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밤 한 극우 성향 유튜브에 ‘국힘 지방의원들, 당협위원장들 잘 들어’라는 제목의 48초짜리 방송이 올라왔다. 진행자는 “지방의원 XX들 빨리 튀어나와. 잘 생각해. 우리 화력 알지. (안 오는 사람들은) 명단 하나하나 깔 거야. 협박이야. 부탁 아니야”라고 말했다. 국민의힘 지방의원들과 당협위원장들에게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 집행을 막아야 하니 당장 관저 앞으로 나오라’는 얘기였다. 지금까지 16만 회 이상 조회 수를 기록한 이 영상에는 동조 댓글이 1300개 넘게 달렸다. 운영자가 공지해 둔 후원 계좌로 돈을 보냈다는 댓글도 눈에 띄었다.
그리고 다음 날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과 여당 원외 당협위원장 등이 체포영장 유효 기간이 끝날 때까지 매일 관저 앞을 지키기로 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여권 관계자는 “해당 유튜브 방송 때문은 아닐 것”이라면서도 “솔직히 정치하는 입장에선 유튜브를 통해 전해지는 강성 지지층의 목소리를 무시하긴 어렵다”고 했다.
유튜브는 이번 탄핵부터 계엄에 이르는 전 과정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극우 유튜버들이 주장하던 부정선거 음모론을 앞세워 계엄령을 선포했던 윤 대통령은 탄핵된 뒤에도 “생중계 유튜브를 통해 여러분께서 애쓰시는 모습을 보고 있다”며 관저 앞 지지자들에게 격려 메시지를 보냈다. 새해 첫날 밤 전달된 그의 메시지에 관저 앞 집회 현장에선 “대통령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는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이 장면도 고스란히 유튜브로 중계됐으니 윤 대통령도 지켜봤을 것이다. 자신 때문에 한 달 넘게 극심한 사회적 혼란이 이어지는데도 극우 유튜브에 기대 극단적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어느새 여당 의원들도 강성 유튜브와 결탁한 모습이다. 5선 중진 윤상현 의원은 전광훈 목사에게 90도로 ‘폴더 인사’를 하는가 하면, 교수 출신이라는 김민전 의원은 ‘백골단’을 자청하는 반공청년단이란 단체의 국회 내 기자회견을 주선했다. 전 목사도, 반공청년단 단장도 모두 강성 유튜브 운영자다.
요즘 더불어민주당은 그런 여당을 비난하고 고발하느라 바쁘다. 그런데 사실 민주당이 그럴 자격이 있는지도 의문이다. 강성 유튜브를 활용한 정치의 원조는 민주당이 아니던가. 선거철마다 민주당의 주요 후보들은 물론이고 현역 의원과 지도부까지 줄줄이 김어준 유튜브에 나가 지지를 호소했다. 지난 총선을 앞두고 안귀령 이언주 전현희 당시 후보는 김 씨의 “차렷, 절!” 구호에 맞춰 큰절을 올렸고, 과방위원장인 최민희 의원은 지난해 12월 김 씨 방송에서 민주당 과방위 초선 의원들의 이름과 후원 계좌를 공개하며 후원을 요청했다.
한 친명(친이재명)계 민주당 현역 의원은 “지금 민주당을 움직이는 가장 큰 파워가 뭔 줄 아느냐. 김어준 유튜브다”라고 했다. 그는 “김어준 유튜브에 한 번 나가면 후원 계좌가 꽉 차고, 구독자 수도 1000명 단위로 늘어난다”고 했다.
정치인은 강성 유튜브를 이용해 손쉽게 극성 지지층을 확보하고, 유튜버는 슈퍼챗 등 후원금과 클릭 수로 막대한 수익을 챙기는 질 나쁜 공생 관계인 셈이다. 정치가 완벽하게 실종된 시대에 정치인들이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강성 유튜버들과의 유착 관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갈등과 분열을 부추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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