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키즈존 논란과 어린이가 불행한 나라[광화문에서/박선희]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5월 7일 21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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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희 산업2부 차장
박선희 산업2부 차장
어린이날을 맞아 한 국회의원이 노키즈존을 아예 없애자는 제안을 내놨다. 그 덕분에 툭하면 불거졌던 한국 사회의 노키즈존 찬반 논쟁이 다시 뜨거워졌다. 하지만 이 논쟁은 자꾸 산으로 가고 있다. 혼란을 불러일으키는 용어 정의부터 다시 해보자. 노키즈존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다. 위험성과 유해성 때문에 불가피하게 어린이 출입을 막은 곳과 임의적 판단으로 어린이 출입을 금지시킨 곳이다. 전자가 구별과 보호라면 후자는 차별과 혐오다. 지금 문제가 되는 한국의 노키즈존은 후자다.

어떤 사회적 약자보다도 아이들은 연약하다. 당사자가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지 못하고 그 침해를 방어하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인종, 성별, 직업으로 차별받지 않는단 시대에 어리다는 이유로 공공장소 출입을 금지당해도 아이들은 자신을 지킬 힘이 없다. 보호자가 대리할 수밖에 없는데 ‘맘충’이란 혐오 표현은 이 문제에 대한 건전한 논의 자체를 차단시킨다. 이른바 PC(Political Correctness·정치적 올바름)의 시대 한국에서 유아와 유아 동반 가족을 향한 공공연한 혐오 표현이 만개해 있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이런 혐오와 적대는 왜 생겼을까. 사실 아동에 대한 차별이 한국 사회에 뿌리 깊게 박힌 인식의 문제 같아 보이는 징후들은 곳곳에 있다. 자녀가 있다고 해서 아동 인권에 다 민감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 아동학대의 80%가 가정에서 일어난다. 고아수출국이란 오명을 소득 3만 달러 시대에 아직도 씻지 못했다는 점은 국가 역시 사실상 아동 인권을 후순위로 방치해두고 있음을 방증한다. 출생아 대비 국제 입양 기준으로 우리나라 국제 입양 송출은 세계 최대 송출국인 중국보다도 많다.

영아 유기 형벌은 솜방망이 수준이다. 갓난아기를 유기해 죽음에 이르게 해도 법정최고형이 징역 2년에 불과하다. 대부분은 집행유예나 벌금형으로 끝난다. 존속 살해의 경우 가중 처벌하지만 자녀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비속 살해는 강화된 처벌이 없다. 아동에 대한 우리 사회 전반의 인식을 보여주는 이처럼 냉혹한 지표들을 보면, 노키즈존 논란이 사실 아동 권리에 대한 후진적 인식이란 훨씬 큰 문제에서 파생된 지류임을 알 수 있다.

우리 사회는 아동 문제를 주로 개인이나 가정의 소관으로 치부해왔다. 노키즈존 논란이 더 큰 공론의 장에서 진지하게 활성화되는 대신, 매번 맘충(혹은 진상부모)과 누리꾼의 대결로 유치하게 끝났던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하지만 사실 어린이에 대한 차별이야말로 사회와 국가가 긴급성을 갖고 들여다볼 문제다. 합계출산율 0.8명으로 소멸해가는 저출산 국가에서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2021년 한국 어린이청소년행복지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2개국 중 꼴찌였다. 아이들을 위해 약간의 불편도 감수하지 못하는 나라, 아이들이 불행한 나라의 미래가 밝을 수 없다. 노키즈존 논란이 전제하고 있는 아동 차별과 유아 동반에 대한 혐오부터 정색하고 다시 들여다볼 때가 됐다.


박선희 산업2부 차장 teller@donga.com
#광화문에서#노키즈존#어린이날#아동인권#아동학대#어린이 차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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