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재영]삼겹살 ‘비계 밑장깔기’ 잡으려 AI감별기까지 등장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2월 26일 23시 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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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겹살을 시켰는데 커다란 지방 덩어리가 나왔다.” 삼겹살은 고소한 비계 맛으로 먹는다지만 비계가 얼마나 있어야 하는지는 오랜 논쟁거리다. 아무리 그래도 하얀 도화지에 붉은 붓으로 한 줄 직 그은 듯한 수준은 곤란하다. 포장을 뜯었더니 비곗덩어리뿐이라는 원성이 높아지면서 최근 대형마트엔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한 삼겹살 선별기까지 등장했다. 삼겹살의 단면을 분석해 살코기와 지방의 비중을 확인하고, 과지방 삼겹살을 골라내는 기술이다.

▷삼겹살 선별에 AI를 활용하는 건 그만큼 소비자들이 품질을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해 3월 3일 ‘삼겹살 데이’ 20주년을 맞아 유통업계가 대대적 반값 할인행사에 나섰는데 도를 넘은 비곗덩어리 삼겹살 때문에 분통을 터트린 사람들이 많았다. 반 이상이 기름이었으니 사실상 제값 주고 산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지난해 말에는 수도권 한 지역에서 고향사랑기부제 답례품으로 보낸 삼겹살의 3분의 2가 비계여서 항의가 빗발쳤다.

▷눈속임 상술은 대형마트와 온라인몰, 식자재마트 등 유통채널을 가리지 않았다. 특히 윗부분의 때깔 고운 고기를 보고 구매했는데 포장을 뜯어 들춰보니 비곗덩어리만 깔려 있는 것을 확인한 소비자들이 ‘삼겹살 밑장 깔기’라며 분노했다. ‘먹는 게 아니라 불판을 닦거나 김치를 굽는 용도’ ‘고기 대신 기름을 샀다’는 불만도 많았다. 정부가 삼겹살 품질관리 매뉴얼을 배포하고 품질관리 실태 특별점검에 나섰지만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다.

▷정부는 소포장의 경우 일반 삼겹살의 지방 두께는 1cm 이하, 오겹살은 1.5cm 이하로 관리하라고 기준을 제시했다. 하지만 권고 수준이어서 업체들이 따를 의무는 없다. 비계에 대한 선호가 제각각이라 일률적인 기준을 적용하기도 쉽지 않다. 그래도 참고할 만한 조사는 있다. 축산물품질평가원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소비자들은 ‘지방 함량이 적절한’, 지방 비율로는 25∼30% 수준을 가장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위별로는 흉추 5번, 흉추 9번, 요추 1번 순이었고, 이른바 ‘떡지방’이 많은 흉추 12번의 선호는 낮았다.

▷비계가 많다고 하소연해도 업체에선 ‘비계가 많아야 맛이 좋다’고 하거나, ‘단순 변심’이라며 반품해 주지 않는 경우도 있다. 처음부터 지방 함량에 따라 삼겹살을 세분해서 판매하고, 판매대나 포장지에 정보를 표시하면 어떨까. 세종시의 한 마트에선 지방 함량이 많은 것은 ‘풍미삼겹’, 중간 정도는 ‘꽃삼겹’, 적은 것은 ‘웰빙삼겹’ 등으로 구분해서 팔고 있다고 한다. 한국인의 솔푸드로 불리며 사랑받는 삼겹살이 AI 감별사까지 동원해야 할 정도로 불신의 대상이 되는 현실이 씁쓸하다.


김재영 논설위원 redfoot@donga.com
#비계 밑장깔기#ai감별기#눈속임 상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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