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와 애착 관계는 ‘평생의 힘’… 비출산 신중해야”[산부인과 의사가 본 저출산/심상덕]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월 27일 03시 00분


코멘트
심상덕 ‘진오비산부인과의원’ 원장
심상덕 ‘진오비산부인과의원’ 원장
《저출산은 많은 점에서 비만과 닮았다. 인류가 농경생활을 하기 전에는 비만이라는 문제 자체가 없었다. 먹이를 구하는 것조차 어려웠기에 영양소 비축은 불가능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전자는 쓰고 남은 에너지는 모두 몸 곳곳에 쌓아두도록 프로그램 됐다. 먹이가 부족한 시절의 이 전략은 먹거리가 풍부한 현대 이후엔 비만이라는 문제를 낳았다. 즉, 비만은 인류가 농경과 축산의 발달로 먹거리를 충분히 확보하게 되면서 초래된 현상인 셈이다.

저출산도 비만처럼 인류가 피임 방법을 모르던 시절에는 상상할 수 없던 현상이다. 불과 30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는 인구 억제 정책을 폈다. 지금도 의료 수준이 열악한 아프리카 일부 국가는 모두 출산율이 높다. 당연히 저출산을 걱정하지 않는다. 결국 피임이라는 의학 혁명이 여성을 임신과 출산의 굴레로부터 벗어나게 해준 동시에 저출산의 주요 요인이 되었다. 즉, 비만이나 저출산은 모두 문명 또는 의학 발전과 더불어 나타난 현상인 셈이다.》

일각에서는 저출산을 해결하기 위해 이민 정책을 대폭 손봐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일부 국가에선 효과를 봤지만 우리나라에도 맞는 방법인지는 의문이다. 저출산은 비혼주의, 딩크족, 난임 등 그 원인이 매우 복잡하고, 그 결과도 어떻게 나타날지 알 수 없다. 우리로선 처음 겪는 일이기 때문이다.

다만 30년 넘게 산모들과 소통해온 의사로서 해결책에 대해 두 가지를 당부하고 싶다. 첫째, 너무 서둘러선 안 된다. 과거 인구 억제책을 펼치던 당시 정부는 월경조절술이라는 초기 낙태 시술을 조장했다. 공무원들은 농촌을 찾아 콘돔을 배포하는 과격한 인구 억제정책을 폈고, 그런 노력으로 우리나라는 빠르게 저출산·초고령 사회로 진입하게 됐다.

하지만 인구 문제는 수자원 정책이나 에너지 정책과 같은 방식으로 해결하려고 해선 안 된다. 인구 정책의 대상인 사람은 물이나 전기처럼 단순하게 통제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출산이란 개인의 여러 사정에 따라 좌우될 수밖에 없다. 과거 인구 억제 정책이 초래한 부작용을 반대 방향으로 다시 겪고 싶지 않다면,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으려 노력해야 한다.

둘째, 누구에게도 돌을 던져선 안 된다. 갈수록 낮아지는 출산율은 노인 인구 부양 문제나 국가 경쟁력 하락 등 문제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국가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려는 애국심으로 아이를 낳거나, 저출산 국가가 되기를 바라서 출산을 피하는 이들은 없을 것이다. 비혼은 본인이 선택한 삶의 방식일 뿐 법이나 윤리를 어긴 것도 아니다. 인구 억제를 권했던 시절이라면 칭찬받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개인의 선택을 두고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렸다고 매도한다면, 그런 잣대는 내일 또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

결혼은 했으나 출산은 하지 않는 딩크족은 피임이라는 의학 발전에 힘입은 바가 크다. 20여 년 전 넷째 아기를 가진 임신부의 남편이 초음파 검사를 하면서 건넸던 부탁이 생각난다. “저는 장손이라 아들을 낳을 때까지 아이를 낳아야 합니다. 그런데 막노동으로 생계를 꾸리는 형편이라 지금도 먹고살기가 힘듭니다. 아이를 계속 낳게 되면 이미 낳은 아이들을 제대로 키우기도 학교에 보내기도 힘듭니다. 그러니 원장님께서 이번에 임신한 넷째가 아들인지 딸인지 꼭 좀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딸이면 포기하고 아들이면 낳을 생각인데 제가 계속 아이를 낳는 것은 저희 가정을 위해서나 나라를 위해서나 좋을 것이 없지 않습니까?”

당시엔 남아 선호 사상이 심한 때였다. 경제적인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넷째 아이를 갖기로 한 부부의 결정을 국가의 인구 억제책에 반한다고 해서 처벌하거나 비난할 수 없다. 당사자들이 그 결과에 대한 대가를 치르기 때문이다. 물론 그때는 아예 임신 전 기간 동안 태아의 성별을 알리는 것이 금지되어 있어 알려줄 수도 없었다. 그 부부의 후일담은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출산을 돕는 것이 주 업무인 산부인과 의사다. 자연히 출산율 하락은 생계에 직접 위협이 된다. 비혼주의나 딩크족, 반려동물을 키우는 커플이나 난임 부부의 증가는 병원 경영의 측면에선 걱정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의사로서의 나는 타인이나 자신의 생명·건강을 해치거나 윤리·법을 어기는 것이 아니라면 개인의 선택은 존중받아야 한다고 본다.

다만 세 아이를 낳아 기른 선배 아빠의 입장에서 출산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조심스레 조언해 본다. 출산을 하고 싶지만 고령 등 여러 부담으로 고민하는 이들이 많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은 노력하고,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은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임신과 출산이 지닌 위험과 긴 양육 기간에 따르는 희생은 적지 않다. 이를 감안했을 때 출산은 할 만한 것인가? 가보지 않은 길의 끝은 알 길이 없지만, 참고차 미국 심리학자 해리 할로의 1958년 ‘원숭이 애착 실험’을 소개한다.

미국 심리학자 해리 할로의 1958년 ‘원숭이 애착 실험’ 장면. 새끼 원숭이가 먹이를 주는 철사 어미 모형 대신 먹이를 주지 않는 헝겊 어미 원숭이 모형에 안겨 있다. 유튜브 화면 캡처
미국 심리학자 해리 할로의 1958년 ‘원숭이 애착 실험’ 장면. 새끼 원숭이가 먹이를 주는 철사 어미 모형 대신 먹이를 주지 않는 헝겊 어미 원숭이 모형에 안겨 있다. 유튜브 화면 캡처
갓 태어난 원숭이들을 먹이를 주는 철사 어미 원숭이 모형과 먹이를 주지 않는 헝겊 어미 원숭이 모형과 함께 생활하도록 했다. 원숭이들은 젖을 먹기 위해 잠시 철사 어미 원숭이에게 갈 뿐 대부분 시간은 헝겊 어미 원숭이와 보냈다.

만약 새끼가 아닌 어른 원숭이를 대상으로 실험했다면? 산부인과 의사로서 나는 답을 알고 있다. 간혹 임신부 중 어린 시절 가지고 놀던 헝겊 인형을 가지고 오는 경우가 있다. 철사나 플라스틱 로봇을 가지고 오는 이들은 보지 못했다. 포근한 촉감이 주는 따스함이 마음을 진정시켜 주는 것이다. 헝겊 원숭이를 찾았던 새끼 원숭이처럼 사람에게도 애착, 우리말로는 정을 나눌 수 있는 대상이 필요한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부모를 통해 애착 관계를 형성하고 정서적 안정을 얻는다. 성장하면서 그 대상은 친구나 반려자, 더 나이가 들면 자식들로 이동한다. 물론 지금은 반려자나 자식들로 애착 관계가 이어지는 경우가 과거처럼 절대 다수가 아니긴 하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일평생 동안 오래 애착을 유지하는 대상은 대부분 자식이라는 점이다. 반려자일 수도 있지만 더 긴 기간 더 강렬한 애착을 제공하는 것은 자식인 경우가 많다. 노후를 돌봐 주는 것은 돈이 할 수 있고 즐거움을 주는 것은 취미가 대신할 수 있지만 사랑과 애착은 대체재가 별로 없다.

이런 모든 것을 잘 알고 있고 간절히 원하지만 늦은 결혼과 출산으로 걱정인 이들도 많다. 또한 출산과 동시에 경력이 단절되고 아이를 낳아 기르기에 적당하지 않은 제도적, 법적 문제도 걸림돌이다. 이런 부분은 당연히 개선돼야 한다. 아울러 노산을 피하기 위해 너무 늦은 결혼은 지양하는 문화 형성과 그것을 뒷받침하는 제도적 준비도 필요하다.

답보하고 있는 저출산 문제를 생각하면 ‘목마른 사람이 우물 판다’는 속담이 떠오른다. 강력한 필요와 요구가 있다면 언젠가는 개선책이 나올 것이다. 망설이면서 요구하지 않는 이들을 위해 미리 알아서 자원을 투자하는 정부는 없다. 목마른 사람이 많을수록 우물을 파는 일을 돕는 이들도 많아질 것이다.

심상덕 ‘진오비산부인과의원’ 원장
#자녀#애착 관계#평생의 힘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