김 대표 사퇴가 되어야 마땅하다. 보수 진영 지지자들의 위기감은 깊다. 내년 4월 총선 날 밤에 땅을 치고 후회할 코스로 그대로 갈 것인지의 갈림길이다.이기홍 대기자 sechepa@donga.com}2023-10-27 00:06
[이기홍 칼럼]정책은 직진하고, 리더십 스타일은 확 바꿔라“가장 확실한 해법은 바이든이 빠져주는 건데, 당사자만 그걸 모르니….”미국 민주당의 고위급 인사가 ‘트럼프 리스크’를 걱정하며 사석에서 한 말이다. 내년 11월 대선에서 ‘트럼프 당선’이라는 악몽의 가능성을 줄일 가장 좋은 방법은 바이든 대통령이 연임에 도전하지 않는 것인데 정작 바이든 본인만 그걸 모른다는 것이다.물론 농담 섞인 푸념이었지만, 한국의 여야도 비슷한 현상을 겪고 있다. 국민의힘 사람들에게 내년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의 필승 비법, 즉 국힘이 가장 두려워하는 상황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이런 대답이 돌아온다.이재명 대표가 “나는 재판에만 몰두하겠다”며 뒤로 빠지고 비명 친명 구분없이 한 몸이 된 새 얼굴들로 지도부를 구성해 공천 혁신을 하는 상황이다. 그러면서 민주당 의원 전원이 “180석을 주셨는데 민생을 살리는데 힘을 쏟지 못했다”며 국민 앞에 무릎 꿇고 실용주의 진보정당을 표방하는 상황이다. 물론 현실이 될 가능성은 없다. 정반대로 질주할 것이다.민주당 사람들에게 국힘의 필승 비법을 물으면 어떨까…. 강서구청장 보선 패배는 사실 여당에선 진작 예상했던 바였다. 투표일 전부터 내부에선 표차가 20% 가까이 날수도 있다는 예측이 나왔다. 보선 후 쇄신책이 나올 것이라는 얘기도 진작부터 돌았다.이제 예고된 대로 책임론과 국정쇄신론이 일 것이다.확 바꿔야 할 것과 더 확실하게 밀고 나가야 할 것을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정책 방향은 변경의 대상이 아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도가 낮은 것은 정책 방향의 문제가 아니다. 한미동맹 강화, 문재인 정권이 이탈시킨 나라 궤도와 역사 바로잡기, 건전재정 유지, 민노총과 온갖 좌파 카르텔의 폐단 시정 등 정책기조 대부분은 옳은 방향이며, 골수 좌파 지지층을 제외한 다수 국민이 공감하고 있다.‘이재명에만 매달려 신물 난다’ 하는데, 많은 이들이 그런 느낌을 갖게 되는 상황인 것과 그게 진실인 것은 별개다. 핵심 혐의인 대장동 수사는 이미 올 1월 사실상 마무리됐고 민주당이 체포동의안을 부결시키지 않았다면 이 대표는 2월 구속돼 언론 헤드라인에서 사라진 채 재판을 받고 있고, 백현동 대북송금 등의 추가 혐의들은 조용히 추가 기소됐을 것이다. 범죄 혐의들이 워낙 다종 다양한데다 민주당이 방탄을 해주는 바람에 오랜 기간 이슈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였고 결과적으로는 국민들에게 피로감을 유발한 것이다. 단칼에 외과수술 하듯 승부했어야한다는 비판도 나오는데, 그럼 나중에 추가로 불거진 백현동, 대북송금 등 중대 혐의들을 덮어버렸어야 한다는 말인가.이 대표 구속영장 기각은 심판의 자질 문제일 뿐 본질과는 무관하다. 인류 역사는 거대한 사건의 흐름 속에서 우연히 길목을 지키게 된 한 사람의 비상식적 결정이 엄청난 낭비와 소모를 유발하는 사례를 수없이 봐왔다. 열심히 뛰어 골을 넣었는데 이상한 심판이 공격자 반칙을 선언해 경기 흐름이 끊어지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그래도 사안의 본질은 달라지지 않는다. 중대범죄 혐의자가 과반 의석 정당의 대표라는 권력을 휘두르며 민주주의를 왜곡시키는 소모적 프로세스를 국민이 보다 더 오래 겪어야 함을 의미할 뿐이지, 혐의의 중대함과 사법적 정의실현이라는 본질은 전혀 달라진 게 없다.물론 윤 정부가 추진해온 국정 방향이 옳다는 것과 그것이 제대로 실행돼 국민이 체감할 수 있게 결과로 전달됐는지는 별개다. 서툴고 무능해 일을 그르치는 내각과 참모진이 있다면 인적 쇄신이 필요하지만 모양 갖추기식 사람 바꾸기만으로는 진정한 쇄신이 될 수 없다.30% 중반대에 머무는 지지율과 보선 결과에 대해 윤 대통령은 내심 억울한 마음이 들 것이다. ‘밤잠 못 자고 코피 쏟으며 명절에도 매일 현장을 다니며 혼신의 힘을 다했는데…’.하지만 정치는 보여지는 것이다. 자기 혼자 아무리 고생하고 커튼 뒤에서 울어도 누가 알아주지 않는다.당초 김기현 대표는 김태우를 배제하고 다른 두 사람을 후보군으로 밀었으나 대통령실이 김태우를 배제하면 사면에 문제가 있다는 뜻이 되지 않느냐며 고집했다고 한다. 윤 대통령은 주변에서 자신과 다른 생각, 쓴소리를 마음껏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왔다고 자신할 수 있는가?지금 정말 절실히 쇄신해야 할 항목은 대통령 본인의 리더십 스타일이다. 첫째, 귀를 열고 불편한 소리를 청해 들어야 한다. 둘째, 민생현장에서 공감의 리더십을 보여줘야 한다. 셋째, 사람에 관한한 철저히 덧셈의 정치를 해야 한다. 화목한 가정을 위해선 배우자의 말을 많이 들어주고 공감해주라는 말을 많이들 한다. 경영학 책에도 수없이 나온다. 경청·공감, “입 닫고 귀 열어”가 리더십의 요체다. 민생의 어려움도 마찬가지다. 지금 경제는 솔로몬이 와도 풀기 어렵다. 문 정권이 곳간을 다 털어먹은 데다, 국제 정치 경제 상황도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국민도 그걸 안다. 그럼에도 비판이 주로 윤 대통령으로 향하는 것은 공감과 비전의 리더십이 안 느껴지기 때문이다.말로 민생대책을 강조하는 데 그치지 않고 애로사항을 직접 들어주고 같이 아파해줘야 한다. 시장에 가서 어깨 몇 번 두드려주고 오는 게 아니라, 손님 끊긴 밥집에 상인들과 둘러앉아 몇 시간이고 얘기 들어주고 일일이 메모해야 한다. “다녀갔다” “떡복이 먹고 갔다”가 아니라 “듣고 갔다” “수첩에 적어 갔다”가 돼야 한다. 젊은 창업인들, 구직박람회의 청년들…대통령이 만나 청취하고 함께 고민해 줘야할 대상은 수도 없이 널려있다.선거는 당에 일임해야 한다. 여당은 윤 정부를 돕기 위해 표를 달라가 아니라 “우리 당이 이러 이러한 걸 하려하니 의석을 주십시오”라고 해야한다. 그러려면 국민 속으로 들어가 국민이 뭐를 바라는지 수렴해서 정책으로 묶어내야 한다.총선 승리 전략? 아주 간단하다. 당선될 사람을 공천하면 된다. 그게 그렇게 어려운가. 대통령이 공천에서 손 떼고 당선 가능성 위주로 공천하라고 당에 엄명하면 된다.리더십 쇄신의 핵심은 듣기 싫은 소리를 기꺼이 청해 듣는 데서 출발한다. 예스맨을 멀리하고 목이 달아나도 할 소리 하는 사람을 자주 만나야 한다. 5년간 귀가 편하면 평생 손가락질당하고, 5년을 불편하게 지내면 평생을 칭송받으며 살 것이다.이기홍 대기자 sechepa@donga.com}2023-10-12 23:51
[이기홍 칼럼]尹의 ‘이념 드라이브’, 우경화 아닌 ‘정상화’가 목적지다최근 연이어 이념을 강조하는 윤석열 대통령의 행보에 대해 사람들이 갖는 궁금증을 요약하면 ①대통령의 정치적 의도는 무엇인가 ②‘이념 드라이브’로 중도층이 멀어지는 것 아닌가…등이다.①번 궁금증과 관련해 여러 언론이나 전문가들은 “보수진영 대주주로서 그립을 꽉 쥐기 위해” “총선 지지층 결집을 위해” 등의 정치적 포석이라는 해석을 주로 내놓는다. 하지만 필자가 접촉해 본 윤 대통령에 대해 잘 아는 인사들의 해석은 달랐다. 이 시대에 반드시 해야 하는 일종의 사명이라고 여긴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수의 입맛을 맞출지 주판알을 굴려 선택한 결과물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특히 한미일 공조체제를 핵심으로 하는 외교안보 노선은 대한민국이 살기 위해 가야만 하는 길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다고 한다. 이런 판단에는 서강대 이상우 명예교수를 비롯해 국제정치의 엄혹한 현실을 강조하는 학자들의 이론이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공산전체주의’ 비판 등 이념 강조도 문재인 정권 5년간 이탈한 대한민국의 궤도를 되돌려 놓아야 한다는 사명감 차원이라는 설명이다. 윤 대통령의 그런 판단과 신념이 옳든 틀리든, 이를 지지하든 증오하든 그의 이런 특성을 모른 채 대응하면 오판이 될 것이라는게 지인들의 설명이다. 그러면 궁금증 ②번, 이념 드라이브는 중도층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보수 내부에서도 이념적 입지를 좁히면 중도층을 잃게 된다는 우려가 나온다.하지만 이 문제는 보다 정교하게 접근해야 한다. 이념적 스탠스라는 광의의 개념 속에서 정치·역사·체제의 정체성을 의미하는 이념과 그밖의 인물, 지역 지지 기반, 경제사회 정책 등의 주제들은 구분해서 분석해야 한다.선거가 다가오면 인물은 더 포용하고, 지역 기반도 넓히고, 경제사회 정책도 중간으로 가는게 유리한 건 맞다. 하지만 국가 정체성, 외교안보, 역사 관점 같은 정치적 이데올로기 사안에 대해 분명한 방향성을 제시하는 것이 선거에 불리하게 작용한다는 논리는 성립하지 않는다. 유불리의 관점 자체가 무의미하다. 이념·방향성 강화는 중도층 포섭과 층위가 다른 사안인 것이다. 윤 대통령 취임 직후 중도층이 대폭 이탈한 주된 이유는 보수 이념이 싫어서가 아니다. 자영업자와 서민들은 경제 상황이 계속 안 좋은데 이걸 헤쳐나갈 리더십에 대한 신뢰와 비전이 안 보여 지지를 철회했다.문재인 정권은 이런 난제가 닥치면 당장의 마약 같은 돈 풀기 처방을 내려 보수정권이 쌓아놓은 금고를 탕진했지만 윤 대통령은 그런 유혹을 이겨내고 있다. 선거 유불리를 떠나 긴축재정을 유지하겠다는 윤 대통령의 의지가 끝까지 지켜진다면 훗날 높게 평가받을 것이다. 지지율이 떨어진 또 하나 큰 요소는 2030세대의 이탈인데, 이 역시 이념적 스탠스 때문이 아니다. 대선 때는 세대연합으로 재미를 봐놓고 선거가 끝나자 마자 2030을 후순위로 밀어낸 탓이 크다.중도층과 무당층, 특히 2030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이념의 내용보다 구현 과정의 공정성이다. 그런 점에서 윤 대통령의 이념 드라이브는 문 정권의 대한민국 갈아엎기와 근본적으로 달라야 한다.역사 바로 잡기에서도 좌파와의 질적 차이를 보여줘야 한다. 좌파권력의 역사 장악은 이중잣대, 균형 상실로 요약된다. 최근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을 놓고 좌파에서 ‘부관참시’ 운운하지만 사실 현대사 부관참시는 좌파의 전유물이다.평생을 독립운동 지원과 민족자강에 헌신했던 민족지도자들이 그 시대를 살아보지도 않은 수십 년 후 좌파 인사들에 의해 ‘친일파’로 낙인찍혔다. 일제 강점기 말 불가항력으로 생긴 한두 가지 흠집을 파헤쳐 평생 쌓아온 공적을 싸그리 뒤집어버리는 수법이었다. 해방 직후 반민특위는 물론 동시대인 누구도 문제 삼지 않고 존경했던 지도자들을 느닷없이 친일파로 몰아붙여 현대사의 정통성을 소매치기했다. 그러면서 같은 흠집이 있어도 좌파계열 지도자라면 면죄부를 주는 이중잣대를 들이댔다. 우파는 이성과 합리성을 바탕으로 한다. 역사적 인물의 평가는 종합적으로 판단하고 진영에 관계없이 동일하고 공정한 잣대를 들이대야 한다.홍범도 장군이 자유시참변, 소련 공산당 입당 등의 흠결이 있다고 해도 뚜렷한 독립운동 족적은 그것대로 존경받고 기려져야 한다. 흉상 이전은 육사의 정체성과는 맞지 않으므로 독립기념관이라는 명예롭고 더 적절한 장소로 정중히 옮기는 차원 이상도 이하도 아니어야 한다. 좌파 일각에서는 집권세력 내 누군가가 홍범도 장군을 아예 독립운동사에서 퇴출시키고 흉상을 파기해버리자는 과격 언행을 해주기를 학수고대하고 있을 것이다. 역사바로잡기를 친일로 몰아가기 위해서다.족보를 멋대로 바꾸듯 국군 창설의 역사와 정신마저 분칠하려고 육사 내 흉상을 고집한 문 전 대통령의 이념적 아집이 결과적으로 홍범도 장군을 욕보인 것이다.최근 박민식 보훈부장관과 문 전 대통령 간의 소송전으로 비화된 문재인 부친 논란도 마찬가지다. 박 장관의 취지는 문 전 대통령 부친이든 백선엽 장군이든 누구든 일제하에서 태어나 그 체제를 절대적 숙명적 조건으로 여기며 자란 20대 초반 청년들이 그 체제에서 공무원이나 군인의 진로를 택한 것을 무조건 친일행위로 매도해선 안된다는 것이었음을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만약 윤 대통령 부친이 일제시대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면 좌파진영은 친일파 시비를 걸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파는 그래선 안된다. ‘너희가 그러니 우리도 그런다’가 아니라. ‘너희가 권력을 쥐었을 때 자행한 그런 행태를 바로 잡겠다’가 되어야 한다.역사뿐만 아니라 사회의 거의 모든 분야에 문 정권이 내지른 배설물이 놓여 있다. ‘비정상의 정상화’라는 목적지를 향한 길은 평탄대로가 아니다. 벼랑길을 운전하는 신중함과 세밀함, 균형감각을 대통령실과 내각, 여당 모두 갖춰야 한다.윤 대통령은 옳다고 생각하면 밀어붙이는 직진형이라고 한다. 사명감과 뚜렷한 방향성도 중시한다. 그런 확신 사명감은 자칫 불통을 낳을 수도 있다. 요즘 윤 대통령이 사석에서 자주 인용하는 골프 용어로 비유하면, 문재인 정권이 내지른 악성 훅 OB(공이 왼쪽으로 심하게 휘어 경기장 밖으로 나가버리는 것)를 고치려다 너무 힘을 주면 슬라이스(오른쪽으로 심하게 휘는 것)가 난다. 유연함과 균형감을 잃지 않아야 공이 곧게 간다. 지도자의 유연함은 허리나 관절이 아닌 귀에 달려 있다.이기홍 대기자 sechepa@donga.com}2023-09-14 23:51
[이기홍 칼럼]‘묻지마 몰표’가 있는 한 괴담정치는 사라지지 않는다‘주홍글씨’로 유명한 19세기 미국 작가 너새니얼 호손의 소설 ‘일곱 박공의 집’을 읽었다.17~19세기 미 동부 매사추세츠주가 무대다. 한 성실한 농부가 샘물이 솟는 땅을 개간했는데 지역 실권자인 핀천 대령이 빼앗으려고 농부를 마법사로 몰아세운다. 성직자 판사 등 지도층 인사들과 군중도 마법사 선동에 휩쓸리고 결국 농부는 다른 ‘마녀 용의자’들과 함께 처형당한다. 비단 소설 속 세계만이 아니다. 인류 역사 어느 시대에나 정치적·재물적 이익을 위해 괴담과 유언비어를 퍼뜨리는 세력은 있었다. 중세의 마녀사냥, ‘시온 의정서’라는 가짜문서를 이용해 유대인 혐오를 부추긴 히틀러, 백 년 전 오늘 수많은 조선인을 학살한 간토대지진의 유언비어 유포자들…. 숱한 무고한 희생자를 양산한 그 선동의 주역들 가운데 훗날 반성하고 사과하고 합당한 죄과를 받은 이들이 얼마나 될까. 선동에 휩쓸려 흥분하고 울부짖었던 군중들 가운데 부끄러워하고 반성한 이들은 얼마나 될까. 우리 사회에서는 지난 십수 년간 괴담 선동 세력이 면면도 바뀌지 않은 채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이젠 야당 대표가 아예 선봉에 선다. 이재명 대표는 그제 전남 무안에서 현장 최고위원회를 열고 “어민들은 바다에 나가는 게 공동묘지 가는 것 같다고 말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윤석열 대통령이 만든 현상”이라고 주장했다. 이 대표가 자신의 이름을 윤석열로 잘못 발음했나 싶었다. 어민이 말한 공동묘지가 ‘오염된 바다’를 뜻했다면 멀쩡한 우리 바다를 공동묘지처럼 죽은 바다로 인식되게 만든 장본인은 이 대표 본인이다. 국내외 과학자 99%와 국제기구, 미국 유럽 등 모든 선진세계가 안전하다고 하는데도 민주당은 ‘세슘 우럭’ 운운하며 우리 바다를 방사능 범벅이 될 바다로 몰아갔다. 이 대표는 ‘기준치 180배 세슘 우럭’의 실체를 정말로 몰랐을까. 그 우럭은 후쿠시마 인근 바다에서 정상적으로 자라다 어선에 잡힌 물고기가 아니다. 도쿄전력이 정기 모니터링을 위해 원전 바로 앞, 방파제로 막힌 내항에 쳐놓은 그물 안의 물고기다. ALPS로 처리된 바닷물 속이 아니라 12년 전 흘러나온 오염물질이 침전해 있는 가둬진 오염수에서 태어나 자란 물고기인 것이다. 어민이 말한 공동묘지가 ‘무너지는 수산업’, ‘위기에 빠진 어민생계’를 뜻했다면 그 묘지를 만든 주된 책임 역시 일본 못잖게 이 대표와 좌파단체들에 있다. 우리 바다를 어떤 수산물도 먹어서는 안 될 기피 대상으로 만든 불신조장 선동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윤 대통령이 “1+1을 100이라 주장하는 선동세력”을 비판한데 대해 “국민 80%를 셈도 못하는 미개인 취급한다”고 비난했다. 하지만 대통령이 지적한 ‘1+1을 100이라 주장하는 세력’은 국민 전체가 아니라 ‘과학을 우롱하고 허위사실로 공포를 주입시키려는 소수의 세력들’을 지칭한다는 것은 문맥상 누구나 알 수 있다. 일본의 방류를 찜찜해하고 우려하는 국민의 마음과, 우리 바다가 핵물질과 세슘생선으로 뒤덮일 것이라는 괴담 유포 행위는 전혀 별개의 문제다. 먼 미래에 대해 막연한 불안감을 가진 국민을 고의적으로 괴담을 유포하는 자신들과 동일시하는 것은 선동행각을 물타기 하려는 의도다. 이 대표는 “내가 대통령이라면 이렇게 저지할 수 있다”고 시나리오를 제시해 보라. 현실적으로 방류를 저지할 방법은 전쟁밖에 없다. 툭하면 유엔 국제사법재판소(ICJ)를 말하는데 ICJ 재판은 분쟁 당사국 양측이 모두 동의해야 가능하다는 건 기초적 상식이다. 설령 일본이 회부에 동의하고 ICJ에서 방류 중지 판결이 나와도 이를 이행할 강제력은 군사력 동원 외엔 없다. 전쟁외의 유일한 방법은 일본과는 사실상 단교 상태로 대립하면서 미국 등 서방국의 방류 용인 입장을 바꾸는 전방위 외교전을 펼치는 것인데, 한미일 공조는 다 무너지고 한국은 국제사회에서 IAEA라는 국제기구의 공인된 검증 결과조차 무시하는 우물안개구리, 즉 중국 러시아 북한과 함께 4인방으로 소외될 것이다. 이 대표가 대통령이라면 방류 저지는 이루지도 못하고 외교적으로는 막대한 비용을 치러야하는 그런 선택을 할 것인가. 국가는 국제 사회에서 감당해야할 의무가 있다. 국제적으로 공인된 것을 부정하면 언제든지 국제적으로 왕따가 될 수 있다. ‘국민 80% 반대’론에도 맹점이 있다. 유승민 전 의원은 “윤 대통령이 그렇게 당당하면 지금 당장 국민 앞에 서서 '나는 일본의 오염수 방류에 적극 찬성한다. 반대하는 미개한 국민과 맞서 싸울 것이다'라고 제대로 선전포고를 하라”고 비난했는데 사안의 성격을 왜곡한 주장이다. 어떻게 이 문제가 찬반의 이슈가 될 수 있는가. 일본이 오염수를 방류하는 게 우리에게 득이 될 게 뭐가 있다고 찬성할 사람이 있겠는가. 복도식 아파트에서 한 집이 커다란 맹견을 키우려 한다고 예를 들자. 나머지 주민들에게 찬반을 물어보면 누가 찬성하겠는가. 하지만 입마개를 철저히 채우고, 국가 공인훈련소에서 훈련 코스를 마쳤다고 하고,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이용하겠다고 약속하는데 이웃들이 개 키우는 걸 강제로 저지할 합법적 수단은 없다. 이건 찬반이 아니라, 단체로 몰려가서 그 집 현관에 대못을 박을 것인지, 아니면 입마개·계단 이용 같은 약속이 지켜지는지 감시하면서 지켜볼 것인지의 선택 문제인 것이다. 그런데 유독 한 주민은 “이제 맹견에 물려 아이들이 다 병원에 실려 가고, 개가 흘리는 침으로 복도고 아파트 앞길이고 다 광견병 바이러스 천지가 될 것”이라고 주장하며 자기 아파트를 사람 살지 못할 곳으로 몰아간다.좁은 아파트에서 맹견을 키우겠다는 결정에 다수 주민이 우려를 갖는 것과 아파트 천지가 광견병 천국이 될 것이라는 선동은 전혀 차원이 다른 문제다. 즉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문제는 찬반이 아니라, 단교나 전쟁 같은 수단을 불사하고라도 저지할 것인지, 국제기구의 감시와 약속이 지켜지는 것을 전제로 용인하고 감시할 것인지 선택해야하는 사안인 것이다. 이 대표는 자신의 언행이 선동 괴담이 아니라 자신한다면 국회에서 양측 과학자들을 동원해 생방송으로 끝장토론을 벌이도록 해보라. 일주일이고 이 주일이고 토론하고 스크립트를 매일 배포해 국민들이 판단하게 하라. 민주당은 IAEA를 말로만 일본 앞잡이라 낙인찍지 말고 IAEA 본부를 찾아가 전문가들과 끝장 토론을 벌여 IAEA의 공정성이나 객관성 전문성에 진짜 문제가 있었는지 확인해 보라. ‘일곱 박공의 집’ 소설 속 핀천 대령은 마녀선동으로 빼앗은 땅에 거대한 집을 짓고 축하 파티를 하는 날 갑자기 피를 토하며 죽는다. 그의 후손들도 유전병처럼 같은 증세로 급사하고, 결국 억울하게 마법사로 몰려 죽은 농부의 후손이 땅과 조상의 명예를 되찾게 된다. 전형적인 권선징악이다. 현대 이전까지는 신의섭리에 따라 진실이 드러나고 선동자는 벌을 받는다는 정의의 승리, 권선징악의 믿음이 있었다. 현대에는 그 역할을 과학과 투표가 맡았다. 과학이 진실을 드러내고 괴담 선동자들은 선거에서 심판받는 것이다. 하지만 그건 일부 선진국의 경우일 뿐이다. 선진국에선 괴담을 퍼뜨린 정치인이나 언론은 곧 몰락하지만 우리는 다르다. 아무리 괴담과 선동이 허위로 드러나도 몰표를 주는 묻지 마 지지 집단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묻지 마 몰표는 지역이나 극단적 이념을 기반으로 한다.허위로 드러나도 부끄러워 할 필요 없고, 팥으로 메주를 쒔다고 해도 지지해 주니까 더 과격하고 더 선동적으로 치닫는다. 괴담 선동 정치를 번식시키는 이런 토양을 바꿀 뾰족한 해법도 보이지 않는 게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이기홍 대기자 sechepa@donga.com}2023-09-01 00:06
[이기홍 칼럼]尹의 “공산전체주의” 직격… 정반합 이룰 균형추 바로잡기 돼야“공산전체주의를 맹종하는 반국가세력”을 질타한 윤석열 대통령의 광복절 기념사에 대해 예상대로 좌파 진영이 발끈하고 나섰다. 우파 내 반(反)윤석열 비(非)윤석열 인사들도 비판에 가세하고 있다.비판을 요약하면 세 가지 정도다. 시대착오적 이념몰이이며, 국민통합에 어긋나며, 광복절 기념사로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비판이야말로 구시대적 고정관념의 산물일 수 있다.권위주의 정권 시절 용공 조작 논란을 하도 많이 겪은 탓에 우리 사회에서 ‘공산’이라는 표현은 레드콤플렉스, 적화통일을 떠올리게 하는 철 지난 “늑대” 외침처럼 들린다. 북한이 지구상 가장 실패한 파탄 일보 직전의 깡통국가 상태이고, 사회주의 몰락으로 인해 진짜 공산주의라 할 수 있는 나라는 남아 있지 않은 것도 ‘공산’에 심드렁하게 만든다.하지만 이젠 저들의 해악을 다른 패러다임으로 봐야 한다. 공산주의와 전체주의를 질타하고 경계하는 것은 그것이 우리 체제를 점령할 수 있을 만큼의 막강한 실체여서가 아니라, 대한민국이 가야할 방향의 대척점에서 끊임없이 우리의 진로를 발목 잡고 방해하는 세력의 뿌리이기 때문이다.우리의 지향점은 미국이 주도하고 유럽과 일본 호주 등 대다수 선진국이 참여하고 있는 자유민주주의 글로벌 체제에서 중추 국가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 글로벌 체제의 대척점이 중국 러시아 북한이며, 공산전체주의는 거칠지만 이들을 통칭하는 표현 중 하나로 보인다. 비록 우리 사회에서 절대 숫자는 많지 않겠지만 그들이 약화시키고 끊으려 집요하게 시도하는 철로는 대한민국의 번영과 안위에 중요한 핵심 고리들이다. 그 선로들을 끊기 위해 그들은 온갖 이슈에서 끊임없이 사회적 갈등을 증폭시키고, 근현대사의 진실을 뒤집고, 한미동맹의 끈을 갉아먹고, 한미일 협력을 기본 바탕으로 하는 미국의 동아시아 안보구도를 어그러뜨리려 집요하게 시도한다. “대통령은 국민통합의 중심인데 반국가세력을 강조함으로써 국민을 갈라치기 했다”는 비판도 그럴듯하지만 허무한 비난이다. 과거 보수 대통령들은 국민통합을 의식해 물에 물탄 듯 술에 술탄 듯 한 메시지를 내놓았지만 좌파 아무도 통합 노력을 평가하고 호응하지 않았다. 게도 구럭도 다 놓친 것이다. 좌파진영은 자기들 정권 시절엔 통합은 관심사 밖이었다. “촛불혁명” “주류세력교체” “기득권 대청산”을 외치고, 조국 장관 편을 들며 5년 내내 국민을 갈라치기하는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좌파 누구도 국민통합도 염두에 둬야 한다며 만류하지 않았다.시대 상황 자체도 과거 이명박 박근혜 정부 때와 다르다. 당시는 국제정세가 지금보다 훨씬 유연하고 미국 싱글 슈퍼파워가 지속되던 시기였다. 그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도전적인 국제 정세 속에서 갈 길을 명확히 국민에게 제시하고 훼방 세력의 실체를 밝히는 것은 불가피하다. 대통령의 강경한 대(對)좌파 공세에 대해 민주당이 당장은 발끈하지만 결국에는 야당에도 보약이 될 수 있다. 민주당 내 합리적인 사람들은 대통령이 아무런 실체 없이 반국가세력의 존재를 언급했을 리는 없음을 알 것이다. 반발하면서도 극좌세력과의 연결고리를 더 경계하고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야권 내에서 합리적 진보와 극좌를 구별해서 배제하려는 움직임이 커질 것이다. 극좌세력의 실체를 모른 채 기웃대던 이들의 추가 편입도 줄어 극좌세력의 세가 위축될 것이다. 결과적으로는 야당이 더 경쟁력 있는 세력으로 자기정비를 할 수 있는 것이다.물론 우리 사회에서 널뛰기의 진폭이 너무 큰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괘종시계의 펜듈럼(시계추)이 매사에 양쪽 극단을 오간다. 특히 이념적 갈등은 문 정권이 5년간 추를 왼쪽 극단으로까지 끌어당기면서 극도로 악화됐다. 윤석열 정권이 펜듈럼을 중앙 균형점으로 바로 안착시켜주면 좋겠지만 그건 현실에서 불가능한 이상론이다. 극단으로 기운 추를 균형점으로 되돌리기 위해서는 오른쪽으로 강하게 끌어당길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윤 대통령의 특징은 거침없는 직진이다. 한일 한미 관계가 그랬고, 민노총 사교육 보조금 등등 현안마다 ‘건폭’ ‘카르텔’ 등 민낯의 거친 표현으로 강경 대응을 주도했다. 검사 시절 국정원 댓글 사건에서도 목격됐듯 그는 특정 세력과 맞설 때 에너지가 솟구치는 스타일로 보인다. 이번에도 자유민주주의라는 국가정체성을 확고히 하겠다는 차원에서 여기 도전하는 ‘극좌파 나부랭이들’과 한판 붙어 승부를 내겠다는 결기가 읽힌다. 다른 보수 대통령들과 달리 일단 붙으면 결론을 낼 가능성이 크다. 그런 결기로 추를 오른쪽으로 확 당겼는데 진행 과정에서 과불급(過不及)과 또 다른 극단으로의 편향은 특히 더 경계해야 한다. 그래야 펜듈럼이 다시 왼쪽으로 널뛰기하지 않고 균형점에 서서히 안착할 수 있다.이기홍 대기자 sechepa@donga.com}2023-08-18 00:06
[이기홍 칼럼]중국의 오만을 다스리는 방법무더위를 피해 이른 아침 오른 북한산. 대남문에서 바라보는 백운대의 웅자(雄姿)는 수십 수백 번을 마주해도 장엄하다. 그런데 산성길을 걷다 보면 시골집 담벼락처럼 낮은 성벽이 다소 의아스럽다. 언젠가 읽은 글이 생각났다.“조선은 명(明)과 청(淸)으로부터 끊임없이 군사적 트집에 시달렸다. 심지어 왜 북쪽을 보고 성을 쌓았느냐, 성의 높이가 왜 이리 높으냐며 핍박해 대는 바람에 도로 허물거나 낮춰야 했다.”(도서출판 동문선 신성대 대표의 글)실제로 병자호란 때 청나라는 조선의 축성을 금지시켰다. 이후 숙종 36년 해적 피해를 입은 청이 방비를 강화하라는 외교문서를 보내옴에 따라 축성 금지가 사실상 해제됐고 숙종 37년 북한산성을 수축(修築)했다고 문헌은 전한다.산을 내려와 식당에서 뉴스를 검색하니 퓨리서치센터가 24개국 3만8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중국에 대한 인식 조사 결과가 떴다.중국에 대해 부정적 견해를 가진 성인 비율이 일본 호주 87%를 비롯해 스웨덴(85%) 미국(83%) 캐나다(79%) 독일(76%) 등 모든 선진국에서 압도적이었다.한국에선 77%였다. 2015년 37%→ 2019년 63%→ 2022년 80%로 최근 수년간 급격히 부정적 인식이 높아진 것이다.중국에 대한 부정적 인식 비율이 낮아진 국가는 인도네시아 케냐 나이지리아로, 중국이 대규모로 돈을 쏟아 부은 나라들 뿐이었다.중국은 어쩌다 이렇게 세계의 밉상으로 전락한 걸까.31년전 한중수교 직후의 한 장면이 기억난다. 한국에 부임한 초대 주한 중국대사 장팅옌(張庭延)이 기자 간담회를 가졌다. 당시 동아일보가 석간 때여서 기사 마감을 하느라 필자는 간담회에 다소 늦게 도착했는데 대사는 간담회 시작을 늦춘 채 기다리고 있었다. 늦어서 미안하다고 했더니 장 대사는 친절하고 공손한 태도로 “동아일보 없이는 간담회를 할 수 없죠”라며 반겼다.당시 장면을 최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불러놓고 겁박성 발언을 서슴지 않은 싱하이밍(邢海明)대사와 비교해 본다. 수교 이후 중국의 태도는 갈수록 무례해져 8대인 현 싱 대사에 이르기까지 재임중 내정간섭성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키지 않은 이가 드물 정도다.물론 대사들의 오만한 언행은 반중정서라는 거대한 둑이 쌓이는데 흙 한삽 추가한 것에 불과할 것이다.중국 당국의 횡포에 시달리다 생산설비도 챙기지 못한 채 야반도주해야 했던 기업인들의 한탄이 쌓이고, 터무니없이 가로 채려는 우리 역사와 문화유산 항목들이 늘어가고, 서울에서 재한 중국인들이 중국인권을 외치는 한국인들을 경찰 제지에 아랑곳없이 집단폭행(2008년 서울올림픽공원 폭행사태)하고, 대통령을 수행한 기자들이 중국 경호원들에 폭행당하는(2017년 문재인 대통령 방중 당시) 등 상대를 얼마나 쉽게 여기면 저러는가 싶은 일들이 강 하구에 퇴적물이 하나둘 쌓여 둑을 이루듯 지금의 반중정서를 형성한 것이다.중국은 교장 선생님 앞에 불려온 학생처럼 공손하게 앉아 경청하던 이재명 대표의 태도를 한국 국민의 보편적 정서로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미국 일본에 대해선 막말 폭언을 서슴지 않는 민주당과 좌파 활동가들이 중국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 이유는 △무의식 속 사대주의, 소중화(小中華)주의의 잔재 △사회주의 종주국에 대한 심정적 유대감과 종속감 △현실을 도외시한 평화 우선 가치관의 영향일 것이다. 중국과 갈등하면 우리가 입는 피해가 크니까 수모를 당해도 갈등 없는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는 인식이다.중국의 심리전에 포섭된 이들이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중국은 최근 수년간 미국 상원의원, 영국 노동당 의원, 호주 지방선거 등 세계 곳곳에서 정치인 포섭을 위해 뇌물 선거자금 지원 등의 방법을 동원하다 적발됐다.더 실망스러운 것은 지식인 집단의 침묵이다. 과거 수년간 중국이 그 어떤 오만한 행태를 보여도 나서서 공개적으로 질타한 중국 분야 관련 교수나 전문가는 손으로 꼽을 정도다.이는 중국이 오랫동안 쌓아온 친중파 육성 전술의 산물일 수 있다. 중국은 그동안 수많은 교수 전문가 등을 세미나 등 명목으로 초청해 선물 보따리를 안기고, 숱한 연구 용역 프로젝트를 발주했다.중국의 오만은 한국이 원칙에 입각한 외교를 못한 탓도 크다. 임시방편적으로 당장의 피해 회피를 위해 우호적인 협조를 기대하고 중국의 비위를 맞춰 줬지만 지금의 중국은 보은과 신뢰라는 동양적 가치관을 중시했던 옛 나라가 아니라 공산당이 지배하는 국가다.미국의 국가안보전략(NSS)보고서가 미국의 타겟이 중국이 아니라 중국공산당(CCP)이라고 명시하고 있듯이 우리도 지금 상대해야하는 공산당 정권의 특성을 명철하게 파악해야 한다.중국의 태도를 바꾸기 위해서는 우리가 먼저 바뀌어야 한다. 정부와 민간 모두 국제규범 기준에 맞게 품위 있으면서도 당당하게 비판하고 반박해야 한다.윤석열 정부가 내놓은 외국인 건강보험 제도 개선안, 지방선거 투표권 개선안은 합리적이며, 국제 기준과 상호주의 원칙에 부합한다. 사사건건 다 반대하는 민주당과 좌파언론들은 당장의 중국 이익 옹호가 오히려 국민의 혐중 정서를 강화시켜 한중관계를 더 악화시킬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6·25전쟁 왜곡도 시정을 요구해야 한다. 중국인들은 6·25를 김일성의 남침전쟁이 아니라 38도선을 넘어 침공해온 미 제국주의 세력을 인민해방군이 격퇴한 대미항쟁으로 교육받고 있다. 지구상 인류 중 13억 명이 가해자와 피해자를 뒤바꿔 알고 있는 것이다.먼 장래 통일 후 논의될 문제이긴 하지만 1907년 청일 간 간도협약으로 중국 땅이 되어버린 간도 문제에 대한 연구도 축적해야 한다.중국 대외정책의 핵심은 경제적 강압조치를 외교 수단으로 삼는 것이다. 미리 입법 차원에서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 중국은 지난달부터 방첩법을 시행하고 있으나 우리는 기술 탈취 행위를 적극적으로 방어할 법체계가 미비하다. 중국 기업이 한국 업체를 인수합병(M&A)해 한국 기업으로 탈바꿈한 뒤 미국과 유럽연합(EU) 수출을 노리거나, 핵심 기술을 탈취해 가는 경우도 빈발할 수 있다. 이에 대비해 미국은 2018년 FIRRMA(Foreign Investment Risk Review Modernization Act·외국인 투자 위험성 검토 현대화법)을 만들어 장관급 위원회가 외국인 투자를 심사한다. 일본도 이런 기구가 있다. 미국은 미국 자본의 해외 투자를 심사하는 법안까지 제안돼 있는 상태다. 일본은 2010년 희토류 수출금지 등 중국의 무역보복을 당한 뒤 2011년에 총리실에 장관급 경제안보 부서를 만들고 관련 부처들의 조직을 강화했다. 우리 기업들이 당하는 불공정한 피해에 대해서도 당당히 얘기해야 한다. 성주 골프장을 맞교환 방식으로 사드 기지 부지로 제공했다는 이유로 롯데는 무자비한 보복을 당했다. 112개에 달했던 마트는 물론 백화점 호텔 복합단지 사업 등을 접어야 했다. 만약 미국이나 일본에 진출한 한국기업이 현지에서 정치적 이유로 이런 보복을 당했다면 국내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더 어이없는 것은 문재인 정부의 눈치 보기였다. 문 대통령은 2017년 12월 대규모 경제대표단을 이끌고 방중하면서 롯데는 제외시켰고, 2018년 2월 방중한 김동연 당시 경제부총리는 12개 중국진출 기업 대표를 불러 간담회를 하면서도 롯데는 안 불렀다.중소기업인들이 당한 피해는 더 참담하다. 손실을 견디다 못해 사업을 청산하려면 중국 당국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승인 절차를 의도적으로 지연시킨다. 그 기간에도 인건비는 계속 지불해야 한다. 망해도 그냥 망하게 놔두지 않고 골병들여 죽이는 식이다. 윤석열 정부는 방향은 옳게 잡았지만 당장의 경제적 피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질때마다 흔들릴 기미가 보인다. 분명한 원칙을 세워야 한다.최근 정부 일각에선 중국이 싱 대사를 교체하고, 한국도 중국 체면을 위해 주중 대사를 교체하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고 한다. 설령 아이디어 차원이라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싱 대사는 투명인간 취급하면 된다. 대사로서 아무런 역할도 못한 채 한국 내 중국의 신뢰자본만 갉아먹는 시간이 길어지면 중국 정부 스스로 조치를 취할 것이다.이제 우리가 바뀌어야 한다. 오만하고 힘자랑을 일삼는 국가 옆 국민일수록 주눅 들면 안 된다. 따질 건 따지면서 자존감을 지켜야 한다. 성벽 높이까지 간섭하고 군림해도 감내해야 했던 변방의 약소국이 아니다. 기울어진 균형추를 당당하고 냉정하게 균형으로 맞춰가야 한다.이기홍 대기자 sechepa@donga.com}2023-08-04 00:09
[이기홍 칼럼]원희룡의 카운터펀치… 괴담세력과의 전쟁 분기점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양평고속도로 백지화를 발표하자 무책임하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우파 성향 언론과 학자들도 주민만 피해 보게 됐다고 비판했다. 필자도 첫 느낌은 비슷했다. 하지만 곰곰 따져봤다. 정말 이 발표가 양평 주민과 장래 이 도로를 이용할 수많은 교통수요자들에게 피해를 주는 결과가 될까. 더 나은 대안이 있었을까. 수년째 폭력을 휘두르는 남편을 견디다 못해 아내가 집을 나갔다 치자. “아이 혼자 두고 집을 나간 무책임한 엄마”라고 비난을 퍼붓는 게 온당할까? 만약 원 장관이 “의혹이 제기됐으니 원안(양서면 분기점)대로 하겠다”고 했으면 더불어민주당과 좌파는 “국정농단을 막아냈다”며 투쟁 승리사로 기록하고, 양평주민에게는 진출입로(IC) 없는 도로가 주어질 것이다. 원 장관이 수정안(강상면 분기점)을 추진하겠다고 했으면 좌파는 “희대의 국정농단” “탄핵”을 외칠 것이다. 공사장 곳곳에서 시위가 벌어지고 완공 후 수년이 지나도 도로에 ‘김건희로드’ 낙서가 생길 것이다. 물론 백지화 결정은 토론과 승복, 이성 과학 팩트가 존중되는 정상적인 사회에서라면 있을 수 없는 선택이다. 그러나 슬프고 어이없지만 지금 우리 사회는 그런 상황이 아니다. 학자나 언론인들은 야당을 찾아가 설명하고 설득해야 했다고 양비론을 펴지만, 실제 아무리 그런 노력을 한들 야당이 의혹 제기를 철회하고 정상적인 추진 여건이 회복될까. 아무리 설명하고 팩트를 제시해도 이재명 대표가 “납득이 된다”며 ‘김건희 로드’ 낙인찍기를 거둬들일 가능성이 1%라도 있다고 생각할 사람은 민주당 내에도 없을 것이다. 우리 사회를 토론·설득이 불가능한 비정상 사회로 몰아간 책임의 99%는 민주당과 좌파진영 내 괴담세력에 있다. “궁극적으로 공론의 장에서 괴담과 가짜뉴스는 걸러지고 진실과 정의가 우뚝설 것”이라는 당위론은 수백 수천년 긴 역사의 눈으로는 맞는 얘기겠지만 당대를 사는 사람들은 고스란히 그 폐해에 노출된 채 일생을 속은 채 살아가게 된다. 괴담 세력의 악의와 간교함을 보면서도 정부의 대화 노력 부족을 탓하며 책임의 절반을 정부에 돌리는 건 무책임한 양비론일 뿐이다. 원 장관의 대응은 우파에선 찾아보기 힘들었던 충격 요법이다. 그동안 우파 진영은 괴담 공세가 시작되면 손놓고 있다가 뒤늦게 해명하고 어정쩡하게 타협을 시도하거나, 술대접하며 달래고, 질질 끌려가다 명예훼손으로 고발하고 나중에 흐지부지되는 경로를 되풀이해 왔다. 좌파는 괴담 효용을 100% 거둔 뒤였다. 박정희 대통령은 국책사업 반대론자들에게 “내 무덤에 침을 뱉으라”고 했다. 그런 소신이 없었다면 경부고속도로는 구불구불 뱀 노선이 됐을 것이다. 원 장관은 자신의 정치생명을 걸겠다고 했다. 보수가 살기 위해서는 괴담 세력에 맞서 자신을 다 던지는 정치인, 장관들이 계속 나와야 한다. 원 장관의 백지화 발표는 결과적으로는 더 신속한 진행의 씨앗이 될 수 있다. 원 장관은 이제 다음 펀치를 내야 한다. 그것은 민주당에 노선 선택권을 줘버리는 것이다. 너무 오래 시일을 끌거나 지나친 공사비 증액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민주당이 양평군민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해 입장을 정해 오면 정부는 그걸 존중해 즉각 사업을 재개하겠다고 제안하는 것이다. 원 장관의 백지화 선언 이후 많은 팩트가 쏟아지면서 이제 전 국민이 전문가가 됐다.특히 도로 타당성 조사 용역을 맡았던 경동엔지니어링(교통 분석)과 동해종합기술공사(도로)의 지난 13일 브리핑은 논리와 합리성 모든 면에서 모두의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 전후관계를 따져보면 야당이 제기한 의혹은 근본적으로 허점이 많았다. 노선 수정안은 지난해 1월 문재인 정부가 선정한 이들 용역업체가 지난해 5월 19일 국토부에 제출한 결론이다. 당시는 윤 정권이 출범한지 9일, 원 장관이 취임한지 사흘밖에 안 된 시점이었다. 신뢰도와 실력을 인정받는 두 전문 업체의 의견이 정치적으로 오염됐을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왜 노선 변경을 제안했는지에 대한 설명도 누구나 수긍할 수 있을 만큼 합리적이었다. 그럼에도 만약 선택권을 위임받은 민주당이 오직 “김건희로드 저지”라는 프로파간다에 집착해 원안을 고수하면 주민들의 지탄을 받게 되고, 국민에겐 “정치적 계산을 국민의 편의보다 앞세운 집단”으로 낙인찍힐 것이다. 민주당이 뒤늦게 픽업한, ‘원안에 IC만 추가하자’는 방안을 고집하면 도로가 기형적으로 휘고, 자연환경과 문화재 훼손 등 숱한 문제점을 야기하는 무책임한 선택이라는 비판을 받을 위험이 크다. 그렇다고 강상면 수정안을 택하자니 김건희로드 주장을 스스로 철회하는 것에 해당한다. 딜레마에 처할 수밖에 없다. 물론 야당에 선택권을 주는 것은 정상적인 정부 운영 원칙에 어긋나는 방법이다. 하지만 도로계획이 차질을 빚든, 수산업이 붕괴하든 개의치 않고 괴담을 유포하는 세력의 발목잡기에서 벗어나려면 특단의 방법을 동원해야 할 필요도 있다. 괴담세력의 수법은 항상 비슷하다. 더탐사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종점이라고 표현했다. 이해찬 전 대표는 “도로 노선을 변경해 자기네 땅 사 놓은 데로 지나가게 한다. 역대 누구도 그렇게 내놓고 해먹지는 않았다”고 했다. 이들은 진출입이 가능한 IC가 아니라 분기점(JCT)이며, 보유 토지 대부분은 1987년 상속받은 선산이라는 점은 알리지 않는다. 선진국에서 괴담을 퍼뜨린 정치인이나 언론은 사회에서 매장되지만 한국에서는 궤변 논리로 퇴로를 만들며 승승장구해 왔다. 하지만 양평은 다르다. 민주당은 돌아나가기 힘든 진격을 했다. 자기들 정부 때 발주한 용역 결과를 국정농단이라고 비난한 건 자기 눈을 찌르는 자승자박이다. 양평고속도로 분기점은 수십 년째 온 나라를 수렁에 빠뜨려온 괴담세력과의 게릴라전에서 대반격의 분기점이 될 수 있다. 만약 민주당이 의혹 제기를 철회하고 도로 건설이 정상적으로 재개될 경우 윤 대통령 처가는 상속받은 선산 이외에 최근 수년간 추가 매입한 도로 주변 토지가 있다면 국가나 공익재단에 기부하기를 바란다. 법적으로 떳떳하고 정상적인 과정으로 일이 진행됐다고 해도 그게 대통령 가족으로서 명예로운 처신이다.이기홍 대기자 sechepa@donga.com}2023-07-20 23:48
[이기홍 칼럼]나라 기둥 흔들고 ‘먹튀’한 문재인 정권… 통치행위 면피 안 된다윤석열 대통령의 “반(反)국가 세력” 발언에 문재인 전 대통령이 발끈하고 나섰다.“냉전적 사고” 운운하면서 그가 펼친 주장의 요지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 남북관계가 발전했으며 (그 결과물로) 국민소득이 큰 폭으로 증대했다”는 것이다.사실관계를 호도한 주장이다. 북한이 파키스탄 핵개발의 아버지인 압둘 카디르 칸 박사의 도움을 받아 우라늄 핵무기 개발에 본격 나선 것은 김대중 정부 때인 1990년대 후반이었다. 첫 핵실험은 노무현 정부 때인 2006년이었으며, ‘핵무력 고도화’에 박차를 가한 것은 문재인 정부 때였다. “진보정부 때 대북정책의 산물로 국민소득이 큰 폭으로 증대하고 보수정부 때는 평화가 위태로워져 국민소득까지 줄었다”는 것은 통계마저 왜곡한 주장이다. 문 전대통령이 근거로 삼은 자료는 2019년 좌파진영에 돌았던 SNS 게시물로 추정된다. 환율 변수를 무시한 채 달러화를 기준으로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때 김영삼 이명박 박근혜 때보다 1인당 국민소득이 4.5배 더 성장했다”는 황당한 내용을 담고 있다. 경제성장률은 해당 국가의 통화를 기준으로 해야 한다는 기본도 무시한 것이다.구글 검색에 ‘국민소득 추이’만 입력해봐도 진실을 금방 알수 있다. 한국은행과 통계청의 1인당 실질 국민총소득 통계를 보면 지난 30년간 우리 경제는 좌우 정권별 구분이 무의미할 정도로 고르게 성장했다(https://www.index.go.kr/unify/idx-info.do?idxCd=4221).전년대비 1인당 실질 국민총소득 증가율을 보면 △김영삼 정부 때인 1993년~97년 각각 6.1%. 8.3%, 7.7%, 5.6%, 3.1% △김대중 정부 때인 1998년~2002년 마이너스 8.3%, 9.9%, 5.6%, 3.2%, 8.0% △노무현 정부는 2.1%, 3.9%, 2.2%, 3.4%, 5.2%, △이명박 정부는 마이너스 0.4%, 2.0%, 6.7%,, 0.8%, 2.4% △박근혜정부는 3.4%, 2.8%, 5.8% 4.0%, 3.0% △문재인 정부는 1.1%, 0.0%, 마이너스 0.1%, 3.7%, 마이너스 0.5%를 기록했다. ‘임기 마지막 해 1인당 실질 국민총소득이 취임 직전 연도에 비해 얼마나 늘었나’를 계산해 보면 김영삼 정부는 478만 원, 김대중 344만 원(외환위기를 고려해 임기 첫해를 기점으로 하면 498만 원), 노무현 395만 원, 이명박 308만 원이 늘었다. 박근혜 정부는 2017년을 임기 마지막해로 계산하면 593만 원, 2016년을 마지막해로 계산하면 491만 원 늘었고, 문재인 정부는 2022년 대비 2017년을 비교하면 149만 원, 2016년을 비교대상으로 하면 251만 원이 늘었다.국제 경제 상황 등 다양한 조건을 도외시한 채 남북관계와 소득증가율을 인과관계로 놓은 억지도 전직 대통령이라고는 믿기 힘든 수준이지만, 통계의 자의적 왜곡에 깔린 음험함이 더 기막히다. 통계가 마음에 안 든다고 통계청장을 경질했던 습성의 발로일 것이다. 물론 ‘반국가 세력’이라는 표현이 직설적이고 자극적인 어휘였음은 사실이다. 한 중도보수 성향 학자는 “‘대통령은 여야 모두를 아울러 국민화합으로 끌고 가야하는데, 야당을 적대시해서 어떻게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될 수 있느냐’는 비판이 제기될 수 있다”고 전제한 뒤 “하지만 지금 같은 시기에는 필요한 처방”이라고 평했다. 신냉전 세계질서 속에 극심한 남북, 남남 대립이 벌어지는 이념적 혼란기에는 국가가 가야할 방향과 국가 정체성을 분명히 하는 게 옳다는 설명이다.문 정권이 지향한 새로운 나라가 기존 대한민국과는 달랐던 게 사실이다. 여기서 새로움은 업그레이드의 개념이 아니라 대전환을 의미했다. 문 전대통령은 집권 전 저서, 인터뷰 등에서 “세도 정치로 나라를 망친 노론세력이 일제 강점기에 친일 세력이 되고, 해방 후에는 반공이라는 탈을 써 독재세력이 되고, 여전히 기득권으로 남아 있다”는 일부 역사학자의 주장을 자주 인용하면서 주류 세력 교체, 대청산, 역사 교체를 주창했다. 촛불시위를 혁명으로 규정하고 혁명정부를 자임했다. 외교안보관도 남달랐다. 국정원의 대공수사권을 없애고 기무사령부 해체 등을 통해 간첩 잡는 기능을 사실상 와해시켰다. 우리 주권의 일부를 포기하면서까지 중국에 3불1한을 합의해준 것은 국제질서를 보는 특유의 시각을 보여준다. 해방공간과 6·25전쟁 와중에 발생한 양민피해에 대해서도 오로지 우익에 의한 피해만을 조명하고 보상한 것은 현대사에 대한 독특한 인식의 발로다. 최근의 미중전쟁 메시지는 6·25전쟁의 근본 성격에 대해서도 상식적 대한민국 국민과는 다른 생각을 갖고 있음을 보여 준다.이재명 대표는 윤 대통령의 반국가 세력 발언에 대해 “문재인 정부에서 검찰총장을 지낸 자신의 과거를 잊은 심각한 자기부정“이라고 비난했는데 억지스런 논리다.보수성향 국민들이 문재인 정권에 대해 의구심을 표할 때 그 의미는 정권 구성 세력 일부 및 정권의 지원으로 활성화된 각종 단체 내에 반국가적 인식 관점 언행이 있었으며, 그런 요소가 과거에 비해 두드러지게 확장되고 강해졌다는 의미이지, 정부 자체가 반국가세력이었다는 뜻이 아님을 이 대표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게다가 윤 총장은 문 정권에 의해 임명됐지만 ‘반국가적 행위’에 가담하는 대신 그런 행위를 엄단하려 했다. 교육 공정성을 파괴하는 권력 핵심층의 입시 비리, 청와대의 광역시장 선거 개입, 강압적 원전 폐쇄 같은 행위를 의법 조치 하려했다. 물론 결과적으로 문 정권의 다른 나라 만들기는 실패했다. 다만 하나 성공한 것은 자기 진영에 황금 밥그릇 챙겨주기였다. 요즘 연일 공개되는 문 정권 하의 보조금 비리, 태양광, 전력보조금, 각종 연구기금 비리 등은 기득권 타파라는 슬로건 아래 ‘우리끼리 다 먹어치우는 나라’를 만들려 했고 상당 부분 성공했음을 드러내준다. 패밀리비즈니스를 벌인 뒤 튀어버린 셈이다. 그래 놓고 총책임자는 진영의 상왕 행세를 하고 있다.문제는 이렇게 먹고 튀어도 정의의 실현을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국가적 손실을 끼친 정책이 의도되고 기획된 것이었는데도 최종 결정권자에 대해서는 통치행위를 한 것이니 책임을 묻지 말아야 한다는 국민적 합의가 이뤄진 적이 있는지에 대해 많은 국민은 회의적이다. 국가의 근본 방향과 시스템에 대해 모두가 인정하고 존중하는 전제하에서 진보와 보수가 집권경쟁을 펼치는 선진국 정치시스템과 달리, 권력을 잡으면 자기 마음대로 나라 근간을 다 휘젓는 이런 풍토에서 통치행위라는 미명하에 어떤 잘못이든 면책해주는 게 옳을까.명백히 민주적 절차의 위반이 있었고, 헌법적 가치를 훼손해 국가와 국민에 해를 끼쳤을 경우 책임을 분명히 물어야 한다. 선의의 실책이 아니라 의도적인 실정, 자기편 이권 챙겨주기에 대해 심판하지 않으면, 정의와 불의의 도치(倒置), 형평성 역전 같은 건 개의치 않고 5년간 나라 기둥을 부수고 자기 진영 챙기기만 하다 먹튀해도 된다는 나쁜 선례를 남기게 된다.이기홍 대기자 sechepa@donga.com}2023-07-07 00:06
[이기홍 칼럼]교육 개혁 발목잡는 안팎의 적들윤석열 대통령의 “공교육 교과 과정 내 수능 출제” 발언 직후 대재앙이라도 닥칠 듯 최고 강도의 공격을 퍼붓던 야당과 좌파 진영은 이재명 대표도 대선 때 킬러 문항 폐지를 공약했다는 사실이 지적되자 공격 포인트를 바꿨다. 수능을 5개월 앞두고 난데없이 문제를 제기했다는 이른바 ‘갑툭튀’ 비난이다. 민주당이 비난에 앞서 1분만 시간을 내서 네이버 검색을 해봤다면 어땠을까. <제목: “올 수능 킬러 문항 없앤다” 본문: ~한국교육과정평가원 문영주 수능본부장은 “이른바 ‘킬러 문항’으로 불리는 초고난도 문항을 출제하지 않으면서 변별력은 갖출 수 있도록 ‘적정 난이도’ 달성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교육당국의 며칠 전 발표를 전하는 기사가 아니다. 올 3월 29일자 중앙일간지 기사다. 같은 내용의 상세한 기사들이 3월 28, 29일 양일간 방송 신문 인터넷매체 등에 수십 건 보도됐다. ‘킬러문항 없앤다’를 제목으로 뽑은 기사도 수두룩하다. 물론 수험생이나 학부모들은 눈여겨보지 않았을 수 있다. 그러나 “수험생이 불쌍하다”는 입시학원 강사들이 3월 당시 평가원 발표를 접하지 못했을 가능성은 제로다. ‘우리 식구인 교육부가 설마 황금 밥그릇을 없애겠어’라며 평가원 발표를 레토릭 차원으로 무시한 채 “킬러 문항에 인생이 걸렸다”고 수험생들을 계속 꼬득이다 막상 실제 현실로 다가오자 ‘수능 5개월 앞 갑툭튀’ 프레임을 만들어 저항하는 것이다. 윤 대통령이 지시한 건 지난해 말부터고 올 3월 평가원이 공식 발표했는데도 이 분야가 생업인 인사들이 마치 처음 듣는 얘기인 것처럼 연기를 한다. 윤 정부가 시동 건 교육개혁의 핵심은 네 가지다. 즉, △천문학적 사교육비를 절감할 수 있는 공교육 혁신과 입시제도 개선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나라로 가르치고 있는 수구 좌파세력으로부터 교육을 구출하는 일 △인구 감소에 따른 지방 대학의 선별적 소생과 퇴출 대학 용도 변경 △생성형 인공지능 시대 첨단산업 국가로 도약하기 위한 새로운 산업 역군을 양성하는 교육 과정과 평가 혁신 등이다. 사실 교육개혁은 역대 모든 정부가 해보려다 실패했다. 큰 이유 중 하나가 교육부 관료 집단과 교육계·업체들의 공생 관계다. 이번 교육부의 움직임에도 이해하기 힘든 대목이 많다. 대통령의 올초 지시를 담당 국장이 고의로 이행 거부한다는 것은 공무원사(史)에 남을 만큼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드는 의문은 이주호 장관이 대통령의 의지와 염원의 강도를 정확히 이해했는지, 그리고 이를 실무진에 충실히 정확히 전달하고 실행을 위해 노력했는지 여부다. 대통령이 중대한 지시를 했으면 장관은 올초부터 국민에게 반복해서 설명했어야 한다. 그러나 그동안 이 장관이 국민에게 수능에 대해 밝힌 적은 없다. 신년 업무보고 후 10대 교육 개혁방안 발표에도, 지난달 이를 3대 과제로 압축해 발표했을 때도 없었다. 대통령의 수능 관련 지시가 단발적 개입 차원이 아니라 교육개혁에 대한 지속적이고 강한 의지의 산물임을 이해하고 있었다면 이 장관의 16일 첫 브리핑 내용도 달랐을 것이다. “대통령이 학교수업 밖에서 나오는 문제는 출제하지 말라고 지시했다”고 브리핑하는 대신 “변별력을 갖추되 공교육 교과과정 내에서 출제하라는 대통령 방침이 올초 평가원에 전달됐고 이에 따라 올 3월 평가원이 킬러 문항 폐지를 공표했는데도 이번 모의고사에 반영되지 않은 데 대해 대통령이 질책했다”고 발표했을 것이다. 이는 서툴러서가 아니라, 대통령의 의지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거나 마음속에서 흔쾌히 내키지 않으니 적극성이 떨어져 발생한 문제로 보인다. 이 장관은 KDI를 거쳐 비례대표 의원, 교육부 차관· 장관, 비영리 교육 사단법인 이사장, 서울시교육감 선거 예비후보 등 평생을 교육계 관련 일을 생업으로 살아온 사람이다. 2020년 아시아교육협회 이사장 재직 시 에듀테크 관련 기업으로부터 협회가 1억2400만 원의 기부금을 받았고, 지난해 교육감 선거 때 에듀테크 임원과 직원에게서 각각 500만 원씩의 후원금을 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법적으로는 문제가 되지 않는 일이지만 인사청문회에서 논란이 됐다. 장관과 더불어 교육개혁을 지휘할 한축인 국가교육위원회 이배용 위원장은 사학과 교수로 이화여대 총장을 거쳐 수십 년간 정부 산하 기관, 위원회 등에서 다양한 자리를 누려온 인물이다. 그 어떤 이해 당사자도 눈에 밟혀 하지 않고 백년대계를 만들어 가야 하는 자리의 적임인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소리가 진작부터 나왔다. 역대 정부는 대학총장 출신 등을 교육장관에 많이 기용했지만 다들 제대로 개혁을 못했다. 어차피 교육계로 돌아갈 사람들이 교육계의 인심을 잃을 일을 벌이기가 어려웠다. 오죽하면 군 출신 장관이 제일 나았다는 말이 돌 정도다. 그 정도로 교육개혁 수장은 어려운 자리다. 더구나 기구축소로 대통령실에 교육 담당 수석도 없다. 교육개혁은 우리사회의 중차대한 개혁 과제다. 연간 26조 원의 사교육비는 저출산 문제를 비롯한 구조적 중병을 악화시키고 있다. 구조조정 전문가를 영입해 힘을 실어주고, 검찰이 달라 붙어도 교육계 커넥션은 쉽게 깨기 어렵다. 이번에 손댄 수능 킬러문항은 수만 개 뿌리가 얽혀있는 사교육 문제의 줄기 하나에 불과하다. 더구나 한국 사회에서 우파 정부 주도의 개혁은 난이도가 몇 곱절 올라간다. 정권이 하는 일이라면 뭐든지 좌절시키려는 야당과 좌파 진영의 선전선동술이 우파와는 질적 양적으로 비교도 안 되게 간교하고 공격적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보수 정부의 개혁이 성공하려면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와 정교한 전략, 그리고 흠결 없고 유능한 야전 사령관이 필요하다. 특히 중요한 것은 개혁 지휘관들의 도덕적 우위다. 이기홍 대기자 sechepa@donga.com}2023-06-23 00:03
[이기홍 칼럼]경제 사이렌-총선 빨간불 속 여당 실종사건윤석열 대통령의 집권 2년 차 출발은 상대적으로 안정적이다. 외교 성과가 이어졌고, 노조 불법에 대한 엄중한 대응, 자칭 시민단체로 행세해온 좌파단체들의 추한 실태 공개 등 비정상의 정상화에 박수를 치는 국민이 많다. 대통령의 말실수도 사라졌다. 지지율도 다소 회복세다. 얼핏 보기에 총선을 10개월여 앞두고 여권에 청신호가 켜진 듯 하다. 그러나 귀를 실물경제 현장에 대보라. 아우성이 사이렌 수준이다. 본고사는 이제 시작이다. 외교는 어음, 내치는 현찰이다. 외교는 화면은 화려하지만 표로 연결되는 건 실물경제다. 문제는 현 경제위기의 뿌리가 그 어떤 정부라도 대처하기 힘들만큼 과거 정권과 세계 경제 구조로부터 뻗어 나왔다는 점이다. 한국만 떼어놓고 봐서는 실체를 이해할 수 없다. 15개월 연속 무역적자가 이어지고 수출이 8개월째 감소하는 근본 원인은 에너지 가격 상승, 대(對)중국 수출 감소다. 거기다 원달러 환율로 인해 수입가격은 올라가고 해외소비 패턴이 증가하면서 구조적인 적자 상황이 이어진다. 고금리 상황은 당분간 계속될 수 밖에 없는 구조인데 중소기업인들이나 자영업자들은 이미 한계상황을 토로한다. 부동산 침체로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부실채권 60조원 설 등 빨간불이 켜졌다. 강성 노조의 무리한 요구는 계속된다. 경제 대부분 분야가 침체돼 있고 이 상황이 조만간 개선될 것이라는 기대도 어려운 상황이다이런 국내적 상황이 링크된 미국 경제 자체도 변동성이 매우 크다. 인플레이션과 경기부양 사이에서 미국이 쓸 수 있는 정책수단이 한계점에 도달한 듯하다. 미중 갈등과 우크라이나 전쟁은 당분간 끝날 상황이 아니다. 근본적으로 경제안보·안정성을 강조하는 미국 등 서방정부들의 방향과 이윤과 효율성 추구를 본질로 하는 기업의 방향은 상충될 수밖에 없다. 더구나 윤 정부가 쓸 수 있는 국내적 정책수단은 제한돼 있다. 문재인 정권이 사회안전망을 명분으로 뿌린 막대한 돈이 심대한 국가부담으로 돌아왔기 때문이다.이런 내우외환 경제난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국민적 단합을 위한 정치의 역할이 절실하지만 윤 정권을 실패로 몰아가 반사이익을 얻는데만 골몰해 있는 야당엔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그래서 지금이야말로 여당의 역할이 더더욱 중요한 때다. 경제 현장의 민의를 수렴하고, 자영업자들 중소기업인들의 애로를 정부에 전달해줘야 한다. 그러나 요즘 한국에서 가장 조용하고 한가한 집단이 국민의힘이다. 석달전 김기현 대표 취임 이래 여당은 뉴스에서 사라졌다. 여당이 주도한 이슈는 없다. 사실상 눈감고 귀막고 입을 봉한 정당이 됐다. 김 대표 등 지도부는 1일 수원을 찾았지만 도당 회의실에서 보훈체육만 강조하고 왔다. 지역구 59곳 중 52곳에서 패배한 초열세지역 경기도 탈환을 위한 전략적 마인드가 있다면 가볼 곳이 얼마나 많은가. 수도권 규제로 발 묶인 기업, 김포라인을 비롯한 출퇴근 지옥 현장, 일손 부족에 시달리는 영세기업, 난개발 현장, 미분양 현장…. 갈 곳이 마땅치 않으면 상가거리라도 나가 빈 점포를 세어가며 수첩에 바를 정(正)자라도 적어 나갔어야 하지 않은가.정권이 바뀌어 대통령이 나라 진로의 큰 방향을 바꾸면 아무리 올바른 방향이어도 그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보완해야할 빈 구멍, 선의의 피해자들이 생기게 마련이다. 좌파들은 그 허점을 노려 왜곡 선동을 일삼는다. 이때 빈 곳을 살피고 오해를 풀어주고 아빠에게 잔소리하는 엄마의 역할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중국의 자체기술력 향상에 따른 부품 기술 자급, 중국민들의 자국산 선호 등 복합적 이유로 기업들의 대중 수출이 계속 감소하고 있는데 좌파들은 이를 오로지 한미동맹과 탈중국 정책 때문으로 몰아간다. 중간에 낀 기업들은 아무 말 못한 채 냉가슴만 앓고 있다. 이럴 때 여당이 간담회도 열고 대체시장 세미나도 열며 소통할 생각을 왜 안할까. 경제를 살릴 첩경은 규제 완화인데 국무총리, 대통령실장 등 요직을 모피아 출신들이 독점한 관료공화국에서 규제 완화는 쉽지 않다. 여당 대표가 총리, 기재부 장관을 앞에 두고 “내가 OO에 가보니 이런 이런 하소연이 하늘을 찌르더라. 대통령은 그렇게 규제 완화를 외치는데 당신들은 뭐 하고 있느냐“고 호통쳐보라. 그게 정권에 마이너스가 되겠는가. 조용한 게 최고가 아니다. 민주당은 천박하고 부패한 속살을 드러낸 채 진흙구덩이에서 싸움박질하고 있지만 저러다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내년 총선 때도 지금의 민주당일 것으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문 정권이 심어놓은 사람들이 행정 공영언론 문화 교육 등 제도권 곳곳에서 버티며 사보타주하고 있고, 범좌파 진영 차원에서 총선 승리를 위한 이익연대 체제를 갖춰가고 있다. 반면 여권은 “우리 대통령 외교 잘한다” 박수만 치며 잔치 끝난 뒤의 고요를 즐기고 있다. 민주당에서 아무리 악재가 잇따라도 이탈표를 흡수할 매력요소를 만들지 못하고 있다.국민도 논리적으로는 안다. 경제난이나 저출산 연금 같은 구조적 문제가 윤석열 때문이 아니라는 걸. 하지만 당장 먹고살기 힘들어지면 원망은 현재 권력에 향한다. 반면 대통령과 여당이 민생의 고충을 나누겠다며 북적거리고 돌아다니면 국민은 “그래도 우리 먹여 살릴 놈은 이놈들밖에 없다”며 힘을 실어주게 마련이다. 국민은 다 보고 있다. 큰 뉴스만 보는게 아니다. 지금 국힘은 관료 조직처럼 돼버렸다. 초선 의원이 54.8%로 절반이 넘는데 소장파의 목소리는 사라졌다. 나경원, 안철수가 배신자로 찍히는걸 보면서 입을 다무는 게 상책이란 생각이 퍼졌다. 공포의 간접체험 효과다. 의원들을 만나보면 관심사는 오로지 다음 공천이다. 누가 실세냐. 누가 용산과 친하냐만 수소문하고 다닌다. 논쟁과 토론, 상호 견제가 많아야 생명력이 생긴다. 그게 민주주의다. 동종교배는 조직의 생명력을 뺏는다. 식구끼리에 젖으면 어떤 결과가 오는지 보여주는 생생한 사례가 이재명 대표의 혁신위원장 인선 참사다. 상식을 가진 국민 99%가 어이없어할 시대착오적 인물이 이 대표와 주변 식구들 사이에선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이해찬 사무실 경비’로 매달 3000만 원씩 2년간 전달했다는 김성태 전 쌍방울그룹 회장의 진술도 배달 사고든 실제 전달됐든, 식구끼리 사고에 젖은 사람들의 해이한 정신 상태를 보여준다. 자기들끼리에 얼마나 익숙해졌으면 그런 돈 거래의 위험성을 자각하지 못했을까. 남김없이 실체를 밝혀야 할 중차대한 의혹이다.당은 민심이 모이고 전달하는 곳이다. 그 역할을 포기하면 끝난다. 침묵이 체질화된 정당이 어떻게 국민과 호흡하고 국민의 불만을 수렴할 수 있겠는가. 대통령실도 이런 당의 모습을 원한 건 아닐 것이다.여당이 조용하고 일사불란하다 해서 민생도 잔잔한 바다인 것은 아니다. 참모나 장관들은 쓴소리를 할 용기가 없다고 쳐도 당은 쓴소리를 할 수 있어야 한다. 다양한 민의를 전달하는게 당의 존재 이유 아닌가. 여당에서 쓴소리가 사라지면 대통령이 퇴임 후 다 뒤집어쓴다. 당장 편한게 좋다고 편하게만 해주면 서로를 망치는 거다. 이기홍 대기자 sechepa@donga.com}2023-06-08 23:58
[이기홍 칼럼]민주당과 진보를 연관 짓는 자체가 진보 모독이다전당대회 돈봉투, 김남국 코인 등 부패·도덕성 사건이 잇따르자 “진보가 무너졌다” “진보의 위기” 등등 더불어민주당을 질타하는 우파·보수 논객들의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그러나 필자는 그런 비판의 전제 자체에 찬성할 수 없다. 이런 의문을 떨칠 수 없기 때문이다.“민주당이 진보였단 말인가?”민주당 일부 의원들과 김어준 씨 등이 “진보는 꼭 도덕성을 내세워야 하나” “진보는 돈 벌면 안 되나”라는 화두를 던졌다는 뉴스를 보면서도 우화 같은 장면이 상상됐다. “왜 우리 개들은 밤에도 마음 편히 못 자고 꼭 집을 지켜야 하나.” 개들의 대표를 자처하는 몇몇 견공들이 수천 년간 개들에게 당연시돼 온 ‘불침번 프레임’에 의문을 제기한다. 그런데 그들은 자신을 개로 착각한 고양이들이었다. 상식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아무도 진보로 인정해주지 않을 인사들이 스스로를 진보로 착각한 코미디 같은 풍경이다.사람이든 집단이든 진보로 규정할 수 있는 핵심 요소를 다섯 가지 정도로 요약해보면 △세상의 변화와 신사조(思潮)에 대한 열린 자세 △인권 △성평등 △약자·소수자 보호 △환경 보호 등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한국의 좌파그룹을 대입시켜 보자. 세상은 다양성 다층성 탈국경 탈공간의 최첨단 시대로 질주하는데 이들은 여전히 20세기 초중반 식민착취·계급투쟁 시대의 패러다임으로 세상을 보고 있다. 우리사회에서 이념적으로 가장 과거에 머물러 있는 집단이다. 외교와 국제정세를 보는 시각에서도 진보의 정반대, 즉 구한말로 치면 위정척사파와 같은 입장이다. 한국 현대사를 보는 눈은 냉전 종식 이후 자료들이 공개되면서 그 허구성이 다 드러난 1980년대 초반 수정주의 사관에 머물러 있다. 세상은 초 단위로 급변하며 펄펄 끓는데 개구리는 수십 년 전 패러다임의 우물 속에서 반일 친중만 외친다.해외유학이 글로벌 사고(思考)의 지표일 수는 없지만 참고용으로 필자는 어제 기준으로 국회 홈페이지에 등재된 의원 299명의 학력·이력을 따져봤다. 민주당과 민주당 계열 무소속을 합쳐 176명 가운데 해외유학 출신은 21명이다. 그중 중국이 3명이고, 독일과 오스트리아가 각 1명이며, 영미권 유학자는 16명이다. 국민의힘은 114명 가운데 유학파는 24명이며 이 중 22명이 영미권에 다녀왔다. 국민의힘 역시 토착 유지나 행정·법조 관료 출신이 주를 이루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음을 보여주지만 그래도 민주당과는 차이가 크다. 1년 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내한 만찬 때 헤드 테이블에는 한덕수 이준석 안철수 박진 등 하버드대 출신들이 여럿 보였다. 개방과 열린 자세는 진보의 핵심이다. 극좌나 극우는 폐쇄적이다. 한국 좌파의 우물 안 개구리 현상은 우리민족끼리라는 폐쇄적 민족주의에 감염된 탓이 크다.진보의 또 다른 덕목인 성평등에 관한 한 민주당은 얘기도 꺼낼 수 없는 처지다. 충남 부산 서울 등의 광역단체장을 필두로 지난 6년간 민주당 인사들이 저지른 성폭력 논란은 세계 정당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 수준이다. 인권도 북한 인권, 대북전단법 등에서 볼 수 있듯이 자신들의 이념지향과 맞지 않는 인권은 철저히 무관심하거나 옥죔으로써 진보의 가치에 어긋났다. 굴곡진 역사의 희생자를 명예회복시키고 보상하는 것도 우익에게 당한 경우에만 국한되고, 좌익에 의해 자행된 수백, 수만배의 고통에 대해선 고개를 돌린다.도덕성은 윤미향 조국 사태로 바닥을 쳤는데, 문재인 다큐영화가 문 정권 말기 1억 원의 지원을 받았다는 소식에 이르고 보면 후안무치 기록이 계속 경신되는 느낌이다.평등의 가치도 경제·교육 평등을 강조하며 국민에겐 하향 평준화를 강요해놓고 자신들은 입만 열면 비난하던 시스템의 알고리즘을 이용해 특혜를 누림으로써 훼손시켰다.진보의 또 다른 핵심 덕목은 계몽주의에서 비롯된 합리적 이성과 과학적 접근법인데 한국의 좌파는 서구의 진보세력이 맞서 싸웠던 괴담과 선동을 최대 무기로 적극 활용한다. 과거엔 관제 방송이나 단체들이 괴담과 선동을 주도했는데 이젠 당 대표가 직접 “독극물” “이완용” 같은 자극적인 표현을 주도한다.세계가 바로 우리 대문 앞에서 빛의 속도로 변하고 있는데 한국의 좌파는 검은 커튼을 쳐놓고 어둠 속에서 제 식구 눈 찌르기에 여념이 없다. 국제경쟁과 국가발전 같은 시대적 과제에 눈 감고 역사논쟁 같은 소모적 담론에 매달리며 우리민족끼리의 논리에 푹 빠져 우물 안에서 물장구치고, 돈맛 권력 맛에 빠진 패거리로 전락한 것이 오늘날 좌파의 민낯이다. 제도권 좌파의 질적 변질은 문재인 집권부터다. 그 전까지는 제도권 내 좌파는 온건 진보가 중심이었다. 그러나 문 정권 들어 시대착오적 좌편향 인사들이 정권 중앙을 차지하며 온건 진보를 밀어냈다. 링컨은 사람을 알려면 권력을 줘보라고 했다. 최순실 덕분에 정권을 차지하고, 코로나 덕분에 180석 슈퍼 권력을 갖게 되면서 본성이 드러난 것이다. 권력 재력 성(性)을 차지하는 수단으로 진보라는 수식은 유용했다. 사이비 보수인 극우 부패 세력이 적극 도왔다. 하지만 진보팔이의 실체는 6년간 다 드러났다. 이제는 스스로 진보 ‘레테르’를 내려놔야 한다.우리사회에서 보수 진보의 개념부터 다시 정리해야 한다. 우리는 200만 명을 학살한 크메르 루주나 차베스를 진보라 부르지 않는다. 70년대 칠레 피노체트 군부정권을 보수라 부르지 않는다. 우리 사회는 너무 오랫동안 좌파=진보, 우파=보수라는 등식을 사용해왔다. 그러다 보니 주사파의 후예들, 계급 민족해방 혁명 망상에 젖은 수구적 이념세력들이 진보로 자처하고,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 성취마저 부정하는 극우세력이 보수의 깃발을 흔드는 어이없는 상황이 이어진다. 이런 언어도단을 더는 방치해선 안 된다.이기홍 대기자 sechepa@donga.com}2023-05-26 03:00
[이기홍 칼럼]제2의 문재인 막을 ‘문재인 실정(失政) 백서’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이 부진한 건 정책 방향 때문이 아니다. 지난해 3월 대선 때 윤 후보에게 표를 준 유권자 대부분은 외교 정책 대전환과 노조 불법 행위 대응 등 국가정상화 방향에 대해 큰 박수를 보낸다. 그런데 왜 지지율은 대선 때 받은 48.56%에 못 미치는걸까. 대선 투표자가 3406만 명이었으므로 지지율 1%는 34만 명에 해당한다. 현재 지지율을 40%라 치면 대선 때 지지자 중 272만 명이, 30%라 치면 612만 명이 돌아선 셈이다. 이렇게 많은 지지자가 이탈한 이유는 △태도 △좌파정권 청산 미흡 △경제 상황 등 세 가지로 요약된다. 사실 ‘검사스러운’ 태도에서 비롯된 비호감 이미지는 정치 입문 직후부터 마이너스 요인이 돼 대선 투표에 이미 상당부분 반영됐으므로 48%가 30%대로 떨어진 결정적 이유는 아닐 것이다. 지난 1년간 단순한 언행의 문제 보다 지지율 부진에 더 큰 영향을 미친 비호감 요인은 인간적 신뢰의 훼손이다. 공명정대, 당당함, 진짜 사나이라는 검찰 재직시절 인간 윤석열의 이미지가 골대를 마음대로 옮긴 국민의힘 전당대회, 특별감찰관 임명 회피 등을 거치며 훼손된 것이다. 보수의 아성인 TK에서 눈에 띄게 지지층 이탈이 일어나는 현상은 바로 품격, 신뢰 등 보수층이 중시하는 가치가 흔들린 때문이다. 지지율 부진의 더 결정적 요인은 비호감 요인에도 불구하고 48%가 찍어준 이유와 직결된다. 그것은 바로 문재인 정권 심판이었다. 문재인류의 세력이 계속 정권을 잡으면 나라가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에서 독립 운동하는 심정으로, 다시는 5년짜리 정권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나라의 근간을 흔들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윤석열을 찍은 사람이 많다. 윤 정권은 좌파정권 청산이라는 소명을 갖고 태어난 것이다. 그런데 1년이 넘었는데 청산은커녕 문 전 대통령은 진영의 상왕(上王)행세를 하고 있고, 국민 대다수와 사법부의 단죄를 받은 파렴치한 인사들이 팬덤을 몰고 다니며 부활을 꿈꾸고 있다. 문 전 대통령이 “5년간의 성취” 같은 뻔뻔한 발언을 서슴지 않는 것은 문 정권 5년에 대해 구체적이고 객관적으로 시시비비를 가리고 평가한 결과가 없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은 9일 국무회의에서 “건물과 제도를 무너뜨리는 데는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순간”이라며 전임 정권을 비판했다. 백 번 옳은 말이지만 두루뭉실하고 총론적인 비판에 그쳐선 안 된다. 예를 들어 소득주도성장은 누가 어떻게 입안해서 실행됐는지, 경제적 평등도와 국가경쟁력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객관적인 지표로 평가해야 한다. 최저임금 급속 인상 결정과정에 누가 입김을 넣었는지, 자영업자들은 어떤 변화를 겪었는지, 최저임금 수혜자들의 일자리는 결과적으로 어떻게 변화했는지 등이 밝혀져야 한다. 외교안보 분야는 더더구나 진실 규명이 절실하다. 정의용은 국가안보실장 재직 시인 2018년 3월 평양을 다녀온 뒤 “김정은이 핵포기 의사를 밝혔다”고 했는데 그가 들은 말이 정확히 무엇인지 윤 정권은 인계받았나? 필자는 특파원 시절 한미 FTA협상과정을 취재한 바 있다. 양측은 자국 입법 권력의 요구시 어디까지 협상 내용을 공개할 것인가를 놓고도 밀고 당기기를 계속했다. 한국은 진행 중 사안은 대부분 비밀 유지하지만 미국은 전화기록·쪽지·노트 기록까지 다 의회에 보고하도록 되어 있다. 정의용의 북한 내 일거수일투족은 개인적 여행이 아니었다. 정확히 인수 인계해 주지 않았다면 범죄 행위나 다름없다. 문 전 대통령이 2018년 4월 판문점에서 김정은에게 넘겨줬다는 USB에는 무엇이 담겨 있는지 윤 정권은 보고 받았나? 중국 외교부는 한국이 삼불일한을 약속했다고 주장하는데 한국의 후임 정부는 누가 어떤 형태로 약속을 해준 것인지 모르는 상태라면 어떻게 중국 정책을 펴나. 이렇게 국가 운명에 관련된 사안들의 진실이 묻힌 채 넘어간다면 국가 운영의 기본 상식이 무너지는 것이다. 5년간 정부 부처는 물론이고 산하 기관, 조합 등에서 얼마나 많은 좌파인사들이 국민 세금을 누렸는지, 문화계·학계의 좌파 인사와 단체에 지원금이 어떻게 지급돼 좌파 생태계를 강화시켰는지, 이른바 공영 언론들에서 어떤 완장질이 행해졌는지 그 진상이 밝혀졌나? 현재의 경제난도 전임 정부와 분리해서 따질 수 없다. 대외 정책 전환에 비해 경제 사회 정책은 정책 수단이 제한돼 있다. 국가부채 이자율 등 복합적 경제 불안정기에 정책 수단의 손발을 묶은 주범이 전임 정권인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문 정권이 사회안전망을 구축한다며 돈 뿌리며 성장정책을 편 결과가 엄청난 국가부담으로 돌아온 상황이다. 책임 전가 차원이 아니라 문제의 뿌리를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서는 문 정권 경제정책의 폐해와 영향을 객관적으로 분석해야 한다. 문 정권 청산은 좌파들이 행했던 보복과는 차원이 달라야 한다. 철저히 객관적이고 구체적이어야 한다. 문 정권 때는 검찰을 앞세운 광란의 칼춤으로 5명이 유명을 달리하고 수백 명이 사법 처리의 고초를 겪었다. KBS MBC YTN 등에선 인민위원회를 연상케하는 위원회가 만들어져 숙청극을 벌였다. 우파는 달라야 한다. 보복이 아닌 재발방지 차원의 진실 규명을 해서 백서를 내야 한다. 민주주의 학습 차원에서도 중요하다. 재임 중 정책에 대해 나중에 법적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점을 악용해 일단 정권만 잡으면 나라의 미래가 어떻게 되든 당장의 권력 강화와 자신의 주관적 이념 구현을 위해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하려는 욕심에 휘말리기 쉽다. 5년 만에 재정을 거덜 낸 문 정권이 대표적 사례다. 이제 그 실태를 정확히 조사해 역사에 기록으로 남기고 후대에 가르치면, 역사의 법정에서 영원히 심판받는다는 생각만으로도 5년짜리 정권이 나라의 기틀을 깰 엄두를 못 내게될 것이다. 진실 규명에 미적대는 사이, 좌파는 벌써 지난 5년을 점령하려 하고 있다. 보수가 제정신이라면 서점에 문재인 실정을 고발하는 책이 넘쳐냐야 마땅한데 유튜브에서 돈 버는 것에만 골몰할 뿐 누구하나 천착해서 파헤치지 않는다. 나라를 파탄으로 몰아넣고도 반성은커녕 문재인 찬양 영화를 만드는 좌파에게서 배워야 한다. 대통령이 아무리 전임 정권을 비판해도 그 비판이 주관적 주장의 영역에만 머물면 언젠가 다시 좌파가 점령할 역사에서 문재인 시대가 요순에 버금가게 도색되고, 문재인처럼 나라의 근간을 갉아먹는 권력자가 또 나오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이기홍 대기자 sechepa@donga.com}2023-05-12 03:00
[이기홍 칼럼]애써 쌓은 탑 허무는 말실수… 대통령직 엄중함 되새겨야문재인 대통령이 보수·중도 진영으로부터 큰 박수를 받은 사례가 한 번 있었다. 2021년 5월 워싱턴 한미 정상회담에서의 대변신이었다. 4년간 친중 노선을 고집한 장본인 맞나 싶게 한미동맹을 강조하고 대만 쿼드 남중국해 문제에서 미국과 기조를 같이하는 공동성명을 채택했다. 물론 ‘싱가폴·판문점 선언’ 존중이라는 한마디를 공동성명에 넣을 수 있다면 뭐든지 내주겠다는 ‘대북관계 집착증’이 낳은 양보였지만 어쨌든 등 떠밀려 옳은 길로 처음 접어든 것이었다. 하지만 본성은 변하지 않는 법. 김정은의 무시로 남북관계가 전혀 안 풀리자 미국과의 약속도 뒷전으로 밀어버렸고 워싱턴에서 한국에 대한 신뢰는 더 떨어졌다. 그때를 생각하면 격세지감이다. 어제 민주당은 “2021년 정상회담에서 진전된 게 없으며 기존의 미국의 핵우산 정책과 크게 달라진 게 없다“고 주장했는데 그들의 외교안보 식견 수준을 보여주는 반응이다. 나토의 핵공유협의체인 핵기획그룹(NPG) 같은 형태를 당장 실현하는 게 불가능한 엄연한 현실에서 양자 차원의 첫 모델인 핵협의그룹(NCG)이 생긴 것은 내실 있는 핵협의 장치 마련이라는 큰 의미가 있다. 일부에선 NPT 재확약을 놓고 우려하지만, NPT 회원국으로서의 권리와 의무를 준수하는 범위내에서 최대한의 결과로 보아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 진단이다. 전술핵 재배치나 핵잠수함 상시배치도 미국의 세계전략 상황을 조금이라도 생각해보면 어차피 가능성 제로인 비현실적 옵션이었으므로 그런 현실 속에서 핵잠수함 수시 전개 등을 얻어낸 것은 의미가 크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은 타의에 의해 소원해진 절친이 다시 뭉치듯 동맹 업그레이드의 발판을 다졌고 남은 4년 외교 노선의 침로(針路)가 깔렸다. 하지만 그런 성과들에도 불구하고 윤석열 대통령은 출국 전 인터뷰에서 불필요한 표현으로 이번에도 실점을 자초했다. 물론 말실수는 사소한 일이고 본질이 아니다. 그러나 대통령의 경우엔 다르다. 말실수로 인해 본질이 흐려지면, 정권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고 지지율이 떨어진다. 그 결과 총선 결과가 달라져 수많은 민생 이념 안보 관련 법령들이 바뀌고, 그 결과 정권이 다시 포퓰리스트 세력에게 넘어가고, 장차 나라의 미래가 흔들릴 수 있다. 특히 윤 대통령의 말실수 반복은 시스템의 문제, 그리고 대통령 자리의 엄중함에 대한 인식의 문제와 깊이 관련돼 있다. 워싱턴포스트 인터뷰에서 윤 대통령은 이런 말을 하려 했을 것이다. “한국 내에는 일본이 무조건 무릎 꿇지 않는 한 한일관계를 정상화시켜선 안 된다는 주장이 있는데, 저는 대통령으로서 그런 주장을 받아들여 정책을 펼 수는 없습니다”라고. 그러나 대통령의 입에서 나온 표현은 “무릎 꿇으라고 하는 것은 저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문법상으로도 어색하고, 사과 요구 자체에 경기(驚氣)를 일으키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줄 수 있는 표현이었다. 사전에 질문지를 받고 답변을 준비해서 진행되는 대통령의 외신 인터뷰에서 이렇게 거친 발언이 나온 것은 내가 다 알아서 하겠다며 즉석에서 표현을 만들어 하다 말이 엉켰을 가능성이 크다. 배석한 참모진이 대통령의 발언을 현장에서 일부 수정, 보완할 수 있었을 텐데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도 어이없다. 문제가 될 소지가 있음을 감지하지 못한 무능 탓도 있겠지만, 감히 대통령의 말에 보완이나 토를 달 엄두를 내지 못하는 얼어붙은 커뮤니케이션 분위기의 산물일 것이다. 대통령이 즉석 발언을 즐긴다는 것은 좋게 말하면 자신감이지만 정확히는 오만이다. UAE에서의 “이란이 적(敵)“ 발언도 장병들과의 식사자리에서 표현 하나하나를 사전에 충분히 준비하지 않은 상태에서 말하다 빚어진 일이다. 당시 영상을 보면 윤 대통령은 “UAE의 적은”까지 말하고는 멈칫한다. 의도치 않게 부적절한 표현이 나왔음을 인지한 것이다. 잠시 숨을 고르고 “가장 위협적인 국가는 이란”이라고 표현을 바꿔 말하지만 이미 엎지러진 물이었다. 대학이나 고시 공부 시절 김치찌개집에서 소주잔을 앞에 두고 경청해주던 후배들, 검찰 특수부 시절 부하들은 때로 과장되거나 적확치 않은 비유를 해도, 즉 ‘콩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어’ 줬을 것이다. 하지만 국민은 다르다. 특히 나무 밑은 말실수만 기다리며 입을 벌리고 있는 악어들이 드글댄다. 내가 다 안다는 자만심은 더 위험하다. 지지자들은 예민하고 섬세하게 접근해야 하는 이슈에 대해 툭툭 거친 표현들을 내던져 공격의 빌미를 제공하는 대통령을 보며 자리의 무게를 절실히 인식하고 그에 걸맞게 절제하고 신중히 행동하고 있는 건가 의구심을 품게 된다. 대통령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언어는 국가, 국민과 직결된다. 따라서 한숨 한 번 자기 맘대로 쉬어서는 안 된다. 말과 행동 모두 잣대로 재어 가면서 해야 한다. 통제되고 절제된 언어라야 한다. 한번 뱉으면 거둬들일 수가 없다. 역사에 기록되고 평가의 중요한 자료가 된다. 하물며 외교적 언어야 말할 나위 없다. 윤 대통령은 외교적 성취와 국가 정상화 노력에도 불구하고 몇 마디 실언들 때문에 실언만 크게 부각돼 그 빛이 가려진다. 말실수뿐만 아니라 온갖 논란거리들 대부분이 정책 방향이 아니라 무신경, 부주의에서 비롯됐다. 부산 횟집 앞에 도열하는 것도 자리의 엄중함을 잊어서이고, 특별감찰관 임명을 회피하는 것도 직분의 엄중함을 잊어서다. 누구나 실수를 한다. 그리고 지적을 받으면 고친다. 하지만 실수가 되풀이된다면 이는 시스템상의 큰 허점을 뜻한다. 지적해주는 사람이 옆에 없음을 뜻하는 것이다. 듣기 싫은 소리를 안 들으려 한 결과다. 최근 윤 대통령 지지를 철회한 사람들은 대부분 중도층과 온건 보수들로 분석되는데 정책노선 방향 이념 때문이 아니다. 사소하고 비본질적인 언행의 문제와 소통 부재가 쌓이고, 전당대회에서 반칙을 아무렇지도 않게 행하는 것을 보고 당초 기대했던 공명정대·공정·당당함·올바름에 대한 갈망이 실망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문 정권이 탈선시킨 국가 궤도를 공들여 바로잡아 가고 있으면서 왜 어이없는 자책골로 실점하나. 대통령 자리의 엄중함을 다시 한 번 생각해야 한다. 이기홍 대기자 sechepa@donga.com}2023-04-28 03:00
[이기홍 칼럼] 野는 국익 팽개치고 사생결단 전면전, 與는 웰빙윤석열 정부에 대한 좌파 진영의 공격을 전쟁에 빗대 유형 분류를 하면 ‘무제한 전쟁’ ‘전면전’ ‘절대전’으로 불러도 무방할 것 같다. ‘무제한 전쟁’은 1999년 중국군 대령 2명이 제시한 이론(‘超限戰’)으로 중국의 대미 군사전략 마스터플랜으로 자리 잡았다. 평시와 전시, 군대와 민간의 구분이 없으며 규범이나 법의 제한도 받지 않는다. 직접적인 군사적 대결에만 집중하지 않고 여론전 심리전 법률전을 다양하게 동원한다.‘전면전(全面戰)’ ‘절대전(絶對戰)은 특정 지역·이익·권리 등의 획득을 목적으로 하는 제한적 전쟁이 아니라 상대의 소멸, 격멸을 목적으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는 공격이다.최근 야당과 좌파 진영의 행태를 보면 정권을 되찾기 위해서는 그 어떤 소재, 수단, 방법에도 구애받지 않을 것임을 시사하는 사례들이 넘쳐난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의 일본 후쿠시마 방문은 한국 야당이 외교 관계마저도 선동적 퍼포먼스의 소재로 삼는 수준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정말 국민 건강과 환경 피해를 진지하고 심각하게 걱정한다면 당 대표가 나서거나 위임을 해서 일본 정부에 공식적으로 협의를 요구하고 투명성을 촉구해야 했다. 국회의원이면 일정한 대표성을 갖는다는 걸 망각한 채 오로지 국내 지지층만을 겨냥한 행보를 했다. 물론 원전 방류수 같은 문제는 과학적 데이터상 안전한 것으로 나타난다고 해도 최대한의 예방적 조치를 해야 하는 사안이다. 하지만 입증할 수 있는 위험과, 입증은 안 되지만 개연성을 완전 배제할 수는 없는 위험은 구분해서 이성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백퍼센트 확답이 나올 수 없는 문제라는 허점을 악용해 정권 공격을 위한 정략적 도구로 삼은 것이다.민주당은 국내 현안들에 대해서도 본격 전투 모드다. 양곡관리법 간호법 등 이익단체의 표 결집을 위한 입법독주와 더불어 방송 장악 영구화를 위한 본격 작전에 돌입했다. 방송법 개정안 강행과 더불어 최민희 전 의원을 방통위 상임위원에 추천했다.여당은 최 전 의원의 공직선거법 위반(허위사실 유포 등) 유죄판결 전력, 최근 수년간 발언 등을 문제 삼으며 반대하지만 실제 더 중시해야하는 것은 그가 방통위원에게 요구되는 최소한의 중립성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라는 점이다. 최 전 의원은 1990년대부터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이라는 단체의 사무총장으로, 민주라는 포장을 한 채 보수언론 공격에 앞장서다 2006년 민주당 몫 방송위 부위원장, 비례대표 의원 등 감투를 차지해온 강한 이념성향의 인물이다. 그런 이를 내세울 만큼 민주당은 방송장악에 관한한 안면 몰수하고 강경 전투 모드다. 야권은 현재 진보 좌파 진영 사장들이 포진해 있는 MBC KBS YTN 등을 뺏기면 다시는 정권을 찾아오기 어렵다는 절박감을 갖고 있다. 앞으로 이들 방송의 민노총 계열 노조들, 좌파계열 단체들이 민주당과 합심해 문재인 정권 초기 보수파 이사진을 쫓아 내기 위해 벌였던 식의 신상털기 등 극렬한 수단을 동원할 가능성이 크다.좌파의 윤 정권 공격에는 금도도 염치도 인권도 없다. 대통령이 회식한 부산 횟집 이름의 의미를 왜곡해 친일 딱지를 붙이는 행태는 소재와 대상을 가리지 않고 공격한다는 ‘철학’의 반영이다. 내용이 팩트인지는 그들에겐 중요하지 않다. 제3세계의 게릴라전이 정글 도심 시장 등등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듯, 삼라만상 전부를 공격 소재로 삼으려 빈틈을 노린다.과거 진보정권에는 그래도 금도가 있었다. 민주당의 과거 야당 시절도 지금 같지는 않았다. 국익 인권 금도 상식 염치 같은 것을 팽개치고 권력 강화에 이득이 될 것 같으면 무엇이든 손에 움켜쥐는 행태가 본격화한 것은 문재인 정권 때부터였다. 그같은 변질의 큰 이유는 김대중 노무현 정권 10년간 누린 권력의 맛, 2007년 대선 패배 후 10년간 겪은 허기를 잊지 못하기 때문이다. 고기 맛을 본 육식동물이 초식생활을 견디지 못하듯, 다시는 그 권력 상실 상태의 고통을 겪지 않겠다는 욕구가 문 정권 5년 내내 넘쳐 흘렀다. 대통령부터 일선 시민단체 등 좌파이권네트워크 종사자들까지 똘똘 뭉쳐 집단적 수치심 마비 상태로 지낸 것이다. 그런 행태의 업보로 5년 만에 정권을 빼앗겼지만 코로나 재난상황 덕분에 차지한 국회 다수 권력이라는 곳간만은 결코 잃지 않기 위해 그들은 앞으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무제한 공격을 펼칠 것이다.그런 정치적 전시(戰時) 상황에 보수 우파 지휘부는 절박감을 갖고 대응하고 있는가. 많은 보수 시민들은 횟집 논란의 경우 가짜뉴스로 공격하는 좌파의 행태에 분노하면서도, 격려 회식이 꼭 필요했다 해도 굳이 그런 도열 인사까지 해서 공격 빌미를 제공한 무신경과 해이함에 혀를 찬다. 대통령실 홈페이지에서 뉴스룸을 클릭해보니 ‘김건희 여사, 2023 순천만 국제정원박람회 정원 관람’이란 사진뉴스 보도자료(3월 31일자)가 눈에 띄었다. 클릭하니 주홍색 관람궤도차에 혼자 앉아있는 김 여사의 앞, 옆, 뒷모습 독사진이 5장이나 먼저 나왔다. 10대 여학생들의 SNS 연출사진을 연상케 하는 사진들이다. 물론 사소한 일이다. 하지만 이런 수준의 마인드로 심각한 이념전쟁 국면을 헤쳐갈 수 있을까. 지금 자신들이 어떤 공격에 처해있는지. 어떤 세력들이 공격해 오고 있는지를 망각한 것은 아닌가. 윤 대통령은 태평성시의 대통령이 아니다. 역대 보수 대통령들이 상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극렬하고 전투력 강한 좌파 공격수들이 무제한 전쟁을 걸어왔다. 윤 대통령은 개혁과 국가 정상화의 큰 방향은 옳게 잡고 가고 있다. 하지만 추진 과정에서 국민과의 소통은 낙제점이다. 이는 절박감이 부족하고 상황을 겸손하게 보지 않기 때문이다. 빗발치는 화살 속을 달리는 말 위의 지휘관처럼 한순간도 신중함과 절제심을 잃어선 안 된다. 이기홍 대기자 sechepa@donga.com}2023-04-14 03:00
[이기홍 칼럼]尹정권 얼굴 먹칠하는 장제원 갑질며칠 전 ‘장제원 반말 고성’이라는 뉴스 제목을 인터넷에서 처음 접했을 때는 국회에서 다반사로 나오는 그냥 그런 뉴스의 일종이겠지 싶었다. 그러나 동영상을 보면서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이해하기 힘든 대목이 많았다. 누구나 흥분하면 순간적으로 고함이나 반말이 터져 나올 수는 있지만 장 의원의 경우는 조금 달랐다. 무려 3분 8초간 고함에 가까운 목소리로 중앙선관위 사무총장과 과장을 야단쳤다. 이유는 상임위 도중 무단으로 자리를 떴다는 것이었다. ‘고함’ ‘야단쳤다’ 등의 표현이 당시 상황을 정확하게 묘사하기엔 너무 점잖은 단어인지, 과장된 것인지 여부는 독자들이 영상을 보고 판단해주기 바란다. 전후 사정을 알아보니 22일 오후 행안위에 출석한 사무총장은 오후 5시부터 열리는 정개특위에도 출석해야 했다. 행안위원장인 장 의원도 호통치기 2시간 전쯤 “5시에 정개특위가 열립니다. 그래서 아마 사무총장님은 이석을 하셔야 되지요”라고 말했다. 선관위 사무총장이 4시 45분경 같은 회의실 내 문 옆의 대기석으로 옮겨 앉았는데 잠시 후 장 의원의 분노가 시작됐다. 물론 장 의원의 앞서 발언은 확인차원에서 물어본 것일 뿐, 때가 되면 자기가 이석을 지시하려 했는데 사무총장이 기다리지 않고 자리를 옮겨 분노했을 것이다. 사무총장은 앞서 위원장의 발언을 허락을 받은 걸로 여겼을 수 있지만 그래도 위원장에게 정식 허락을 구하는 게 옳았다. 하지만 그 정도 잘못이 3분 넘게 고함을 치고 삿대질을 할 사안일까. 필자가 놀란 두 번째 대목은, 현장에서 만류하는 사람이 없었다는 점이다. 고성이 너무 오래 이어지면 “그쯤 하면 알아들었을 것”이라며 말리는 게 당연하다. 현장에는 민주당 의원들도 여럿 있었다. 평소 그들이 그렇게 과묵하고 신중한 사람들이었던가. 필자가 놀란 세 번째 대목은 그 후 국민의힘 내부의 침묵이다. 여당 내에도 원로와 새로운 의원상(像)을 추구한다는 초선들이 다수 있는데, 아무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 이런 궁금증을 풀기 위해 심리 정신 전문가, 여당 내부 인사들을 접촉해 봤다. 김창윤 울산대 의대 명예교수(전 대한정신약물학회 이사장)는 “외향적 감각형 유형인 사람들은 눈치와 적응력이 우수하지만 옳은 방향·가치관을 세우거나 자신을 성찰하고 조심하는 타입은 아니다”라며 “사람들은 자리가 올라가면 지위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특히 감각형 사람들은 자신이 기대에 못 미치는 대우를 받았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감정 통제에 상대적으로 더 어려움을 겪는다”고 분석했다. 국힘 내부 침묵에 대해 한 관계자는 “장 의원은 요즘 국힘 내부에서 원톱(one-top)으로 불린다”고 했다. 윤 대통령의 진의와 무관하게, 의원들은 장 의원을 ‘윤심 메신저’ ‘용산 브릿지’로 받아들인다. ‘장핵관’이라는 표현도 나돈다. 실제로 장 의원은 자신을 따르는 의원들과 단톡방을 공유하며 의견을 밝힌다. 예를 들어 ‘한동훈 차출론’이 불거진 다음날 새벽 단톡방에 장 의원이 차출론을 부각시키지 말라고 하면, 의원들이 방송에서 그런 방향으로 떠드는 식이다. 장 의원이 실제 실세든, 호가호위든, 그에 주눅 들어 한마디 못한다면 그건 정상적 정당이 아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윤석열 후보 캠프 종합상황실장, 당선인 비서실장을 지낸 그의 행태가 대통령에게 미칠 피해다. 윗사람이 총애해주고 신임해주면 그 분에게 누가 되지 않기 위해 처신에 조심하는 게 사회생활의 기본이다. 그래서 링컨은 사람의 됨됨이를 알고 싶거든 권력을 줘 보라고 했다.이제 국회에서 이런 고압적 행태를 추방해야 한다. 의원을 국민의 대표라 부를때 그 ‘대’자는 큰 대(大)가 아니라 대신할 대(代)다. 대리인에 불과하다. 국민은 나 대신 가서 정부 감시도 하고 내 의견도 전하라고 보냈을 뿐인데 피감기관을 불러다 반 죽이고 온갖 특권을 누리는 걸 낙으로 삼는다. 장 의원의 고함 하루 전 민주당 우상호 의원이 국회 수석전문위원에게 “보자 보자 하니까 웃기네 이거 진짜” 등 반말로 고함치며 책상을 내리친 걸 비롯해 여야, 다선 초선을 가리지 않는다. 장 의원이 3분 넘게 고함을 치는데 아무도 만류하지 않은 것도 자신들의 권력과 관련된 사안에는 한통속인 직업이기주의, 특권유지 욕구의 발로라고밖에는 설명하기 어렵다. 강퍅한 이미지의 인물이 실세 행세하며 논란을 일으킬 때마다 그가 속한 집단은 상당한 피해를 입는다. 대표적인 사례가 이해찬 전 의원이다. 그의 공격적이고 오만한 언행들이 진보의 이미지를 얼마나 떨어뜨렸나. 좌우 구분 없이 강퍅한 사람들은 있다. 하지만 보수에선 더 용서가 안 되는 이유는 보수의 핵심은 품격과 겸손이기 때문이다. 좌파에선 막말하고 고함치고 뺨 때려도 싸움만 잘하면 칭송받지만 품격과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생명인 보수에겐 치명적 독극물이 된다. 윤 대통령은 한일관계, 노조 정상화 문제 등에서 옳은 방향을 위해선 당장의 불이익이나 불편함을 무릅쓰는 선 굵은 결단력을 보여줬다. 용인술과 주변 관리에서도 큰 그룻이라는 소리를 들어야 한다. 입안의 혀처럼 굴신하는 이들의 자리를 바른 소리, 쓴소리 하는 사람들로 채워야 한다.이기홍 대기자 sechepa@donga.com}2023-03-31 03:00
[이기홍 칼럼]한일관계 결단… “이완용” 선동 뚫고 열매 맺어야출근길 버스정류장 너머 교차로에 ‘이완용의 부활인가’라는 더불어민주당 현수막이 펄럭인다. “삼전도의 굴욕”을 외치는 확성기 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그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들의 대안은 무엇인가?”한일관계는 제쳐 두고 따져보자. 징용 피해자들이 배상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은 일본 기업의 한국 내 자산 현금화밖에는 없다. 그런데 일본제철과 미쓰비시중공업의 한국 내 자산을 다 압류해도 턱없이 부족하다. 일본제철의 한국법인인 PNR의 자본금은 390억5000만 원으로 포스코가 70%, 일본제철이 30% 지분을 갖고 있다. 일본제철이 보유한 주식은 액면가 기준 110억 원 어치인데 확정 판결이 나온 피해자 15명 이외에도 소송 대기자가 약 1000명에 달한다. 1인당 1억 원씩이면 최소 1000억 원은 있어야 한다. 따라서 현실적으로 선택지는 3가지로 제한된다. ①3자 변제로 지급 ②일본의 태도변화 기다리기 ③국제 중재위 회부다. ②는 가능성이 거의 0%고, ③은 이미 문재인 정부가 내찬 바 있다. 전쟁을 해서 일본 내 자산을 뺏어오지 않는 한 3자 변제 외에는 방법이 없는 게 현실이다.물론 3자 변제는 ‘셀프배상’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자존심 상하고 분통 터지는 일이다.이렇게 선택지가 빈약한 상황을 만든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 ‘사법자제’라는 기본을 어긴 대법관,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는 일본의 뻔뻔함을 논외로 치고 국내적 책임을 따져보면 책임의 상당 부분은 문재인 정권에 있다. 2012년 김능환 대법관의 “건국하는 심정” 판결이 나왔을 당시 이명박 정부 외교부 내에선 “큰 폭탄이 던져졌다”는 우려가 컸다는 게 당시 직원들의 증언이다. 외교 책임자가 공식 입장문을 내서 대법원 판결이 국제법과 어떻게 배치되는지 명확하게 밝혔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다들 문제를 외면했다. ‘당장 터질 폭탄은 아니다’며 눈 감은 것이다. 박근혜 정부 때도 시간만 흘러갔다. 한국 외교의 후진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상황을 최악으로 내몬 것은 문재인 정권이었다. 2018년 대법원 확정 판결이 나오자 일본은 한일협정에 명기된 분쟁조정 절차에 따라 양자협의를 요구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대법원이 판결한 것인데 무슨 협의냐며 거부했다. 일본은 그러면 절차대로 국제 중재위로 가자고 제안했다. 문 대통령은 또 거부했다.중재위 회부는 패소 가능성이 압도적으로 높지만 4, 5년은 걸릴 중재위에 문제를 맡겨 버리고 한일관계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이어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김능환을 중재위 담당 팀장으로 모시자”는 농담까지 돌았다. 삼권분립도 중요하지만 대통령은 국가를 대표하는 자리다. 국내 판결과 국제법 사이에서 딜레마에 처한 상황을 국민에게 설명하고 해결책을 찾아야 하는데 문 전 대통령은 삼권분립만 강조하며 욕 안 먹는 편한 선택만 했다.여전히 좌파 일각에선 1991년 일본 외무성 조약국장 발언, 2007년 일본 최고재판소 판결 등을 근거로 “일본도 징용 피해자의 개인 청구권이 살아 있다고 인정한다”고 주장하며 한국 정부를 공격한다. 하지만 이는 전체 맥락을 보지 않은 것이다. 일본 외무성이나 최고재판소의 입장은 “국가가 합의했어도 개인이 갖는 인간 기본권으로서의 청구권은 막을 수 없다. 하지만 그 청구권은 충족될 수 없으며 재판에 호소할 수 없다”는 게 전체 맥락이다. 2007년 일본 최고재판소는 “개인 청구권이라는 실체적 권리는 있지만 1972년 중일 공동성명 제5항(전쟁 배상 청구 포기)으로 인해 재판상 권리는 상실했다”며 중국인 노동자들 패소 판결을 내렸는데, 한국 좌파 인사들은 “청구권이 있다”는 대목만 강조한다. 일본의 이런 입장이 분노를 유발하지만 그럼에도 그것이 일관된 현실이어서 한국 피해자들이 일본에서 제기한 소송은 다 패소한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이런 현실 속에서 택한 고육책은 정치적 불이익을 감수하고 국익을 생각한 어려운 결단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신냉전 시대 한미동맹 강화는 우리의 절대명제이고, 미국이 강력히 희망하는 한미일 공조 강화를 외면할 수는 없다. 국내외 친중 세력들이 필사적으로 한일관계 회복을 비난하는 것도 바로 그걸 저지하기 위해서다. 다만 징용 배상 문제에서 해법의 내용물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떤 과정을 거쳐 해법을 도출하느냐는 ‘어떻게’였는데 이 부분이 소홀했다. 정부 출범 초기, 윤 대통령이 진보 보수를 망라해 전직 국회의장들, 총리들, 외교 분야 석학 등을 모아 “100일 동안 논의해 해법을 내주시면 무조건 따르겠다”고 했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결론은 지금과 대동소이했을 텐데 상당수 중도층은 현실적으로 이 길밖에 없다며 씁쓸히 고개를 끄덕였을 것이다.정치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과정을 소홀히 한 채 민감한 이슈를 서둘러 결론 내린 것은 아쉽지만, 대통령으로선 어려운 주사위를 던졌다. 한일관계의 파탄을 원한다는 점에서 이해관계가 상통하는 한국 좌파와 일본 내 극우세력은 계속 발목을 잡을 것이다.결국 윤석열 해법이 지속 가능해지고 성공할 유일한 길은 국민과의 소통 뿐이다. 윤 대통령이 피해자를 포함해 국민과 끝없이 대화해야 한다. TV 생중계 공개토론을 몇 번이고 해야 한다. “왜 우리가 물어주죠”라는 의문에 진솔하게 불가피성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해야 한다. 왜 판결대로 이행할 수 없는지, 이행하면 무슨 문제가 있는지 정면으로 얘기하고, 이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고육책임을 설득해야 한다.낡은 죽창가 필름을 되돌리는 야당과 좌파의 선동에는 냉철하고 정교한 논리로 대응하되 국민의 상처받은 자존심에는 진정성으로 접근해야 한다. 한일관계는 단칼로 모든 엉킴을 풀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스스로 움직여 비비 꼬여가는 실타래처럼 곳곳에 복병이 도사리고 있다.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끊어낸 뒤에도 정교하게 하나하나 공들여 관리하는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열매를 맺을 수 있다.이기홍 대기자 sechepa@donga.com}2023-03-17 03:00
[이기홍 칼럼]이재명만 중요한 게 아니다그리스 파르테논 신전(神殿)을 떠올려 본다. 25개의 기둥이 떠받치고 있는 이 위대한 건축물은 화재, 외세 침략 등으로 숱한 파손과 붕괴 위험을 겪었다.자유민주주의라는 우리의 체제도 그렇다. 시장경제라는 기단(基壇) 위에 여러 기둥들이 버티고 있는데 문재인 정권 5년간 강진(强震) 수준의 내상을 입어 기둥들이 뒤틀리고 금이 갔다.자유민주주의의 복구, 즉 나라의 정상화는 대선 때 윤석열에게 표를 준 1639만 유권자 모두가 염원한 윤 정권의 소명이다. 윤 대통령이 거듭 ‘자유’를 강조하는 것도 그런 소명을 가슴에 새긴 결과일 것이다.그런데 우려스러운 대목은 윤 대통령이 기둥 몇 개에 집중한 나머지 전체의 복원을 위한 종합적 접근은 소홀히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점이다. 믈론 이재명 심판과 민노총 횡포 문제는 국가 정상화를 위한 주요한 과제다. 특히 이재명 문제는 민주주의의 기둥 중 하나인 지방자치를 살리고, 정치를 정화하는 불가결한 작업이다. 게다가 그가 국회의원과 야당 대표라는 방탄 옷을 찾아 입은 ‘덕분에’ 국민은 불체포특권 남용, 다수결 횡포 등 민주주의 시스템의 심각한 빈틈을 적나라하게 목도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이재명 심판은 국가 정상화라는 방대한 여정에서 첫 기착지 정도에 불과하다. 극단적으로 단순화하면 잡범 혐의다. 문 정권이 5년간 자행한 행위들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뜻이다.문 정권이 비틀어 놓은 기둥들은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다. 헌법에서 자유를 삭제하려 했고, 교과서 내용이 기울어졌다. 근현대사를 좌파들이 독점하면서 정통성이 북한에 있는 것처럼 몰고 갔다. 대한민국 건국의 아버지들은 죄다 친일파라는 낙인 속으로 몰아넣었다.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좌파들의 역사 바꾸기는 집요하고 악착스러웠다. 5년간의 친중 굴종 노선은 사회 전반에 중국의 손을 확장시켰다. 공영방송과 유선방송에는 중국 홍보성 내용이 넘쳐나고, 선진국에선 거센 퇴출 움직임에 처한 공자학원이 한국에선 인구 대비 세계 최대 규모다. 지난해 지방선거 기준으로 9만9969명의 중국 국적자가 한국에서 투표권을 가졌다. 지방선거 투표권을 부여받는 외국인의 5분의 4가 중국인이 아니어도 민주당은 상호주의 원칙을 무시한 이 제도의 유지를 고집할까. 국가 중추 정보기관에서 대공수사권을 박탈한 것은 기둥 허물기의 화룡점정일 것이다.이렇게 나열해보면 ‘좌파정권 적폐의 종합적 청산’은 아직 시작도 못 한 상태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윤 정부는 국회 의석수 탓만 해서는 안 된다. 대통령의 강력한 의제설정 영향력을 통해 수리할 수 있는 기둥들이 숱하게 있다. 한 예로 윤 대통령은 민노총 문제에 강력한 의지를 거듭 천명함으로써 노사관계의 기둥을 바로 세우는 데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야당이 아무리 반발해도 여론의 지지와 시대적 명분·당위성이 힘을 실어주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앞서 열거한 과제들도 대부분 대통령의 의지로 개혁의 작업대에 올려 진전시킬 수 있는 사안들이다. 그런 점에서 국민들이 주목하는 대목은 윤 대통령이 문 정권의 적폐 핵심까지 파고들 것이냐는 점이다.탈북 어부 강제송환,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에서 문 전 대통령의 역할은 결국 아예 불가지(不可知)의 영역으로 봉인됐다. 기소된 정의용 서훈 등에 대한 유무죄는 예단할 필요 없다. 하지만 죄에 해당하든 아니든 최종 결정한 책임자가 누군지를 밝히지 않은 채 수사가 종결된 것이다. 백번 양보해 직접 조사가 부담스러웠다고 쳐도 다른 방법을 통해 사실관계라도 명확히 규명했어야 마땅하다.윤 대통령은 자신을 지지해주는 사람들의 마음을 읽어야 한다. 한마디로 말하면 지지층 가운데 상당수는 윤 대통령에게 불만이 많다. 운동권 캠코더 왕국이 끝나고 공정과 상식의 새 시대가 열릴 것이라던 기대를 저버린 측근 편중 인사, 특별검찰관 임명 외면, 품격 잃은 말실수…. 그럼에도 그들은 지지의 끈을 놓지 못한다. 이뻐서가 아니다.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 회복시키는 게 너무 절실하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은 역사 교육 문화 사상 등 사회·인문과학 분야 ‘현인(賢人)들’을 두루 모셔 경청하고 나라 바로 세우기의 종합적 접근을 해야한다. 실무진은 대통령이 강조하는 자유의 회복을 구체적으로 실현해 나가야 한다. 김기춘의 블랙리스트처럼 극우 편향으로의 회귀가 아니라, 정반합(正反合)의 균형추를 잡아야 한다. 자유민주주의는 시스템의 빈틈을 악용하는 의원들, 그리고 문 정권이 깔아준 멍석 위에 구축된 좌파 인프라에 위협받고 있다. 좌파 활동가들은 정권이 민주당 수중에 들어오면 밀물처럼 순식간에 갯벌을 점령해 인프라를 구축한다. 그들의 사전에 썰물은 없다. 끝까지 악착같이 버틴다. 거센 저항을 이겨내려면 보수의 결집이 필요하다. 보수가 가장 싫어하는 게 위선, 내로남불, 천박함이다. 선전선동과 시위 파업 대중조직화가 좌파의 무기라면, 우파의 가장 큰 무기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와 품격이다. 솔선수범이 대통령의 몫이다. 이기홍 대기자 sechepa@donga.com}2023-03-03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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