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박용]‘규정 괴물’ 된 국토부의 ‘셀프 조사’ 끝내라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1월 13일 23시 18분


박용 부국장
박용 부국장
국토교통부는 10년 전 “항공사고 조사기관의 독립성이 보장되지 않고 있다”는 언론 보도에 대해 해명 자료를 내고 “조사의 독립성은 법률에 따라 엄격히 보장돼 있다”고 반박했다. 국토부가 당시 거론한 항공·철도 사고조사에 관한 법률 제4조는 ‘국토부에 항공·철도 사고조사위원회(사조위)를 두고, 국토부 장관은 사고 조사에 대해 관여하지 못한다’는 규정이다. 이는 조사 업무의 독립성에 대한 것이지 독립 조사기관에 대한 규정은 아니다. 국토부가 논점을 바꿔 비판을 피해 간 것이다. 국토부 소속 사조위를 일찌감치 독립시켰더라면 지난해 12월 29일 전남 무안 제주항공 참사 수습 과정에서 벌어진 ‘셀프 조사’ 논란은 피했다.

규제-조사 한 몸, ‘셀프 조사’ 논란 되풀이

국민과 해외 전문가들은 무안공항에 동체 착륙한 제주항공 여객기가 활주로 밖 로컬라이저가 설치된 콘크리트 둔덕에 충돌하고 폭발하는 동영상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왜 저런 시설을 저곳에 두었을까”라며 한탄했다. 국토부는 달랐다. 한밤에 “무안공항의 로컬라이저는 관련 규정에 맞게 설치됐다”는 보도자료를 뿌리며 또 규정을 들고나왔다. 국민들은 생명과 안전을 걱정하는데, 뜬금없이 ‘규정 준수’로 맞받아치며 논점 변경을 시도한 것이다.

콘크리트 둔덕에 대한 비판이 확산되자, 박상우 국토부 장관은 참사 9일이 지나서야 “규정 준수 여부를 떠나 안전을 보다 고려하는 방향으로 신속히 개선하겠다”고 한발 물러섰다. 그러면서도 ‘규정 위반은 없었다’는 앞뒤가 맞지 않는 주장을 되풀이했다. 허술한 규정도 지키면 그만이라는 건가.

국토부는 “해당 시설과 사고 관련성은 사조위에서 종합 조사할 계획”이라고 했다. 문제가 된 무안공항 로컬라이저 시설의 인허가는 국토부 부산지방항공청이 했다. 사고 원인을 조사하는 사조위 역시 국토부의 한 지붕 아래에 있다. 조사위 위원장은 국토부 출신이고, 상임위원은 국토부 항공정책실장이다. 국토부 관리들이 밤낮없이 사고 수습에 힘을 기울였지만, 유족들이 ‘셀프 조사’라고 들고일어난 건 객관성과 신뢰성을 의심받는 ‘셀프 조사’의 근본적 한계 때문이다. 결국 경찰이 나서 부산지방항공청 무안출장소 등을 압수수색하며 수사에 착수했다.

국내에선 대형 재난사고가 벌어지면 규제 기관의 ‘셀프 조사’ 논란이 불거지고, 경찰이 시비를 가리기 위해 개입하는 참사 수습 공식이 되풀이된다. 세계적으로 항공 철도 등 재난사고에 대한 기술적 조사와 사법적 조사는 분리돼야 한다는 원칙이 통용된다. 사고 원인을 찾는 기술적 조사와 책임 소재를 밝히는 사법적 조사가 뒤섞이면 관련자들이 민형사상 책임을 피하려고 솔직한 진술을 피하기 때문이다. 사고 원인 조사와 책임 규명이 혼재되면 실패에서 찾아야 할 문제는 꽁꽁 숨어버린다.

미 NTSB처럼 독립기관이 사고 원인 규명해야

미 의회는 1974년 사고 조사기관인 국가교통안전위원회(NTSB)를 교통부에서 독립시키는 법안을 통과시키며 “조사기관이 완전히 분리되고 독립돼 있지 않다면 어떤 연방기관도 조사 기능을 적절하게 수행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NTSB는 경찰 수사와 독립적으로 조사를 진행하고 조사 보고서를 의회에 보고한다. 재판 증거로는 쓰이지 않는다.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국내에는 부처별로 25개의 재난사고 조사기구가 운영되고 있다. 하지만 NTSB처럼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곳은 없다. 사조위 독립을 외면하던 국토부는 ‘셀프 조사’ 비판이 커지자 뒤늦게 총리실로 이관하거나 독립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4월에 항공안전 혁신방안을 내놓겠다고 했다. 이번에는 ‘규정 괴물’이 된 국토부의 ‘셀프 조사’를 바꿔야 한다. 그래야 사고 원인을 규명하는 기술적 조사와 책임을 묻는 사법적 조사를 분리해 접근하는 선진국형 사고 수습 체계도 정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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