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과일 국산화율, 감귤 3% 포도 4%… “‘제2의 설향’ 늘려야”[인사이드&인사이트]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3월 21일 03시 00분


코멘트

과일 종자 자급률 높일 방안은

정서영 산업2부 기자
정서영 산업2부 기자
K푸드 바람이 어느 때보다 거세다. 한국 식품뿐 아니라 한국 농수산물이 동남아 등지에서 각광받고 있다. 지난해 농산물 분야 수출액은 총 120억 달러(약 15조6800억 원)로 2010년 처음으로 50억 달러를 넘어선 뒤 10년여 만에 2배 넘게 증가했다.

품목별로는 아직 담배, 라면, 참치 등 가공식품 비중이 높지만 농수산물 비중도 올라가는 추세다. 강원 양구, 철원 등에서 생산되는 강원산 파프리카는 매년 2000만 달러 안팎의 수출액을 올리고 있고, 충남 서산에서 만든 서해산 감태도 지난해 10만 달러가량을 수출했다. 전남 고흥산 유자와 생강은 체코와 이탈리아 등 유럽 시장을 공략 중이다.》






하지만 이 같은 ‘K푸드’ 열풍 속에서도 아직 웃지 못하는 분야가 있다. 종자의 대부분을 외국산에 의존하는 과일 시장이다. 포도나 감귤, 배, 사과 등 한국인들이 많이 먹는 과일 대부분이 국산화율이 낮은 상황이다. 로열티 수입이 늘면서 농민 부담도 커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전문가들은 수십 년간 이어온 외국산 종자 과일 위주의 유통 구조나 재배법 등을 바꿔야 한다고 지적한다.

● 오랜 품종 개량 역사 자랑하는 일본산 과일

20일 농촌진흥청에 따르면 사과의 국산화율(유통시장에서 국산 품종이 차지하는 비율)은 2021년을 기준으로 21.4%에 그친다. 국산 품종이 차지하는 비율이 90%를 넘는 채소 시장에 비해서 현저히 낮다. 특히 일본산 품종인 샤인머스캣이 주류인 포도(4.6%)를 비롯해 감귤(3.2%) 배(15%) 등 국산 과일 대부분이 국산화율이 낮다. 평균이 17%에 불과하다.

해외 종자 의존이 높아지면 로열티도 높아진다. 농촌진흥청에 따르면 주요 과수 품목(키위, 블루베리, 체리 등)의 로열티 지급액은 2021년 18억4000만 원으로 2017년(13억6000만 원) 대비 약 35.3% 늘었다. 로열티 지급 기한이 만료된 사과 등은 제외된 수치다. 세계 속으로 ‘K과일’을 수출하기 위해선 여전히 비중이 낮은 과수 종자 산업에 관심이 필요하다.

현재 우리나라에 통용되는 과일 상당수는 일본산 품종이다. 2020년 기준 국내 사과 재배 면적 65.1%를 일본 사과 품종인 ‘부사’와 ‘아오리’가 차지하고 있다. 같은 기간 단감도 일본 품종인 ‘부유’가 국내 유통의 80%를 점유한다. 일본 품종에 대한 농민들의 선호도 높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2021년 농민 50%가량이 5년 뒤에도 재배하고 싶은 사과로 ‘부사’, ‘미야마’ 등 일본 품종을 뽑았다. 배 역시 일본 품종인 ‘신고’를 34%가 선호했다.

일본산 과일의 힘은 오랜 품종 개량 역사에서 비롯됐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1868년) 이후 미국과 유럽의 과일 품종들을 개량하며 과일 교배를 시작했다. 사실상 근대화의 역사와 궤를 함께하는 셈이다.

반면 한국은 광복 이후인 1954년 중앙원예기술원(현 농식품부 산하 국립원예특작과학원)에서 사과 3종과 배 8종 등을 교배한 것이 품종 개량의 시초로 꼽힌다. 일본에 비해 단순 계산상으로도 역사가 두 배 넘게 짧다. 5∼10년 나무를 길러야 하는 품종 개량 경쟁에서 이런 차이는 따라잡기 쉽지 않은 격차를 만들게 됐다.

● 품질 따라잡은 ‘K과일’… 유통 막혀 한계
물론 한국도 꾸준한 개량을 거치며 성과를 내고 있다. 일본산 과일과 비교해 기술적으론 부족한 부분이 없다는 게 중론이다. 유통업체의 한 과일 바이어는 “현재 국산 품종과 일본 품종 간 맛이나 병충해 저항력 차이는 없다고 봐도 된다”고 말했다. 일선 농민들도 “한국 품종이 (일본 품종에 비해) 우리 토양에 적합한 경우가 많다”고 했다.

로열티 수입도 늘어나는 추세다. 2021년 우리나라 과수 종자 로열티 수익은 약 4억4800만 원으로 2017년 2억4400만 원 대비 83.6% 늘었다. 농촌진흥청 관계자는 “코로나19 이후 신규 계약이 늘고 있어 올해는 로열티 수익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직도 과일 국산화율이 20%대에 불과한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K과일’이 국내 시장에 자리 잡기 어려운 요인으로 유통 구조를 꼽는다. 우리나라 과일 유통 시장은 주로 산지에서 농부들이 도매업자 등에게 물량을 판매한 뒤 소매상으로 넘어가는 구조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이미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일본산 품종을 원하는 업체의 요구에 맞춰야 하니 새로운 시도를 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20대 농민은 “국산 품종을 길러보려 해도 유통업체는 잘 팔리는 일본 품종을 우선적으로 요구한다”며 “농민들 입장에선 새로운 시도를 하기 어려운 구조”라고 했다.

● 판매 급급하다 품질 저하에 투자 미흡

수요 공급에만 맞춘 유통 구조는 품질 저하로 이어지기도 한다. 한때 포도 농가에서 인기를 끌던 샤인머스캣이 대표적이다. 일반적으로 샤인머스캣은 10월에 출하할 때 숙성도가 가장 알맞다. 하지만 9월 초순(9∼12일) 추석 연휴가 잡힌 지난해 선물세트 물량을 맞추려다 보니 유통업체 측에서 농가에 이른 출하를 요구하는 경우가 늘었다. 자연스레 덜 익은 샤인머스캣이 시장에 다수 풀렸고, 이를 맛본 소비자들의 인식이 나빠지며 수요와 가격이 떨어졌다.

반면 일본의 경우 농협에 해당하는 JA(Japan Agricultural Cooperatives)가 농사 이외의 업무를 전담해 유통 문제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어떤 품종이든 맛있기만 하면 제값을 쳐주고 판로도 개척해줘 농민 입장에서는 다양한 시도를 할 여건이 생긴다.

품질 관리도 깐깐하다. JA가 가진 자체 재배 매뉴얼에 맞지 않으면 과감히 폐기한다. 일본에서 농업 기술을 배워온 김재원 행복을팜 대표는 “일본 샤인머스캣 농장에 근무할 당시 한 송이에 달린 포도알 개수가 맞지 않아 전체 생산의 절반 가까운 수량을 폐기한 적도 있었다”며 “한국도 유통 문제와 품질 관리를 위한 당국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 신품종 개발에 최소 7년… 적극 지원 필요
국산 과일 중 자급률을 올린 사례가 없는 건 아니다. 일본을 앞지른 국산 딸기 품종인 ‘설향’이 대표적이다. 2018년 평창 겨울올림픽 여자 컬링에서 한국과 맞붙은 일본 후지사와 사쓰키 선수가 자국 기자회견에서 “한국 딸기가 놀랄 정도로 맛있다”라고 언급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2005년 9.2%에 불과했던 국내산 품종 딸기 보급률은 인기 품종 ‘설향’ 개발 이후 2021년 96.3%까지로 늘었다. 국산 딸기로 대체되면서 외국 종자를 이용하는 비용인 로열티도 아낄 수 있었다. 국제식품신품종보호연맹(UPOV) 원칙에 따라 2008년부터 외국산 종자 딸기에 대한 연간 30억∼60억 원의 로열티를 내야 했지만, 그 이전에 설향이 개발되면서 이를 막을 수 있었다.

농식품부는 지난달 국내 종자 산업을 2027년까지 1조2000억 원 규모로 키우겠다는 ‘제3차 종자산업 육성 종합계획’을 발표했다. 설향 같은 K과일의 성공 사례를 늘리려면 신품종 확대의 중요성을 정확히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 통상적으로 신품종 나무가 뿌리를 내리고 과일을 생산하려면 5∼7년 정도 걸린다. 나무가 다 자란 후에도 2, 3번 열매를 맺어야 상품성 있는 과일이 나온다. 한 농민이 새 품종을 시도하려면 총 7∼10년을 기다려야 한다는 의미다. 하지만 농민 고령화가 진행된 과수 산업 특성상 새 품종 도입에 소극적인 경우가 적지 않다. 김성종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연구관은 “신품종을 개발해도 ‘언제 다 키워서 판매하냐’는 현장의 거부감이 크다”며 “농민 설득을 위한 체계적인 홍보 전략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주신애 농식품신유통연구원 기획조사실장은 “신품종이 대체로 농민들 사이에서 입소문으로 알려진다”며 “정부 차원에서 신품종의 장점과 재배법을 적극적으로 홍보하는 예산·정책적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정서영 산업2부 기자 cero@donga.com


#k과일#국산화율#제2의 설향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