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우경임]“부디 환자 곁으로 돌아오라”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2월 26일 23시 4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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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떠난 MZ 의사를 향한 선배의 호소
“제도 개선 과정도 합리적일 때 지식인”

우경임 논설위원
우경임 논설위원
“우리 의료 제도는 급속 성장의 후유증을 겪고 있다. 불합리한 부분이 존재한다. 하지만 지식인이라면 제도를 바꾸는 과정도 냉철하고 합리적이어야 한다. 부디 돌아오라.”

의대 입학 정원 확대에 반대하는 20대 후반∼30대 초반, 이른바 MZ 의사들이 일제히 병원을 떠났다. 부정적인 여론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미 1만 명 이상이 사직서를 제출했다.

자칫 사태가 장기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상황에서 권용진 서울대병원 공공진료센터 교수와 통화를 한 건 그가 23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린 글 때문이었다. 그는 “(전공의들이) 병원으로 돌아와 정책 대안을 갖고 정부와 대화하라”고 썼다. 전공의 파업에 암묵적인 지지를 보내던 의료계의 침묵을 처음 깬 것이다. 가감없이 전달하기 위해 대화 내용을 그대로 옮겨 본다.

―공개적으로 전공의 복귀를 촉구했다.

“SNS에 쓴 대로 ‘성급한 행동으로 개인에게 큰 피해가 돌아갈 수 있는 상황’이라 안타까워서다. 정부가 보건의료재난 위기 경보를 ‘심각’으로 격상한 것은 처음이고 그만큼 큰 권한을 행사하게 되는데 후배 의사들이 이를 정확히 검토했는지 모르겠다.”

19일 처음 수련 포기를 선언한 박단 전공의협의회장은 “의료 소송에 대한 두려움, 주 80시간 근무, 최저 시급 수준의 임금 등을 견디지 못하겠다”고 했다. 이튿날부터 이에 공감한 전공의들은 사직서를 내던지듯 제출했다.

―이번 사태가 장기화할 수 있나.

“전공의들이 많으면 절반까지도 영영 안 돌아올 수 있다고 본다. 의대 증원이 계기가 됐지만, 현재 의료 시스템에 절망한 나머지 떠나고 있다고 본다. 전공의가 없으면 병원이 마비되는 상황이야말로 우리 의료 시스템의 구조적 모순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어떤 모순인가.

“지금의 전공의 수련 시스템은 우리가 북한보다 못살던 시절 만들어진 것이다. 정부도, 병원도 돈이 없으니 이들이 싼 인건비로 오래 일하도록 해서 병원을 운영하도록 했다. 2024년을 사는 전공의들에게 이 시스템을 강요한다고 통하겠나. 이런 시스템 개선은 미뤄 둔 채 대폭 증원한다고 하니 뛰쳐나간 것이다.

―그렇다고 환자를 두고 떠나는 것이 납득되진 않는다.

“의사의 직업윤리라는 측면에서 환자 생사에 불리한 영향을 미치는 행동은 용인되기 어렵다. 전공의들의 심정은 이해하지만 성급했다. 유럽 의사들도 파업은 하지만 정부와 충분한 협상을 하는 과정을 거친다. 대형병원 응급실, 수술실부터 비우지도 않는다.”

―증원은 필요하지 않나.

“의사 증원의 필요성은 어느 정도 합의가 이뤄졌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건강보험의 근본적인 수술이 병행돼야 한다. ‘저부담-저수가’로 설계된 건강보험 내에선 의료 수요가 적은 필수-지역의료부터 무너지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내과 몫 뺏어 외과 챙겨 주는 식의 현행 수가제도로는 해법을 찾을 수 없다.”

권 교수는 정부와 의료계가 증원 숫자에만 매몰돼 싸울 것이 아니라 낡고 오래된 보건의료 시스템을 제대로 개혁할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했다. 이를 위해서라도 후배들이 돌아와 달라고 재차 당부했다.

정부는 어제 29일이라는 복귀 시점을 최종적으로 통보하면서도 2000명이라는 숫자는 고수했다. 앞서 대통령실은 “연간 3000명의 의사가 더 필요하다”며 “2000명은 최소 인원”이라고 했다. 공무원 책상 위에서 1000명이 줄었는데 2000명에 집착해 필수-지역 의료 개혁을 실기할 이유가 있나. 전공의 복귀의 길을 열어줘 더 이상 환자의 피해를 막는 것도 정부의 역할일 것이다.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전공의 복귀#의대 증원#의료 시스템#의사 직업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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