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상 최초 소셜미디어발 ‘은행 공포’ 위기[특파원칼럼/김현수]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3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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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찍히면 죽는다’ 시장 공포가 실질 위기로
순식간에 은행 실패, 속전속결 대응이 답이다

김현수 뉴욕특파원
김현수 뉴욕특파원
‘잘 가라, 데빗 스위스(Debit Suisse).’

지난해 10월 1일 트위터와 레딧 등 소셜미디어에서 글로벌 대형은행 ‘크레디트스위스(CS)’의 새 별명이 급속히 퍼졌다. 신용과 예금 등을 뜻하는 크레디트(Credit)를 반대말인 ‘데빗’으로 바꿔 파산이 머지않았다는 것을 희화화하는 밈(meme)이 된 것이다.

무슨 일이 있었을까. 하루 전인 9월 30일 금요일, 울리히 쾨르너 CS 최고경영자(CEO)는 직원들을 격려하는 차원에서 회사가 ‘결정적 순간(Critical moment)’에 서 있지만 CS는 강력하므로 잘 해보자는 내용의 서한을 보냈다.

“결정적 순간이라고? 역시 문제가 있는 게 분명해.”

이른바 ‘데빗 스위스’ 공포는 주말 디지털 세상을 뜨겁게 달궜고, CS만의 ‘블랙먼데이’가 찾아왔다. 아케고스 펀드의 마진콜 사태로 인한 대량 손실 등으로 CS를 불안하게 보던 ‘글로벌 개미’들의 이탈이 시작된 것이다. 부도 위기 가능성을 의미하는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이 순식간에 치솟고, 주가가 폭락하면서 자금 이탈이 이어졌다. 이후 위태로운 상태를 이어오던 CS는 이달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폐쇄에 따른 공포 확산으로 또다시 파산 위기에 몰렸고, 스위스 당국의 주도로 UBS에 인수됐다.

CS도, SVB도 몰락의 원인은 결국 은행의 위험 관리 실패가 가장 크다. 하지만 소문이 시장에 반영되는 속도, 실제 인출로 이어지며 우려가 현실이 되는 시간이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이 빨라져 속수무책으로 무너져 버린 불운도 작용했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에는 없었던 소셜미디어와 모바일뱅킹 및 주식 거래 덕분이다.

팬데믹 이후 대중의 시장 참여 비중도 높아졌다. 이들의 위력은 ‘게임스톱’과 같은 밈 주식의 폭등과 폭락에서 증명된 바 있다. 은행들도 밈 주식처럼 소셜미디어발 공포 확산에 흔들리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난데없는 주가 폭락 등 이슈가 발생한 은행은 어김없이 소셜미디어에서 언급량이 급증했다.

아무리 초우량 은행이라도 40년 만의 급속한 금리 인상에 따라 위험에 민감해진 상태다. 미국 스탠퍼드대 연구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4800개 은행이 보유한 자산 중 고금리로 인한 미실현 평가손실이 2600조 원이 넘었다. 자칫 채권 매각 소문이라도 잘못 나면 누구나 문제 은행으로 지목될 수 있다. SVB와 고객 구조가 비슷하다고 알려진 퍼스트리퍼블릭은행은 이달 들어 주가가 90% 폭락했다. CS와 비교되면 억울할 법한 우량은행 독일 도이체방크도 최근 CDS 프리미엄이 급등했다. 미 월가 관계자는 “CS와 도이체방크의 공통점은 법적 분쟁이나 구조조정에 시달렸던 기억이 많은 이들에게 각인됐다는 점”이라고 했다.

이번 위기가 우려스러운 점은 전례 없이 빠른 속도로 불현듯 공포가 전이될 수 있다는 점이다. 고금리에 따른 부작용은 조용히 곪아가지만 상처가 드러나는 순간 몰락의 속도는 너무 빠르다.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이 예금보호 조치에 대해 3일 연속 오락가락해 비판을 받은 대목은 ‘시간 낭비’였다. 3주 전 SVB 파산 때만 해도 별문제가 없을 것이라던 미 전문가들도 ‘구조적 위기’에 대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미국과 유럽을 오가는 위기의 불똥이 언제 한국으로 튈지 모르는 일이다. 역사상 최초의 소셜미디어발 은행 위기 대응의 핵심 전략은 속도여야 한다.


김현수 뉴욕 특파원 kimh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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