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읽고 울다[왕은철의 스토리와 치유]〈331〉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1월 23일 23시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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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를 읽거나 보고 들을 때 울컥할 때가 있다. 뭔가가 마음을 건드리는 탓이다. 류시화 시인은 다른 시인들의 시를 읽고 운 적이 있다고 말한다. 그의 시 ‘기억한다’는 그를 울게 만든 시인들의 시구로 이뤄진 특이한 시다.

시인은 열다섯 시인들의 시구를 하나하나 인용하고 마지막에 이렇게 덧붙인다. “시를 읽고 운 적이 있던 때를 기억한다.” 그리고 무명 시인을 제외한 시인들의 이름을 각주에 열거한다. 각주도 시의 일부분인 셈이다. 줄리아 크리스테바의 말을 빌려 말하자면, 이 시는 “인용의 모자이크”다.

시인이 왜 울었는지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때로는 위로가 돼서, 때로는 깊은 인간애에 감동해서, 때로는 실존에 대한 깊은 성찰에 공감해서 그랬을지 모른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오래된 상처까지 사랑하는 것”이라고 했던 비스와바 심보르스카의 말은 따뜻하다. 무너지고 부서진 마음까지도 사랑하는 것이 진짜 사랑일 테니까. 그리고 “상처 입은 사슴이 가장 높이 뛴다”고 했던 에밀리 디킨슨의 말은 어떠한가. 사실 그것은 디킨슨의 말이 아니라 그녀가 사냥꾼에게서 들은 말이다. 총 맞은 사슴을 상상해 보라. 그 순간에 사슴은 생명으로 가장 충만한 실존이 아닐까. 이처럼 존재의 핵심을 파고드는 시인들의 말에 공감하지 않기는 힘들다.

예민한 시인은 그러한 시들을 읽고 운 적이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베개가 젖을 때까지 울고 나면 일어나 웃을 수 있는 법이라며 “마지막 울음 속에/웃음[행복]이 숨어 있[었]다”라고 했던 골웨이 키넬의 지혜, 그리고 “이 세상에 아직 희망을 간직한 사람이 많은 것이/자신이 희망하는 것”이라고 했던 벤저민 스바냐의 말에 자신의 마음을 슬며시 싣는다. 삶이 아무리 팍팍해도 울음 끝에 웃음이 있고 절망 끝에 희망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랄까. 이처럼 ‘기억한다’라는 제목의 시는 다른 시인들에게 한껏 기대는 “인용의 모자이크”다.

그런데 언제 우리가 시를 읽고 운 적이 있던가.



왕은철 문학평론가·전북대 석좌교수



#시#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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